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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물

김한맥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팻물은 사랑이며 나눔이고 자기희생이다. 어쩌면 마땅할 수도 있는 자기의 권리를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며 배려이기 때문이다. 팻물이 더 놀라운 것은 일대 일의 관계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나타나는 모두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팻물은 가뭄이 들었을 때 공동으로 물을 찾아서 그 물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논부터 물을 퍼가도록 하는 생명과도 같은 물의 이름이다. 말 그대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천수답에 기꺼이 물을 양보한 생명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인을 가리켜 독 속의 게와 같다는 말이 있다. 독 속에 게를 풀어놓으면 서로 밖으로 기어 나오려 안간힘을 치지만 결국 한 마리도 나오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밑에 있는 게가 올라가는 게를 끊임없이 물고 당겨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중국인 1명이 봇짐을 들고 공항에 내리면 중국인 10명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가게를 낼 수 있게 해준다. 다음번에 다른 중국인이 오면 이번에는 11명이 도와서 자리를 잡게 해준다. 반면 한국인은 1명이 이민을 오면 10명이 달려들어서 벗겨먹는다. 또 다른 한국인이 오면 이번에는 11명이 달려들어 망하게 만든다. 한 때 이민사회에서 나돌던 슬픈 이야기다.

영국속담에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에게 밥을 사라는 말이 있으나 한국에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부끄러운 악담이 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슬픈 민족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에는 두레라는 아름다운 생활풍습이 있다. 지금처럼 혼밥시대에는 백약이 무효하듯 낯선 구호가 되어버렸지만 이전의 농촌에서는 온 동네가 상부상조하며 진정한 이웃사촌으로 살았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성공했던 새마을운동의 저변에는 ‘우리 함께’ 라는 두레의 정신이 녹아들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저 살기에도 바빠 이웃을 돌아볼 여유나 여지는 거의 실종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아파트의 같은 층 옆집, 이전 같으면 이웃사촌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오가며 부엌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도 남았을 그 이웃, 옆집 사람조차 알지 못하고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너는 너, 나는 나로 외면하고 만다.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 

서로 도와 상생의 본이 되었던 중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버스 안에서 아이가 맞아 죽어도 신고하는 이조차 없고 길거리에 거품을 물고 쓸어져 죽어가도 고개를 돌려버린다. 무슨 사연이었는지 모르나 젊은 여인이 십여 층 건물의 난간에서 뛰어내리려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리며 뜸들이자 말고 뛰어내리라고 충동을 하면서 아주 작은 것 하나마저 책임지지 않는 야속한 세상으로 변질이 되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질이 되고 각박해질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거기에 성도(聖徒)라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면 더 사람다워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창조된 만물 가운데 사람 외에는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이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고 증거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도 사랑이어야만 한다. 

사랑? 사랑은 어렵다. 한 마디로 정의도 되지 않는다. 희생, 양보, 참음, 주는 것, 낮아지는 것 등등이 다 포함되는데 분명한 한 가지는 마냥 손해를 보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말세라는 말이 왜 나오는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사랑이어야 되는데 그렇지를 못하니 말세일 수밖에 없다. 희생은 고사하고 양보조차 찾아보기가 어렵다. 운전을 하다 차 한 대쯤 내 앞에 끼워준다 해서 손해를 볼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나 역시 쿨하게 양보한 적이 별로 없다. 성도답지도 사람답지도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팻물이 더 귀하고 소중하다. 사람다움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라는 미국대선에 사람다움은 없었다. 비판과 비방으로 얼룩졌고 불복, 무효라는 말이 난무했다. 한국의 정권이 바뀐 지 몇 해가 지났음에도 아직 적폐청산이라는 내로남불이 점입가경이다. 사람다움이 없다.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세상에 팻물을 쏟아 붓고 싶다. 희생과 양보와 존중 등이 담긴 팻물이 세상 곳곳으로 흘러들기를 기대해본다. 아직은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사람에게 거는 기대 역시 유효하기에. 

hanmackim@hanmail.net    

11.1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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