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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땅(6)-아담의 계보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창세기 5장의 족보를 어떻게 읽을까? 물론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바울이 기록한 바 있다(딤전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종종 역사를 함축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족보를 사용하고 있어서 성경을 잘 읽고자 할 때 족보를 잘 읽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창세기 5장에 실린 “아담의 계보”다. 이제 그 장을 잘 읽고자 할 때 필요한 몇 가지 사항들을 살펴보자.

 

1. “계보”, 즉 족보의 뜻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창5:1). “계보”란 히브리어의 tôlǝḏōṯ을 옮긴 것으로서 “내력”(창2:4), “계보”(창5:1) 또는 “족보”(창6:9; 10:1; 11:10, 27; 25:12, 19; 36:1; 37:2)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창세기를 기록할 때 하나의 서문(창1:1-2:3)에 이어 열 개의 tôlǝḏōṯ으로 책의 내용을 구성했는데, 첫째는 “하늘과 땅의 내력(tôlǝḏōṯ)”이고(창2:4-4:26) 둘째가 “아담의 계보(tôlǝḏōṯ)”다(창5:1-6:8). 이렇게 창세기를 구성하는 단락을 우리 성경에서 족보라 부르는 것이다.

 

2. 족보의 범주를 알아야 한다. 

창세기가 tôlǝḏōṯ 구조로 씌여졌다는 것은 각 tôlǝḏōṯ의 시작과 끝이 그 이전과 그 이후의 tôlǝḏōṯ의 시작 및 끝과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담의 계보(tôlǝḏōṯ)”는 그 앞 “하늘과 땅의 내력(tôlǝḏōṯ)”이 끝나고(창4:26) 바로 이어 시작되며(창5:1), 그 뒤에 이어지는 “노아의 족보(tôlǝḏōṯ)”의 시작(창6:9) 바로 직전인 다음 문장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대표성 갖는 열 세대를 선별해 열거...이름들은 창세기 내러티브 구성요소중 하나

족보, 범주, 대표적 기능, 사본간 연수차이, 강조점, 비교적 의미, 방향 등 알아야

 

3. 족보의 내러티브적 기능을 알아야 한다. 

족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는 …을 낳았고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아담의 계보”의 경우 이런 문구는 5장에서 끝난다: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창5:30-31). 그러나 이 계보는 5장에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 절과 6장의 내러티브로 계속 이어진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창6:1). 여기서 보여지듯 창세기 저자가 생각하는 족보의 개념은 세대를 따라 이름을 열거하는 부분과 또 특정세대에 벌어진 일들 또는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뜻을 서술하는 내용을 함께 엮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창세기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4. 족보의 대표적 기능을 알아야 한다. 

각 세대마다 다룰 수 있는 내용이 무수히 많겠으나 창세기라는 하나의 두루마리에 그 내용을 담을 수 있으려면 기록 내용의 선별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결국 구속사적 맥락에서 꼭 언급해야 하는 내용들을 선별적으로 상세해 다루고 나머지 세대들은 ‘…는 …을 낳았고 …세를 살고 죽었더라’는 패턴을 적용해 간략히 다룬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간략히 다룬 세대의 목록조차도 모든 세대를 다 열거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담의 계보”에 등장하는 세대는 모두 열 세대에 불과하다: 1아담, 2셋, 3에노스, 4게난, 5마할랄렐, 6야렛, 7에녹, 8므두셀라, 9라멕, 10노아. 이렇게 열거되는 세대를 열 세대로 규정짓는 것은 창세기의 독특한 패턴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창세기 11:10-26에 기록된 “셈의 족보(tôlǝḏōṯ)”역시 열 세대로 소개되고 있고, 이렇게 tôlǝḏōṯ 개별 단위에서 열 세대로 규정하는 족보의 패턴은 창세기 자체가 열개의 tôlǝḏōṯ으로 짜여진 구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패턴은 신약의 마태복음 1장에서도 관찰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록할 때 다윗의 이름을 반영하는 수를 사용해 “열네 대”로 세 번 나눠 정리한 것과 같은 접근이다. 따라서 “아담의 계보”는 그 족보에서 대표성을 갖는 열 세대를 선별해 열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5. 족보 연수의 사본 간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라멕은 “칠백칠십칠 세”를 살았다(창5:31). 이런 연수들을 바탕으로 인류 연대표를 작성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표가 실제 역사적 연대를 반영할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족보에 열거된 세대 수는 대표성을 갖는 것이기에 실제로 더 많은 세대들이 그 사이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족보에 등장하는 연수에도 사본 간에 차이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홍수라는 ‘대환란’ 이전에 “칠백칠십칠 세”를 산 라멕–자칫하면 역사 연대뿐 아니라 계시록의 777과 연결지어 종말론적 상상을 펼치게 할 수 있는 숫자이다. 하지만 창세기 5:31의 사본들을 비교해보면 그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마소라 사본(MT)–777년, 사마리아오경(SP)–653년, 칠십인 역(LXX)–753년. 이렇게 주요 사본들 간에 연수의 차이가 있는데, 한글성경은 마소라 사본의 777년을 채택한 것이다. 따라서 족보의 대표적 기능, 연수의 사본 간의 차이를 고려할 때 아담이 주전 4004년에 지음을 받았다 주장한 J. 어셔(James Ussher) 감독의 계산은 선별적으로 제시된 마소라 사본의 연수의 합산일 뿐 실제 역사적 연대일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6. 족보의 강조점을 감지해야 한다. 

