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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터를 굳게 하라”

여승훈 목사

건물을 세워 올리는 과정에서 터 닦기가 얼마나 중요한가? 터 닦기를 부실하게 하면 건물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로 서 있게 된다. 터 닦기가 부실한채로 건물을 높이 쌓아 올린다고 상상해보라. 1층일 때보다는 2층일 때가 더욱 불안정하고 2층일 때보다는 3층일 때가 더욱 불안정해진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수록 불안정감은 더욱 크게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신앙의 터가 약하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리고 사역을 하면 할수록 신앙적 불안정감은 더욱 크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현대 교회들이 한동안은 활발하게 성장해 가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신앙의 터’를 소홀히 하고 ‘부흥주의’로 치닫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부흥이 임했을 때마다 영적대각성이 일어나면서 사람들 가운데 회개와 삶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났었다. 그러나 부흥주의는 분위기에 편승한다. 활동적이고, 감동적인 분위기에 젖어 들어간다. 영적 대각성과 회개와 삶의 변화는 너무나 미미한데 활동적이고 감동적인 분의기를 너무 좋아한다. 그런 분위기에 매료되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영적 불안정감은 더욱 더 높아지게 된다.

부흥주의의 폐단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현대 교회들에게 생각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전도대상자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만 가지던 관심을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교회안의 사람들을 전도대상자로 인식하라는 말에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미국 남침례교단의 대표적인 지도자들 몇분이 모여서 좌담회를 가지는 영상을 보았던 적이 있다. 그 가운데 70대중반 정도로 보이는 백인 목사님의 말씀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현재 미국교회 전체멤버들 가운데 예수님을 확실히 영접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약 5%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5%면 100명 가운데 5명이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인식하고 종교적 의무감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3절에서 터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할 것을 말하였다. 신앙의 터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일에 정진하는 것, 바로 이것이 참 부흥의 초석이다. 신앙의 터 위에 굳게 선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견고하고 좋은 기초를 가진 건축물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건물을 세우는 과정에서 터를 닦는 일에 사활을 걸지 않고 대충한다면 그 건축은 부실공사가 되고 말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현대 교회를 친히 방문하셔서 한사람 한사람에게 신앙의 기초를 검증한다면 부실판정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실판정을 받을 것이다.

신앙의 기초가 부실하면 분위기에 편승하는 신앙생활을 한다. 신앙의 기초를 간접적으로 가늠해보기 위한 한 가지 실제적인 방안을 제안해 보겠다. 사람이 아주 적게 모이는 곳에 가서 예배를 드려보라. 사람이 적게 모인 곳에는 외관상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런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예배드릴 기분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틀림없이 신앙의 기초가 부실한 상태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샤핑몰에 갔을 때 사람이 적으면 샤핑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샤핑몰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샤핑몰이 아니지 않는가?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분위기로 인하여 예배드릴 기분을 찾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신앙의 터가 되시는 구주 예수그리스도가 행하신 일들로 인하여 예배드릴 감격이 치솟아 올라오는 곳이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한 가지 이유는 신앙의 터가 되시는 구주 예수그리스도 때문이다. 바로 이 사실을 너무나 많은 현대 교회들이 놓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교회가 스스로의 거룩성을 상실하고 세속화 되어가는 이유인 것이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오직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구주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소리 높여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감격이 흘러넘치는 곳, 바로 그곳이 주 예수그리스도가 머리로 계시는 참 교회의 모습이다. 신앙의 터가 되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마음이 충만하게 연결되지 않으면 그런 감격을 결코 맛볼 수 없다. 신앙의 터가 되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마음이 충만하게 연결되지 않으면 영혼이 메마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 분위기에서 예배의 감격을 찾아내려고 한다. 분명히 기억하라. 기독교는 결코 샤핑몰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신앙의 터가 되는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주목하라.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때문에 마음이 설레는 감격스런 예배를 드리라.

필자는 2009년도에 석달 간격으로 뉴저지한인장로교회 부흥회와 미네소타지역 한인교회연합부흥회 강사로 섬겼던 적이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얼마나 흥분이 되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몇 달 뒤에 텍사스 킬린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 하는데 약 60-70명 정도 모였던 것 같다. 몇백명이 모이는 집회에서 그렇게 흥분되었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맥이 빠진 채 3일간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왔다. 그 다음 주 화요일 새벽에 강단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제대로 책망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였다. 사람이 모인 숫자에 따라서 달라졌던 저의 마음의 태도를 뼈저리게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주신 은혜는 주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지가 예배의 핵심이며 설교의 근간이 되며 감격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예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라.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예배당에 와서 앉아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구에게 무엇으로 인하여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가?” 대답은 오직 한가지다. 그것은 온 세상의 구주 되시는 예수그리스도 때문이다. 구주 예수그리스도께 초점하면 할수록 그 예배는 감격스럽고 은혜로울 것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은 샤핑몰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들지 않고 벗어나기 위해서 날마다 순간마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묵상하고 떠올려라. 사도바울이 밝힌 골로새교회가 흔들거렸던 이유는 한가지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붙들지 아니하고 적당히 붙들었던 것이 골로새교회가 흔들렸던 핵심이유였다.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생각의 시선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신앙의 터가 흔들거리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그토록 단순한 진리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묵상하는 일에 전력 질주하라.

 

10/2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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