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중앙장로교회)
제 고향은 태백산맥이 끝나는 산자락에 있는 농촌 마을입니다. 문을 열면 뒤편에는 나지막한 산맥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사방에는 푸른 보리밭이 펼쳐지고 마을 앞에는 엄마 품 같은 강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새벽이 밝아오고 저녁이 찾아오면 집집마다 밥을 짓느라 굴뚝에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입니다. 여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논에 모를 심느라 줄을 지어 있는 장면도 떠오릅니다. 저도 초등학교부터 모심기를 할 때 허리를 굽힌 채 모를 심다가 가끔 허리를 펴주면 시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름에 연두색으로 자라는 모를 헤치고 무성하게 자라는 ‘피’라는 불청객을 뽑아내느라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피라는 놈은 뿌리가 깊어 쉽게 뽑히지 않아 질퍽한 논 한 가운데에서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다가 뒤로 넘어져 진흙탕물로 얼굴을 씻어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시절, 저는 고향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났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에 가장 깊게 다가오는 것은 캄캄한 밤하늘의 별입니다. 전기가 없었던 마을은 밤이 되면 캄캄해지고, 특히 달빛이 없는 겨울밤이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마치 온 세상이 검은색의 병풍을 두른 듯 했습니다. 눈을 감고 그날을 그려보면 어둠을 뚫고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이 보입니다. 고향 하늘의 밤은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흘렀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가 밤을 지켰습니다. 호롱불을 켠 마을에 내리는 별무리들은 머리 위로 쏟아질 듯 온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가을날 추수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강둑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온 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이 친구가 된 듯이 머리 위로 내려와 노래를 부릅니다. 저는 그렇게 별들을 세며 밤이 깊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온 마을에 별들은 서서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도심의 불빛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을 막아버립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하늘에는 별들이 사라졌습니다. 우리 마음에 별들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여년 전 중국 만주에서 지냈을 때입니다. 그 옛날 시골에서 본 밤하늘의 별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랜드 캐년의 깊은 밤에 불빛 하나 없는 곳으로 나가 바라본 하늘에도 옛 고향 하늘의 별들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의 빛이 사라지는 곳에 하늘의 빛이 내려왔습니다. 우리 영혼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질수록 하늘의 빛은 멀어질 것입니다.
하늘의 별이 세상을 비추듯 영혼의 빛이 되시는 주님,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신 주님. 주님의 빛을 우리 영혼에 가득히 담아 온 세상에 당신의 빛 비추게 하소서. 세상의 화려한 것을 다 걷어내고 주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은 영혼 위에 하늘의 빛으로 우리를 맑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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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