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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우드 헤인즈 스톡스 목사와 찬송가 “성령이여 강림하사”

윤임상 교수

(월드미션대학교대학원)

1906년 4월 18일 자 LA Times 기사 헤드라인에 “Weird Babel of Tongues, 괴기한 방언의 바벨탑 쌓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 개신교의 큰 영적 대사건이 된 아주사 부흥 운동(Azusa Street Revival)에 대한 보도였습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윌리엄 시모어 (William Joseph Seymour 1870-1922) 목사로 그는 루이지애나에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신분의 문제로 괄시와 천대를 받으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로 인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며 자랐고 더군다나 어린 시절 심한 천연두를 앓아 한쪽 눈을 실명한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그는 어렵게 목회자의 수업을 받아 침례교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성령체험의 큰 계기가 된 것은 감리교 목사 챨스 퍼헴 (Charles F. Parham 1873-1929)의 영향이었습니다. 1905년 휴스턴에서 퍼헴 목사는 성령 세례와 방언에 대한 강의가 있었는데 이때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해 시모어 목사는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지 못하고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수업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차별 속에서도 시모어 목사는 큰 영향을 받았고 신유, 방언 등 체험을 강조하는 은사에 초점을 두고 오순절 성령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한 세기 만에 5억 명 이상의 가장 빠르게 성장한 오순절 교단의 씨를 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운동은 신학적, 교리적인 면에서 약한 토대 위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기에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것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모어 목사를 중심으로 한 이 성령 부흥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 기독교 교인들의 성령 임재 사건과 흡사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교회 당시 크리스천들은 유대교인들로부터 엄청난 차별을 받았기에 회당이나 성전에서 집회를 갖지 못하고 마가의 비좁은 다락방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시모어 목사와 군중들에게도 이와 같았습니다. 당시 LA Times 기사에는 흑인과 백인이 한데 섞여 예배하는 사실을 비난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수모는 이때 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제대로 된 건물조차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LA 다운타운의 다 무너져 가는 창고 건물 하나를 간신히 찾았는데 그 건물은 건축업자들이 건축자재를 두고 건초 등을 보관하는 마구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환경 속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 기독교 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기 전 “너희는 성령을 세례로 받으리라 (행 1:5)”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기도와 찬양으로 성령을 사모하며 임재를 기다리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20세기 초 교회사에 나타난 이 거대한 아주사 성령 부흥 운동도 결국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기도와 찬양으로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다가 나타난 위대한 성령 부흥 운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 중에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는 가장 대표적인 찬송은 “성령이여 강림하사 (Fill Me Now)” 입니다. 이 찬송 시를 썼던 미국의 감리교 엘우드 헤인즈 스톡스(Elwood H, Stokes 1815-1897) 목사는 1879년 어느 날 캠프집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사도행전 9장 17절 말씀을 통해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사도바울의 삶을 변화시키게 되었다는 이 말씀이 스톡스 목사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집회가 끝나자 “Fill Me Now”라는 제목으로 영감의 찬송 시를 기도 형태로 써 내려 갔습니다. “성령님이여 당신의 거룩한 임재로 나를 채워 주소서 지금 나에게 채워 주소서” 그는 이 찬송 시를 써 내려가며 “성령께서 나를 떨리게 하고 내 이마를 적시게 하였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캠프집회에서 스톡스 목사와 같이 동역한 찬양인도자였던 죤 리치몬드 스웨니(John R. Sweney, 1837-1899) 음악 감독은 이 이야기를 듣던 중에 그 또한 성령의 감동을 받고 그 가사에 멜로디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는 당시 교회음악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던 음악인으로서 회중들의 마음을 움직여 노래하게 만드는 큰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이 찬송이 펜실베니아, 뉴져지 지역의 캠프집회 때마다 불리며 성령의 임재를 깊이 사모하며 체험하는 찬양으로 크게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초기 기독교 교인들, 3차 미국의 대각성 부흥 운동에 모였던 군중들, 그리고 아주사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시모어 목사를 위시로 한 당시 교인들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너희는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1:5)라는 그 말씀을 분명히 믿고 기도와 찬양을 통해 뜨겁게 성령을 사모하며 기다리다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던 공동체였습니다. 

위와 같은 사실을 보며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찬양을 점검하며 찬양의 본질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극히 개인적 감정에 치우쳐 신앙의 고백적 찬양을 만들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찬양이 주가 되기보다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을 칭송하고 사모하고 높이는 균형 있는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의 본질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 되시는 삼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사와 그것을 우리 입술의 고백으로 드려지는 행위가 반듯이 따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혹은 일상에서의 찬양이 이러한 모습이 되어 향기로운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성숙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 가야 합니다. 아울러 이것을 통해 스톡스 목사의 고백에 담긴 성령의 임재를 매 순간 사모하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우리 일상에서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사랑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믿고 그것으로 인한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iyoon@wmu.edu

07.0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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