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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헨리 돈웰 (James Henley Thornwell, 1812-1862)

미국 개혁주의 신학의 역사 (10)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돈웰은 19세기 남 장로교의 뛰어난 개혁주의 설교가 및 신학자이며, 동시에  남부의 구학파 (Old School) 지도자이었다. 

미국의 남부 역사 및 노예에 대한 뛰어난 역사가인  유진 제노비스와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Eugene Genovese and Elizabeth Fox-Genovese)는 제임스 돈웰을 “미국 남북 전쟁 전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South’s most formidable theologian)로 칭했다. 그리고 또한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 뱅크로프트(George Bancroft)는 돈웰은 미국 장로교회에서 “최고의 신학자이며, 남부의 신사” 칭찬했다.

돈웰은 South Carolina College (나중에 University of South Carolina)를 19세에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돈웰은 북부 뉴잉글랜드의 문화와 하버드 대학의 신학을 좋아하지 아니했다. 그래서 남부로 되돌아와서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1837년 돈웰은 프린스턴 대학교 6대 총장이었던 유명한 존 위드스푼(John Witherspoon 1723-1794)의 조카딸인 낸시 위드스푼 (Nancy Witherspoon)과 결혼했다.

돈웰은 South Carolina College에서 가르쳤고, 1851 대학 총장이 되었다. 나중에 조지아의 컬럼비아 신학교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설교학 (Didactic Theology)과 논증 신학 (Polemic Theology) 교수가 되었다.

1861년  미국의 남부 장로교회들은 노예문제, 교회 정치, 그리고 미국의 남북전쟁 (시민전쟁) 때문에 당시 미국 장로교회로 (당시 PCUSA, 나중에 Northern Presbyterian Church 북 장로교회가 된다)부터 탈퇴하였고, 분리된 남 장로교회의 명칭은 PCUS (Presbyterian Church in United State)가 된다. 그리고 돈웰은 남 장로교회 (PCUS)의 대변인이 되었다.

남부의 장로교회들은 1861년 12월 조지아 오거스타 (Augusta)에서 최초의 총회가 열렸다. 남장로교회 설립 총회에서 돈웰의 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글 (address to all Churches of Christ) ”을 공식적으로 총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론적인 문서로 채택해였다. 돈웰의 이 글은 이후 100년간 남 장로교회의 신학적 표준이 되었고, 1973년 미국 장로교회 (PCA)가 조직될 때에, 이 글에 담긴 돈웰의 신학이 새로 설립된 PCA 교단의 기초가 된다. 돈웰의 신학과 사상은 PCA 교단뿐만 아니라, 리폼드 신학교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Jackson, Mississippi)의 신학적인 기초가 되었다.

돈웰은 미국 장로교 구학파 (Old School) 유산을 변호한 투사이었다. 구학파는 전통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학의 기본으로 삼았다. 반면 장로교 신학파 (New School)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많이 희석시켰고, 알미니안 주의를 수용한 수정 칼빈주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돈웰은 전통적인 칼빈주의 개혁신학을 변증 했고, 후세에 물려주었다. 

돈웰의 신학을 다루면서 2가지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는 그의 교회론이며, 그리고 두 번째는 돈웰의 노예에 대한 사상이다. 

1839년에서 1861년까지 20년 이상 돈웰이 중심이 되어 장로교 교리, 교회 정치체계에 대하여 논쟁이 계속되었는데, 그 가운데 북 장로교회 찰스 핫지와 벌인 논쟁이 최고의 정점을 이루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찰스 핫지의 책, “What is Presbyterianism?” 과 돈웰의 ”The Collected Writings of James Henley Thornwell”에 잘 나와있다. 이 두 책을 근거로 해서 이 글을 쓴다.

당시 북 장로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이 찰스 핫지(Charles Hodge)이었고, 남 장로교회에서는 제임스 돈웰 (James Henley Thornwell)이었다.

핫지와 돈웰, 모두 동일한 전통적 칼빈주의 개혁 신학을 철저하게 사수한 구학파 (Old school Presbyterian)의 입장에 있었지만 교회론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돈웰은 교회에서 선교 사역과 선교사를 파송해야하며, 핫지는 총회 선교부에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의 일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장로교회는 교회 정치의 중심은 당회 (그리고 당회가 모인 노회)가 되어야 하며, 각 교회 (당회)에 주어진 권세를 다른 기관 (예를 들면 총회 선교부)에 위임할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개념은 19세기 미국에서 남부와 북부의 국가관에서도 잘 나타난다. 남부는 국가의 중심은 지방정부 

(예를 들면 주정부)가 되어야 하며, 북부에서는 국가의 중심은 연방 중앙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웰은 교회에 주어진 고유한 사역들 (선교와 같은 사명)을 다른 어떤 기관에 위임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핫지는 교회가 총회 선교 기관과 같은 위원회에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위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돈웰에 의하면 선교는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감당해야 하며, 위원회에 그 사명을 위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총회에서는 핫지의 편을 들었지만,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을 정기 간행물을 통하여 공론화하였다.

이 문제는 “성경이 금하지 않는 것을 교회가 규정할 수 있다 (You may do all that the Scriptures do not forbid)” 는 주장과 “성경이 규정하는 것만 교회에서 실행할 수 있다 (you can do only what the Scriptures command)”는 두 명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다. 