족보의 모든 세대가 ‘…는 …을 낳았고 …세를 살고 죽었더라’는 식의 획일적 패턴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아담의 경우,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1-2)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일반 패턴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더해질 때 그 내용을 강조점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아담에 대한 기록에서 강조되는 것은 누가 그를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신 첫 사람이라는 내용이다. 아울러 그가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을 더하고 있어(창5:3), 하나님의 “모양”이 아담의 “모양”을 따라 셋에게 이어져감에 주목한다. 에녹이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2, 24)는 기록 역시 틀에서 벗어나기에 강조되는 부분이고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역시 노아와 관련된 내용이다. 

라멕이 노아를 낳을 때,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5:29) 한 예언적 내용이 틀에서 벗어난 강조이고, 노아의 자손을 하나가 아닌 세 아들의 이름을 다 기록한 것이 강조이며(창5:32), 노아 때에 이르러 살펴보는 인류의 타락상과(창6:1-4)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의 결정(창6:5-7),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가 입은 하나님의 은혜(창6:8) 등이 강조되는 내용들이다.

 

7. 족보의 비교적 의미를 살펴야 한다. 

“아담의 계보”가 시작되는 창세기 5장은 “하늘과 땅의 내력”의 끝인 창세기 4장과 비교된다. 후자는 가인의 혈통을 따라 그 족보를 이어갔고 전자는 셋의 혈통을 따라 그 계보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이름을 부르는’ 것인데, 가인의 혈통에서 부른(qr‘) 이름(šēm)은 오직 하나, 에녹 성(city)이다(창4:17). 그들이 쌓은 성, 그들의 업적이 그들이 부른 유일한 이름이다. 반면 셋의 혈통에 대하여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고 기록한다. 

“하늘과 땅의 내력”에서 “아담의 계보”로 옮겨가는 부분에 저자가 기록한 내용이다. 아담이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게 되는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첫 사람을 아담이라 부르신 본을 따라(창5:2) 그 후손의 이름을 불러준 기록이 두 번 등장한다: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5:3), “이름을 노아라 하여”(창5:29). 이것이 두 족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성의 이름을 부른 혈통은 문명을 남겼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혈통은 사람을 남겼다. 가인의 후손은 그 성을 죄에서 건질 수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고(창4:23-24), 셋의 후손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는 증언을 남겼다(창6:8). 

 

8. 끝으로, 족보가 가리키는 방향을 성경신학적으로 살펴야 한다. 

성경의 족보는 구속사의 노선도라 할 수 있다. 마치 지하철 노선도가 역의 이름만 표기하듯 족보도 그러하다. 그 이름뿐인 노선도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 현재 위치와 목적지다. 현재 어디에 있는가? 어디 방향 열차인가? 창세기 5-6장을 읽는 독자에게 있어서 현 위치는 “아담의 계보”다. 이 열차는 아담, 셋, 에노스, 게난…을 지나 다음 역인 “노아의 족보”(창6:9-9:29)에 이르면 잠시 멈춰 승객을 잠시 열차 밖, 방주의 현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는 여정을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마1:1-17)를 향해 달리고 잠시 멈추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 열차는 우리를 태우고 지금 새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다.  

spark4@gordonconwell.edu

04.0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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