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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3)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B. 성경의 무오성 (The inerrancy of Scripture):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는 그루뎀의 <조직신학>을 주로 참고했다.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서 성경의 영감설은 주장하지만, 성경의 무오성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은 무오 하시지만 성경은 무오 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혹은 성경이 신앙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무오 하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과학적인 사실과 역사적인 사실에는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를 물질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한다. 유한이 무한을 포용할 수 없기 때문에 (finitum non capax infiniti), 당연히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그리고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이루신 구원 사건에 대해서만 무오 하다고 하며, 성경의 무오성은 부인한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을 마치 성경을 우상화하는 것처럼 말한다.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이론들은 너무나 많이 있다.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성경의 무성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부인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개혁주의 입장에 의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은 무오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진실하시고, 전혀 오류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무오성은 하나님의 속성과 직접 관계가 있다.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는데,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에 충분 함하다는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언어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동시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셨고, 성경을 기록하는 과정도 성경을 보존 전달하는 과정도 모두 성령께서 친히 간섭하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도록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 성경이 인간의 일상적인 언어의 표현으로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오 하다. 

예를 들면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해가 떴다”라고 말하지 “지구가 자전했다”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움직이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기 때문이다. 

또 숫자를 세거나 계산을 할 때도 지금 나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냐? 물었을 때 20불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19불 혹은 21불이다. 이 경우에 “너 왜 거짓말했느냐”라고 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이 정도 오차는 상식적으로 서로가 인정하는 오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50불 혹은 100불을 가지고 있으면 거짓말일 것이다. 

성경에서 출애굽기 12:41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애굽에 종살이를 했다고 하고, 창 15:13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할 것을 예언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의 기간은 430년이다. 그러나 400년이라는 기록도 틀린 말이 아니다. 400년이라는 긴 세월 앞에서 30년의 근사치는 일상의 의사소통에서 허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를 놓고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거리는 일반적으로 3000마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2,789 마일이다. 그런데 3000 마일이라고 해도 틀렸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의사소통의 관계에서 그 정도의 오차는 모두 인정하기 때문이다. 

 

2) 성경에 특이한 표현이 있다고 해서 무오성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성경 저자들의 기록 속에 문법적으로 바르지 못한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 문장의 진실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우리가 볼 때에 문법적으로는 틀리지만 그러나 수천 년 전 그 당시의 문화 권속에서 사실을 전달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당시의 소통에서 그러한 표현들이 더욱 자연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문법의 규칙이 단수 동사를 사용해야 하는데 복수 동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남성 형용사를 사용해야 하는 데 여성 형용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문법적인 불규칙적인 경우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의사 전달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아니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문법에 맞지 않게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꼭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확한 문법을 사용하지 못하다고 해도 충분히 의사전달을 진실되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정확한 문법을 사용하면서도 내용이 거짓인 경우도 있다. 성경에는 일반적인 문법 기준으로 볼 때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무오 하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진실하기 때문이다. 

 

3)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에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인용하지 아니할지라도 성경은 무오 하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에 헬라어 문장에는 따옴표가 없다. 단지 인용한 내용이 진실하면 문제가 없다. 각 단어를 정확하게 인용할 것을 기대하지 아니했다. 실제로 신약의 자자들이 구약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똑같이 인용하지 아니해도 성경의 무오성에는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인용된 내용이 진실하기 때문이다. 

 

4)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반대 논리들 

(a) 성경은 단지 “믿음과 행위”에 대해서만 무오 하다. 

성경 내용 중에 교리와 삶의 지침의 내용에는 오류가 없지만,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건의 경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종종 성경의 무흠 (infallible)을 주장하지만, 그러나 무오 (inerrant)라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한다. 오늘날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성경의 infallible은 인정하지만, 그러나 성경의 inerrant는 믿지 아니하는 학자들도 있다. 

원래는 infallible이라는 말과 inerrant는 서로 호환해서 사용했고, 같은 의미로 이해했지만, 그러나 오늘날 21세기에는 의미상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성경의 inerrant (무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우리는 성경의 infallible과 inerrant를 모두 믿는다. 

성경은 어느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만 진실하다고 말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가 있다. 그리고 성경은 모든 주제에서 정확 무오 하다.

신약의 저자들은 성경이 믿음과 행위에서만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모든 말씀이 무오 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그 사건들이 오류가 없는 진실된 사건임을 주장한다. 

(b) 우리는 무오 한 성경 사본 (manuscript)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성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 무오는 원본에 해당되는 것이지 사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원본이 없고, 단지 성경의 사본밖에 없는데 어떻게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은 원본만큼 그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은 무오 할 수밖에 없다.

언어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며, 모든 과정에 성령께서 친히 간섭하셨기 때문이다.

 

 

성경 사본들 사이의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는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늘날 성경 학자들의 연구로 사본학의 매우 발달하여 거의 원본과 같은 성경의 본문을 구성했다. 사본들의 문맥을 보면 원본의 내용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꼭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잘 알아야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 성경에도, “어떤 사본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혹은 “고대 사본 가운데 어떤 사본에는 ----라고 되었다, 첨가되었다” 말들이 각주에 표기되었기 때문에 성경의 사본을 읽으면 원본의 문맥과 전혀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사본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는 브루스 매닝 메츠거 (Bruce M. Metzger)의 신약의 사본학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Ist Transmission, Corruption, and Restoration)의 책이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성경의 원본이 무오 하다고 말할 때, 이것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이 무오 하다는 주장을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사본들은 결국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c) 성경에 난해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오류라고 할 수 없다. 

많은 주석가들이 성경의 난해한 부분들을 연구하였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 성경의 언어학적, 역사적, 과학적, 상황적인 증거를 우리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오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경에 오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 그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맡기고 억지로 성경을 풀지 말아야 한다. 성경의 난해한 부분들을 명쾌하게 알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의 진리를 알고 또한 신앙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우리에게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난제가 있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성경의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한 좋은 참고 책들은 글리슨 아처(Gleason L. Archer)의 <성경 난제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the Bible Difficulty), 월터 C. 카이저 외에 여러 명의 공저 <IVP 성경난제주석> 그리고 William Arndt, <Does the Bible Contradict Itself?>는 매우 유용한 책들이다. 

그리고 성경이 19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들이 지난 1900년간 항상 존재해 온 문제들이다. 성경에 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00년 이상 교회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굳게 믿었다. 최근에도 매우 유능한 성경학자들이 이 문제들을 연구하고 있으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할수록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을 더욱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저자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KHL0206@gmail.com

07.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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