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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의 명성가 “영화롭도다”

윤임상 교수

(월드미션대학교대학원)

한국의 음악 비평가 협회 회장을 지낸 김규현 작곡가께서 ‘한국의 70-80년대에 불려졌던 명성가 들은 합창지휘자들의 천덕꾸러기인가’라는 제목의 비평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에 의하면 요즘 교회에서 지휘자들이 선곡하여 불려지는 찬양들은 주로 미국산 대중 교회 합창곡들이 되어 현대 곡들에만 치우쳐 선곡을 하여 균형을 깨트리는데 그것은 지도자들이 교회음악의 정통성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며 ‘교회음악과 예배음악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내용과 어떤 양식, 그리고 형태를 이루고 있는가 등, 그 정통성과 본질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꼬집는 내용이었습니다. 필자는 그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가 되며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통음악과 현대 음악의 시대적 구분보다는 균형 속에 바른 예배음악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것은 가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사 43:21)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즉 모든 교회음악에 하나님의 영광을 직, 간접적으로 표현한 가사 그리고 그것을 돕는 음악이 있는지 잘 구분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마 6:13’) 이처럼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신약의 서신서에서 기독론(Christology)의 가장 대표적인 말씀은 빌립보서 2장 6-11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종결 부분인 11절에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며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라며 종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최종 목적이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불려지는 명성가 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곡 중 하나는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영화 롭도다 (Gloria in Excelsis Deo)"입니다. 이 곡은 한국 교회 내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곡으로 많이 불려집니다. 이 곡의 작곡가는 모차르트로 알려지고 있지만, 최초 출판사의 실수라는 의견도 있으며 혹은 오스트리아의 벤첼 뮐러(Wenzel Muller, 1767~1835)가 작곡하여 모차르트에게 헌정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곡은 누가복음 2장 14절을 가지고 가사의 뼈대를 형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내용으로 천사들이 높은 곳에 하나님께 영광을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가운데 평화를 찬양하는 대표적인 곡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지 이 찬양을 기억하며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진준 목사님은 “오늘날은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탈 진실 시대가 되어서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킴으로 개인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시대”라고 정의하는 말에 동의가 됩니다. 

 

천사들이 높은 곳에 하나님께 영광을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가운데 평화를 찬양

 

이러한 이론을 부추기는 요소들 가운데 20세기 초에 나타났던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하나의 철학적 입장에서 표현된 사조를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난해한 표현들을 사용해서 현존하는 모든 미적, 사회적 가치를 부인하는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아방 가르드(Avant - garde) 운동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에 의해 원래의 가치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사용하는 모든 그럴듯한 단어들이 사실은 아무 의미 없음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코비드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혼란스러움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개인화를 부추기며 익숙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무엇을 믿고 찬양해야 하는지 애매해하거나 추상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즉 복음의 절대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동정녀 몸에서 태어나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사 죽임을 당하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복음의 확실한 진리를 가슴에 담고 이 복음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기초는 “그분이 오직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는 원초적 고백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삶에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고백이 당연시될 것입니다. 

이것을 붙들고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임을 매일매일 갱신하며 삶에서 행동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행동하는 것이지 반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iyoon@wmu.edu

08.0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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