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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1)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I.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라는 영어는 religion인데, 이 단어는 라틴어 religare에서 왔고, “단단히 묶다” (to bind fast)라는 뜻이다. 이것은 피조물인 우리의 인간이 하나님께 묶이는 것이 곧 종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종교의 또 다른 라틴어는 relegere이다. 이것은 “신중하게 생각하다” (to ponder carefully) 뜻인데,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의미한다. 

본래 종교의 기본적인 의미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는 하나밖에 없으며, 곧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이며, 우주의 유일신은 오직 한 분,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옛날 영어 서적을 읽으면 religious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 (믿음)을 말하며, Religion이라는 말은 곧 기독교를 의미한다. 

 

II. 신학이란 무엇인가?

 

A. 신학의 객관적 정의

신학이라는 단어 “Theology”는 “Theos (하나님, 신) +”logy” (학문) 합성어이다.

19세기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찰스 핫지 (Charles Hodge)는 “신학을 과학”으로 생각하며, “성경은 사실들의 창고”라고 했다 (theology as science and the Bible as a storehouse of facts). 이 말은 우리가 성경의 자료들을 수집하고 배열하여 원리들을 만드는 것이 곧 신학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마치 천문학자들이 해, 달, 별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처럼, 신학은 성경의 객관적인 사실들을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근거로 해서 원리들을 만드는 학문이 곧 신학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방법이 곧 신학의 객관적 방법이다.

그러면 왜 우리가 성경에 있는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체계화하는가? 성경에는 체계가 없는가? 성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등, 모세오경, 역사서, 선지서, 성문서, 등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러한 성경의 체계보다 우리가 더욱 좋은 객관적인 체계를 만들 수 있는가? 성경의 사실들을 그대로 읽고, 은혜받으면 되지 우리가 꼭 체계화시켜야 하는가? 이렇게 신학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신학 체계를 세울 때 우리가 다른 학문처럼 꼭 합리적이어야 하는가?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성 (reason)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이성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 성경에는 많은 초자연적인 사건들과 기적과 이적이 나오는데 이것들을 우리가 이성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종교에서 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판단한 사람은 임마누엘 칸트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현상계를 벗어나는 세계 (Noumena), 곧 물질 본체 (Ding an sich), 영혼의 세계, 그리고 신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종교를 탐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칸트의 논리에 의하면 성경을 객관적인 자료를 사용해서 이성을 가지고 학문을 세우는 객관적인 신학의 방법은 불가능하다.

 

B. 신학의 주관적인 정의

신학의 객관적인 방법에 반대하면서 생겨난 방법이 신학의 주관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론에 의하면, 기독교에서 신학에서 객관적인 체계를 세우는 합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체험이 중요하고, 하나님과 만남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신앙의 체험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것이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객관적 신학 방법에 도전하면서 기독교 체험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곧 교리(신학)라고 주장한 사람이 슐라이어마허 (Schleiermacher) 라는 신학자이었다. 그는 성경의 자리에 인간의 감정을 대체시켜 이것을 신학의 최종 권위라고 주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슐라이어마허는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 칭한다. 그는 성경과 교리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체험을 앞세워 신학을 세웠다. 이 방법론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혹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메이쳔 (Machen) 교수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에 헤르만 (Wilhelm Hermann) 박사를 매우 존경하였고, 헤르만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헤르만 교수는 독일의 말부르그 (Marburg) 대학에서 가르쳤고, 메이쳔은 그곳에서 연구했다.

헤르만 교수는 칸트와 리츨에게 영향을 받은 당시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선의 능력 (the power of goodness)으로 생각했고, 예수님을 우리의 모범적인 한 인간으로 (an exemplary man) 보았다. 요즈음 우리가 보아도 성경에서 많이 벗어난 자유주의 신학자이다. 메이쳔은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자 헤르만의 경건에 감화되었다고 회고했다. 물론 메이쳔은 자기의 스승 헤르만 교수가 가르친 자유주의 신학을 철저히 비판하였고, 정통적인 개혁 신학을 사수한 위대한 신학자이다.