돈웰은 예배 요소와 교회 정치에서 “성경이 명하는 것만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고, 핫지는 “성경이 금하지 아니하는 것은 교회가 규정할 수 있다” 주장했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공 예배에 관해서 논쟁이 계속된다.

예배의 규정적 원리(The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는 “성경에 규정된 요소들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 와 예배의 규범적 원리 (The normative principle of worship)는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금하지 아니한 것은 예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의 차이다.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예배의 원리는 규정적인 원리가 (The regulative principle) 원칙인데, 1996년 존 프레임 (John Frame)이 규정적인 원리의 입장에서 예배에 춤 (dance)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미국의 PCA & OPC)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핫지는 돈웰의 교회의 행정과 교회 정치의 개념이 너무 신약성경의 문자에 묶여 있다고 주장했다. (Thornwell’s idea “ties down” the government and action of the church to what is prescribed in the New Testament)

핫지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장로교의 교리를 주장하면서, 교회는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금하지 않는 것을 신앙의 자유에 따라 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Hodge, “as the Presbyterian doctrine of Christian liberty, the church is permitted to do what is not forbidden in Scripture.”)  

그러나 돈웰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20.2를 인용하였고,  그리고 칼빈과 청교도들과 그리고 당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자 윌리암 커닝햄 (William Cunningham)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이 찰스 핫지 보다 더욱 정통 개혁주의 입장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한 돈웰과 핫지는 교회의 권세의 범위 (the extent of the church’s authority)에 대한 논쟁도 일어났다. 구체적으로 교회의 권세가 영적인 일에만 제한되는가? 아니면 세속적인 일에도 참여해야 하는가?

(Whether the church’s authority was limited to addressing spiritual matters or whether it also extended to addressing civil matters.)

돈웰은 교회의 권세를 오직 영적인 일에만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스럽게 당시 사회적인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노예문제가 대두되었다. 교회가 노예 문제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돈웰은 교회의 권세를 오직 영적인 일에만 한정시키면서, 당시 보편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사회 제도인 노예제도를 변호한다.

돈웰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님”을 확인하면서, 분명하게 개혁주의 두 왕국 (two kingdoms doctrine) 교리를 근거로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유일한 “합법적 사역”(legitimate business) 은 “주님의 나라에 속한” 것이며,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돌보는 일이나, 이 세상 나라의 정책에 얽매일 사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no mission to care for the things, and to become entangled with the kingdoms and the policy, of this world”) 했다.

돈웰은 또한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교회(ecclesiastical)의 목적과 국가 (civil institutions)의 목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회의 목적은 “영적”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하심과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함과 생명”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세속 정부의 목적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이도, 어느 정도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도덕성, 품위 그리고 질서유지 및 사회적인 평화로운 삶”에 있다. 

그리고 돈웰은 교회의 모든 활동과 사역의 유일한 원칙과 방법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속 정부와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돈웰은 “교회의 권세는 오직 사역적이며, 선언적이다” 했다

 

돈웰을 중심으로 장로교 교리, 교회 정치에 대한 논쟁 계속

그 가운데 북 장로교회 찰스 핫지와 벌인 논쟁이 최고의 정점

 

(“the church’s authority is “only ministerial and declarative”). 이 말은 교회의 권위가 법을 만드는 입법적인 권위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가르쳐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구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권세임을 주장했다. 

여기에서 돈웰의 중요한 포인터는 교회가 세속적인 일에 관여하는 것은 잘못이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이 세상의 여러 기관에서 개인 크리스쳔으로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고,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돈웰의 사회 (국가) 참여에 대한 문제를 요약하면, 교회는 영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교회가 공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지만,그러나 교회에서 성경적으로 잘 훈련된 성도들이 각자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크리스쳔의 세계관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맞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찰스 핫지는 돈웰의 이러한 입장을 “애매모호하고, 극단적이며, 논리가 빈약하며, 지지를 받을 수 없다”라고 했다. 핫지는 교회가 세속적인 일들에 대하여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적으로 핫지와 돈웰이 사역했던 19세기 미국 사회에는 남북의 문제, 노예의 문제, 연방제도와 지방정부의 권한의 문제 등, 많은 이슈들이 현실에 부딪히고 있었다. 찰스 핫지는 이러한 세속적인 문제들에 대해 많이 관여했고, 성경적인 입장에서 사회 이슈들을 설교와 글들을 통해 발표했다. 

찰스 핫지는 “교회가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사회의 죄악과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성경적인 진리와 의를 주장하여야 한다. 노예 제도나 노예무역에 관하여,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기타 등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국가, 사회)의 법이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이 (contrary to the word of God) 된다면, 교회는 마땅히 이에 대하여 바르게 가르치고 설교를 하여야 한다” 했다.

 찰스 핫지는 돈웰이 부당하게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책임을 제한한다고 그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핫지는 돈웰이 교회가 영적 기관이기에 세속 정부의 어떠한 행동 (국가 정책)에 대하여 판단도 할 수 없다”는 돈웰을 비판했다.   

(다음호에는 돈웰의 성경적인 노예에 대한 사상을 알아보겠다)

KHL0206@gmail.com

05.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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