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장로교 청교도들의 교회관은 모든 회중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지도자들을 선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각 지교회 위에 노회와 대회, 그리고 총회가 있어 계급적인 정치 체제를 가졌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장로교회가 국가교회이기 때문에 모든 시민들이 교회의 회원이되었고, 유아세례를 받아야하며,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이러한 국가적인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국교회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이러한 장로교회는 회중 교회 청교도 (분리파, 비분립파)가 주장하는 교회 언약을 채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교회언약 속에는 자발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자발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청교도 회중제도 (Congregationalism)는 모든 교회는 자발적인 언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위 기관이나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 교회의 운영도 자발적인 언약으로 구성된 성도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면 국가로부터 혹은 상위 기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서는 안되었다.
영국에서 분리파 청교도들이 점차적으로 많아짐에 따라 영국정부와 영국교회는 탄압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분리파 청교도들의 지도자인 헨리 베로우 (Henry Barrowe) 와 존 그린우드 (John Greenwood)는 1593년 처형되었다. 많은 분리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투옥되거나 심한 박해를 받아 영국에서는 그 힘을 잃게된다.
그리고 영국에서 독립파 청교도 (Independents) 운동은 헨리 제이콥 (Henry Jacob)에 의해 시작되었다. 독립파 청교도 운동과 분리파 청교도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영국교회에 대한 개념이다. 1596년 헨리 제이콥은 분리파 운동은 잘못이며, 영국교회는 국가교회가 (State Church)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리파 청교도들은 영국교회를 부정했지만, 그러나 독립파 청교도들은 영국교회를 인정했다.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1세의 사망으로 튜더 왕조의 (Tudor Dynasty) 대가 끊기자,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를 겸하게 되면서 스튜어트 (Stewart) 왕조가 영국의 섬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1603년 제임스 1세가 스코틀랜드에서 영국으로 와서 왕위에 오르자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밀레너리 청원 (Millenary Petition)” 를 작성한 청교도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은 헨리 제이콥이었다. (밀레너리 청원은 , Millenary Petition, 1603년에 청교도 목회자 천명이 제임스 1세에게 보낸 청원서이다. 이 때는 바로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르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던 때였다. 이 청원은 제임스 왕에 의하여 기각되었다. 그러나 제임스 1세가 킹제임스 성경을 만드는 것은 허락했다).
헨리 제이콥은 브라운, 베로우, 그리고 그린우드와 같은 분리주의 청교도들과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영국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러나 그는 영국교회를 교회로 인정했고, 분리주의 청교도와같이 영국교회 권위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아니했다.
독립파 (비분리파) 청교도들은 영국교회로부터 분리를 원치 아니하고, 영국교회를 인정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교회관은 성도들의 자발적인 교회언약을 통해 교회의 회원권을 갖는다는 것은 분리파 청교도들과 흡사하다.
헨리 제이콥은 자기가 작성한 요리문답에서, “교회는 하나가 되어 거룩한 공동체로서 언약을 통해 믿는 자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구성된다. (Question: How is the visible church constituted & gathered? Answer: by a free mutual consent of Believers joining and covenanting to live as members of a holy society together an all religious & virtuous duties as Christ & his Apostles did institute & practice in the Gospel. By such a free mutual consent also all civil perfect corporation did first beginner.).
제이콥의 교회관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언약을 통해 회원권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교회의 정치와 예배를 비롯해서 모든 운영은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그 교회에서 자치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역사적으로 제이콥의 이러한 회중교회 사상을 널리 보급한 사람이 윌리엄 브래드쇼 (William Bradshaw 1571-1618)이다. 그는 주장하기를, “그리스도의 교회란 예배를 위하여 모인 회중이다. 다른 어떤 것도 목적이 될 수 없다. 교회의 조직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교회로 모인 각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동등한 권위를 가지며, 각 교회는 독립적인 주권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 치리한다. 어떤 상위의 기관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
청교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언약을 체택하는 것은 영국교회에서 보면 불법이며, 영국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사상이다. 영국교회뿐만 아니라, 장로교파 청교도들도 이러한 교회관을 거절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국가교회 스타일로 생각했다. 국가교회는 그 국가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칼빈에 의하면 교회는 “무형교회” (invisible Church)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모든 택함을 받은 자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칼빈의 교회관은 특별히 기독교강요 4:1:7에서 잘 설명한다). 그러나 칼빈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형교회는 택함을 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함께 공존함을 주장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누구인지 가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회중교회와 차이가 있다. 회중교회는 유형교회 회원의 거룩함, visible saints, 참된 믿음의 성도들만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에 의하면 유형교회에서 참교회를 가려내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성경대로 합법적으로 집행되는 것에서 찾았다. 이 기준은 교회의 회원들의 신앙의 질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직자들의 객관적인 행위를 기준으로한다.
칼빈의 교회관을 기초로 하는 장로교 청교도들은 유형적인 교회는 참 성도들과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상태로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것을 완벽하게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누가 택함을 받은 자들과 그렇지 아니한자들을 구분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는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회중교회 교회관은 자발적으로 교회 언약을 통해 교회의 회원이되며, 교회가 세워지기 때문에 국가교회인 영국에서는 이 사상이 불법이었다. 그러므로 회중 교회 청교도들은 결국 영국을 떠나 뉴잉글랜드로 와서 그들의 교회 언약을 기초로하는 회중 교회의 이상을 실천하게 된다.
1620년 분리파 청교도들인 순례자들, 즉 필그림 (Pilgrim)들은 화란을 거쳐 뉴잉글랜드로 와서 정착하게 된다. 이들은 분리파 청교도들인데 메이플라우어 언약을 체결함으로 교회언약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드디어 뉴잉글랜드에서는 그들의 뜻을 이루게 된다. 메이플라우어 언약 (Mayflower Compact), “우리는 함께 그리고 엄숙하게 하나님과 서로에게 우리의 질서와 보존을 위해 함께 공동체적인 체제를 만들기로 서약한다.”
(“We, do, by these presents, solemnly and mutually, in the presence of God and one of another, covenant and combine ourselves together into a Civil Body Politic, for our better ordering and preservation.”)
이 교회 언약은 사회언약의 성격까지 띠게 된다. 이들은 플리머스에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는 엄숙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의해 세워졌다.
윌리엄 브레드포드 (William Bradford, 1590 – 1657)는 메이플라워 협정의 서명자였으며, 1621년부터 1657년까지 약 30년 동안 플리머스 식민지의 주지사를 역임했다(Governor of the Plymouth Colony 물론 중간에 쉬기도했다). 그의 저널인 Plymouth Plantation은 1620년부터 1646년까지 Plymouth의 역사를 잘 다루었다. 브레드포는 교회 언약을 만들어 하나님이 힘 주시는대로 최선을 다하여 믿음의 공동체로서 주님께 순종한다고 맹세했다.
1629년 존 화이트 (John White)의 지도하에 살렘에 도착한 분리주의 소수의 청교도들은 살렘 교회를 세워 교회 언약을 채택했다. 그들의 1629년 살렘 교회 언약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과 서로에게 다음과 같이 언약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우리에게 계시하신 진리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함께 따르고 순종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서역한다.” (The Salem Covenant of 1629: We covenant with the Lord and one with another; and in the presence of God, to walk together in all his ways, according as he is pleased to reveal himself unto us his Blessed word of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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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