슐라이어마허 이후로 서구의 신학은 객관적 신학적 전통을 부정하고 실존신학, 현상학에 근거한 신학, 그리고 프로이드 심리학의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전통적인 하나님 중심, 그리고 성경 중심의 신학 체계를 부인하고, 인간의 심리학, 인간의 종교적인 체험과 감정 등이 신학의 중심이 된다. 오늘날도 많은 신학교에서 전통적인 객관적인 신학 체계를 포기하거나, 대폭 축소하고, 그 대신 인간 중심의 학문들

 (심리학, 상담학, 리더쉽, 등)을 발전시켜나간다. 

우리 인간의 종교적 체험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 체험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 체험의 순수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주관주의 신학은 결국 기독교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메이쳔은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가 아니다.” 까지 주장했다. 

 

C.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신학.

1. 신학의 기초와 기준은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이다.

개혁주의 신학자 존 프레임(John Frame)은 신학을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 시키는것” (the application of the Word of God by persons to all areas of life) 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신학의 기초와 기준은 오직 성경이며, 성경만이 인간의 모든 문제들 (죄, 악)을 치료시키고 회복시킬 수 있으며, 신학의 적용은 신학이 교회나 신학교에서만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신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2. 신학의 범위는 인간의 삶과 피조 세계의 모든 영역이다.

3. 바른 신학을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바로 해석하여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주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셨다 (요 14:26). 그리고 요 16:13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하셨다. 

궁극적으로 성경을 우리의 삶의 상황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은 우리의 이성과 인간적인 논리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다.

 마 13:13,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것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이 성경을 자기들의 상황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성경을 잘 안다”는 말은 성경 (text)을 지금 내가 살고있는 상황 (context)에 잘 적용해 우리의 삶이 성경 말씀에 의하여 주도된다는 것을 이미 한다. 우리의 삶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화 된다는 뜻이다.

 

“신학은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변하는 세상에 적용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일”

 

말씀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정황 (Sitz im Leben)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통제를 받고,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잘 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십계명,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삶의 정황을 잘 알아야 한다. 성경에는 현대 시장 구조에 대해서 나오지 아니한다. IRS의 세금문제와, 지적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문제, 그리고 서류상 가짜 회사 (paper company)를 만들어 재정 문제를 속이는 등, 현대 사회의 시장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특별히 사모 펀드 (private equity)의 규정들은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게 복잡한 현대 시장 구조 속에서 8계명을 잘 지키려고 하면 성경 (Text)뿐만 아니라, 상황(Context)도 잘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교회를 잘 섬기며, 많은 헌금을 하는 장로님이 자기 회사를 경영하면서 다양한 수법으로 8계명을 어길 수 있다. 교회에서는 정직한 기업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죄를 지을 수 있다.

2007년 미국의 유명한 에너지기업, 엔론(Enron)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서 많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그 회사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좋은 크리스천들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회사의 회계 부정으로 많은 사람을 속였다. 엘론의 창업자 및 CEO, 케니 레이 (Kenneth Lee Lay)는 열심 있는 크리스천이었고, 다니면서 많은 교회에서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속에 (pluralistic society)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오직 말씀으로 (sola scriptura)라는 뜻은 말씀만 잘 알고 (text) 있으며, 상황 (context)를 몰라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직 말씀”이라는 뜻은 각자가 사는 상황 속에 성경 말씀을 잘 적용할 수 있는 것까지 포함된다. 설교자들이 매 주일 설교하는 성경적인 설교 Biblical preaching)는 성경의 내용 (Text)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사적인 (redemptive history) 설교를 주장하는 설교자들도 하나님의 구속 섭리가 오늘 나의 삶의 상황 속에 (Here and Now)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온전한 설교가 되지 못하며 바른 신학이 되지 못한다. 개혁주의 신학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곧 나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 말씀 (특별히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가 사는 삶의 상황 (here & now)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해야 한다.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면서도 가장 비성경적인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신학은 절대적으로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변하는 세상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지도해 주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은 하나님께 가셨지만, 한국 선교사로 계셨고, 나중에 미국에 오셔서 필라델피아 웨스터민스트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쳤던 하비 칸 Harvey Conn) 교수의 “영원한 말씀과 변하는 세상” 책에 잘 나와 있다. 하비 칸 교수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말씀 (text) 과 상황 (context)의 관계를 잘 설명한다.

성경을 바로 안다는 것은 성경으로 상황을 분석, 비판, 그리고 성경적인 삶의 방향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KHL0206@gmail.com

06.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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