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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씨, 말씀, 말투

김한맥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말은 말인데 누구는 복(福)이 되는 말을 하고 누구는 독(毒)이 되는 말을 한다. 사람이 수없이 내뱉는 말에는 살리는 말도 있지만 죽이는 말도 많다. 그러기에 황창연 신부는 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씨를 뿌리는 사람(말씨), 기분 좋게 전하는 사람(말씀), 말을 던지는 사람(말투)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은 말과 다르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같이 감동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말씀이라고 한다. 어린 학생에게 “씩씩하고 멋지구나. 넌 장군감이다.” “넌 말을 잘하니 변호사가 되겠구나.” 이렇게 말에 복을 담는 습관이 필요하다. 좋은 언어습관은 말씨를 잘 뿌리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 전철의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에게 중년여성이 말을 건넸다. “어머! 어쩜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아주머니가 칭찬을 하는데도 할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내리기가 무섭게 할머니가 짜증 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냥 고우시네요! 하면 좋잖아~ 누가 늙은 거 몰라…” 듣고 보면 그렇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말을 던지는 말투보다는 듣기 좋게 말하는 말씨가 좋다. 그래서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나보다. 

프랑스의 작가 장자크 상페는 자신의 책 ‘뉴욕스케치’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는데 그들은 뻔한 이야기인데도 습관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주더라고 했다. 이를테면 누가 “이번에 터키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을 하자 옆에서 “좋은 곳이죠. 나도 두 번 가봤어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상대는 멋쩍어 일단 말을 주춤하게 된다. 그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의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정말요? 어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하면서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준다. 이렇게 “얼쑤~” 같은 추임새로 상대를 신나게 해주는 뉴요커의 말 습관이 좋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느낌표와 물음표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있을까? 자기를 앞세운 말을 하게 되면 상대의 말에 이러한 부호를 찍어주기가 어려워진다. 돌아보면 느낌표와 물음표가 참 인색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하는 말에 감탄하면서 나의감정과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이란 닦을수록 빛이 나고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말을 할 때 상대의 입장을 늘 염두에 두면 적어도 실언(失言)이나 허언(虛言)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서 덤으로 얻는 것도 있다. “어쩌면 말을 그리 예쁘게 하세요?” “복 들어올 말씀만 하시네요.” 

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씀들이 성경에 많이 들어있다.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말 한 마디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는 말씀은 믿음과 긍정을 나타내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는 말씀은 들음에 대한 교훈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13:3)는 말씀은 두렵기조차 하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는 말씀은 인격과 인품이 말에 달려있음을 증거 한다. “네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네게 행하리라”(민14:28)는 말씀을 통해 말 한 마디의 무거움을 다시 깨닫게 된다. 브루스 웰키의 “바보의 혀는 자신의 목을 자를 만큼 길다”는 지적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말에 대해 말이 많은 것은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산다 하면 살고 죽는다 하면 죽게 되며, 할 수 있다고 하면 하게 되고 할 수 없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고 분명하게 기억해야 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1-3).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하나님이 이르시기만 하면 그 말씀대로 되는 유(有)가 나타나 보이고 만지고 느껴지도록 창조된 것이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말씨가 되고 말씀이 되고 말투가 되는 것은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내뱉어지는 말에 달려있다. 

hanmac@cmi153.org                            

 

10/2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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