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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광복(光復)인 대한민국

송종록 선교사

금년은 광복 74주년이 되는 때이다. 해마다 8월이 되면 대부분의 한인들은 1945년의 8.15 광복을 기억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뇌리 속에서 퇴색되어가고 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이민 한인사회에서는 민족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이대로 30년, 70년, 100년이 흐른다면 한민족의 정체성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뜻 깊은 광복절을 맞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며 다가올 미래를 예견해야 한다. 

지금 우리 조국은 내, 외적으로 수많은 도전 앞에 직면해있다. 그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갈 길은 멀고 더디기만 하다. 광복절이라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아직 오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한민족에게 분단을 극복하지 않는 한 광복은 아직 미완성이다. 시대적으로 어려운 이때에 전 세계 한인 크리스천들이 기도하며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1. 광복을 맞이하는 이스라엘의 노래 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1). 시편126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편)중 일곱 번째 노래이다. 유대 민족은 BC 586년 바벨론에 잡혀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 하였다. 그들은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수금을 버드나무 꼭대기에 걸어두고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포로생활이 끝나고 돌아올 때 다시 수금을 켰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레스 왕에 의해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그토록 사모했던 성전을 향해 나아가면서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것이다.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에게 완전한 광복은 되지 아니 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이 바벨론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방 시내들이 우기에 물이 가득 차서 다시 흐르는 것처럼 동족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구하고 있다(시126:4). 이는 남은 자들을 위한 ‘공동체 탄원시’(Poem of Community for the Laments)인 셈이다. 한량없는 기쁨과 간절한 탄원이 함께 묻혀 있는 본 시는 우리 한민족 교회가 읊어야 할 기도 시가 아닐까?

 

2. 한민족 역사 가운데서의 광복

   

광복절(光復節)은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그 압제 아래서 신음하다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光復)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서 잃었던 국권(國權)의 회복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1910년 8월 29일에 한일합방에 조인함으로서 나라 잃은 백성이 되었다. 해방되기까지 36년간 주권 없는 민족으로 슬픈 역사가 진행됐다. 긴 식민지통치 하에서 우리나라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 등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했다. 또한 우리민족 고유의 역사와 언어 및 우리의 이름까지 빼앗기는 노예상태였다. 일본 군국주의는 세계 패권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었다. 저들은 마침내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인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서 우리 조국 땅과 백성들은 완전히 전쟁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간 빼놓을 수 없는 만행 하나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전역에 신사를 짓고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절을 하게하며 숭고한 신앙을 빼앗아간 것이다. 절대자 하나님을 배격한 신사참배는 그 자체가 우상숭배요, 십계명 중 제2계명을 어긴 것이다. 

 

3. 한반도에 광복이 미완성인 이유

   

우리 한민족은 올해로 단기 4352년의 역사이다. 유구한 역사 동안 우리는 단일혈통, 단일언어, 단일문화를 가진 채 선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1945년 해방 직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구열강에 의해서 분단되어 버렸다. 이것은 큰 오판이며 비극의 씨앗이었다. 역사의 전환기에는 어디에나 과도기가 있기 마련이다. 만일 우리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처절한 6.25동족상잔도 없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분단의 아픔과 이념갈등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역사적 논점에서 본다면 한민족 분단은 참으로 억울하다. 굳이 승전국의 전리품으로서 나라 강점을 원했다면 일본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를 강점했을 뿐만 아니라 2차 대전의 패전국이다. 저들의 죄과를 어떻게 다 값을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우리민족은 남북이 고착화되기 전에 평화통일의 길로 가야 한다. 

익히 아는 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기이하고 비밀스러운 전체주의 국가이다. 그곳에는 2,500만 명의 백성들이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 대신 김일성 3대를 신봉하는 주체사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형제자매요, 한 핏줄인 저들을 방치한 체 어찌 우리끼리만 모여 노래하며 만세삼창을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한민족에게 광복은 아직 미완성이다.

 

4. 온전한 광복의 길을 저해하는 세력들

   

속된 말로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국가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월 28-29일 G20 오사카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자마자 그간 은밀하게 준비한 카드로 한국산업의 급소를 찔렀다. 더욱이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명명하기까지 했다. 조금 힘이 있다고 갑질을 한 것이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했던가? 북한은 철들지 않는 망나니처럼 미사일을 쏘아대며 막말을 퍼붓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어떠한가? 폭격기로 독도 영공을 침입하고서도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큰 나라로서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이다. 우리의 우방이자 가장 힘이 되어온 미국은 주한미군의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방위비 인상이 렌트비 받는 것보다 쉽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혈맹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장사논리로 보고 있지 않나 싶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어려운 이때 말이다. 

설상가상이란 말이 있다. 사방이 첩첩산중이다. 북한과 함께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4대 열강중 만만한 상대가 어느 하나도 없다. 미일중러는 우리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남북 당사자간의 해결의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결의 이해당사자국임을 주장하며 영향력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다. 

 

5. 광복을 향한 한민족의 잠재력

 

우리 한민족은 우수한 점이 참 많다. 총명하고 근면하며 속도감이 있고 인동초처럼 어떤 고난과 역경도 극복해왔다. 이 작은 국토에서 적은 인구로 세계 제1인 기록들이 얼마나 많은가?  황지연 통일교육위원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 1위인 상품이 117개나 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18년 동안 세계기능올림픽 1위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1년이 되면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반해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한국이 2040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미국다음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왜 이렇게 상반된 예측을 했을까? 문제는 통일이다. 남북 평화 경제 협력여부에 따라서 이렇게 길이 갈린다는 통계이다. 통일이 우리민족의 블루오션인 것이다. 통일이 되면 한반도는 기회의 땅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완전한 민족광복을 의미한다. 이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피땀 흘리고 힘을 합쳐 만들어야 할 과업이다. 우리민족의 찬란한 미래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6. 완전한 광복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2019년 광복절을 맞이하며 한인세계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광복의 가장 큰 의미는 억눌림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다. 광복은 단순히 정치적 자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자유 즉, 영혼의 자유에 대한 추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복절의 의미를 단순히 역사적 입장에서 관찰할 것이 아니라 신앙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첫째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사랑은커녕 오히려 반목하며 지체들끼리 대립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서야 되겠는가? 진정한 참회 없이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다. 

둘째 세상을 향해 선을 행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입을 보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본다. 남북의 갈등 이전에 남남의 이념적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누가 이 고랑을 메울 것인가? 그리스도의 희생적 본이 아니고서는 방법이 없다. 이는 한인교회의 몫이다. 우리의 도덕적 각성이 교회의 담을 넘어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셋째 선지적 나팔을 부는 것이다. 열방의 제사장나라로 우뚝 서기 위해 우리는 남북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교회는 미시적 관점으로는 개인의 영혼 구원, 거시적으로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통찰력을 겸비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는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것이다. 북녘의 형제자매들을 저렇게 놓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맺음 말

   

우리 민족은 불행히도 역사적 격변기마다 국제정치나 시대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늘 주변 국가들의 침략과 약탈을 당한 과거사를 갖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피해를 더 이상 당해서는 아니 된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력G12권 이내이다. 이제 누구도 우리를 쉽게 대할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길을 방해하며 가장 경계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주변국의 수구세력들이다. 우리는 냉혹한 이 현실을 직시하며 이번 광복절을 맞이해야 한다. 내부의 적 1명은 외부의 적 100명보다 무섭다. 우리 한민족이 힘을 합치면 두려울 것이 없다. 8백만의 이스라엘이 13억의 아랍권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함”(고후4:8-9)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높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산성이 되어 주실 것이다. 

jrsong007@hanmail.net

 

08.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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