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보장’ 미국 대법원 판결 49년 만에 뒤집혀

연방대법원 낙태권 폐기에 따른 파장과 향후 피임, 동성결혼 판례 번복될

미연방 대법원이 50여 년 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미국 여성 수백만 명이 낙태(임신중단)에 대한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지난달 24일,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인해 개별 주에서 임신중단을 금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50개 주 중 절반에서는 임신중단 관련 새로운 규제나 금지 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3개 주에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면 임신중단을 자동으로 불법화하는 방아쇠 법(trigger law)들을 통과시켰다.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자마자, 일부 병원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취소하기 시작했다고 AP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낙태가 금지된 주에서는 이전처럼 임신 중절 수술했다가는 처벌받게 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판결이 나온 직후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애리조나, 아칸소, 켄터키, 미주리, 사우스다코타, 위스콘신, 웨스트버지니아, 루이지애나 등에서는 병원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속속 중단했다.

따라서 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례를 폐기하기로 하면서 주(州) 경계는 물론 국경까지 넘는 원정 낙태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낙태를 돕는 멕시코 시민단체 '네세시토 아보르타르'('나는 낙태가 필요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에는 미국 여성들의 소셜미디어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비극적 오류"라고 말하면서 각 주에서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임신중단 수술을 제공하는 의료 기관인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에 따르면 연방대법원 판결로 인해 미국 내 가임기 여성 3,600만 명이 임신중단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법원 밖에는 양측 시위대가 모여들어 경찰이 이들을 떼어 놓아야 했다.

한 임신중단 반대 운동가는 법원 판결에 환호하며 BBC에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단지 (임신중단 금지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생명권을 지킨다는 것은 (임신중단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임신중단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번 판결이 "불법적"이며 심지어 "파시즘"의 한 형태라고 비난했다.

사만사 그랜빌 BBC 기자는 미국 아칸소주 리틀 록에 있는 임신 중절 병원에서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는 판결이 전해진 후 환자 구역의 문이 닫혔고, 떠나달라는 요청을 받기 직전에 먼 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아칸소주는 방아쇠 법을 도입한 곳 중 하나다.

'로 대 웨이드'는 1973년 이뤄진 기념비적 판결이다. 대법원은 7대 2 의견으로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가 미국 헌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인해 미국 여성들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낙태권을 완전히 보장받았다. 이후 3개월 동안은 제한적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임신중단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12개 이상의 주에서 임신중단 반대 판결을 내리면서 낙태권이 서서히 축소돼왔다.

앞서 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 사건 심리를 진행해왔다.

현재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인 대법원은 미시시피주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임신중단에 대한 헌법상의 권리를 사실상 폐기했다.

사무엘 알리토와 클라렌스 토마스,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 5명의 대법관은 이번 결정에 확고한 지지를 보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미시시피주의 판결을 지지하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데는 회의적이라는 내용의 개별 의견을 냈다.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등 다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은 세 명의 대법관은 "슬픈 마음으로 법원을 위해,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기본적인 헌법적 보호 수단을 잃은 수백만 명의 미국 여성을 위해" 반대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이전 대법원 판례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극히 드문 조치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국가 분열을 야기하는 정치적 분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임신중단에 대한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는 곳에서는 선거 결과에 따라 합법 여부가 바뀔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개인이 임신중단이 허용된 주에서 수술받고 오거나 임신중단 약물을 배송받는 것이 합법인지를 두고 법적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면서 임신중단이 금지된 주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임신중단이 합법인 주에서 수술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미시간 등의 여러 민주당 주지사들은 이미 주 헌법에 낙태권을 명시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테이트 리브스 미시시피 주지사는 대법원 판결 직후 이를 환영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불의 중 하나를 극복하도록 국가를 이끌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우리가 더 많은 아이와 유모차, 성적표, 소규모 스포츠 경기 등을 볼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밝혔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오랫동안 비판해 온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생명의 존엄성"이 모든 주에서 법으로 보호될 때까지 멈추지 말라고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공화당이 통제하는 대법원"이 당의 "어둡고 극단적인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미국 여성은 어머니 세대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며 "이 잔인한 판결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대법원이 오래전 판례를 뒤집음으로써 다른 권리를 보장한 판례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클래런스 토마스 판사는 "앞으로 사건을 다룰 때 그리스월드, 로런스, 오버게펠 등 대법원 실질적 적법절차를 거친 모든 판례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언급된 대법원 판례들은 각각 피임, 동성 성관계, 동성혼을 인정했다. 

07.0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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