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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교회가 소망을 말할 수 있다

모든 나라의 역사에는 역사적 인물이 있었다. 캄캄하게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도 어느 한구석에는 작은 빛을 밝히는 인물이 있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역사 속의 인물을 찾아서 지혜를 구하곤 했다. 

오늘 한국의 당면한 문제는 이웃과의 관계문제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그렇고 미국과 중국 소련 그리고 유럽과 동남아국가들 등 지구촌 이웃들과의 관계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 해법도 정치적 해법도 사용해보지만 근본적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듯 하다.

오늘 교회의 당면한 문제 또한 관계문제이다. 신학과 신학이 늘 부딪쳐왔고 전통은 변화와 다투면서도 지킬 것과 버릴 것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아무리해도 늘 반복되는 문제 속에서 아우대고 있는 교회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갖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 확실하다. 나의 판단과 주장은 있는데 기준선인 성경조차 나의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저마다의 판단과 주장이 되어 안타깝지만 결국 다툼의 관계로 존재하고 있는 무생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때, 나라와 교회에 이정표가 될 만한 인물이 다시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오게 되었다. LA의 음악인, 연기자, 그리고 지망생들이 참여해 만든 ‘뮤지컬 도산’을 통해 오늘을 사는 이민자들, 오늘을 성도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메시지가 선포되었다. 지난 3월 초연에 이어 앵콜공연으로 올려진 LA공연에서 이 작품은 나라사랑과 그 사랑의 방법들을 제시해주었다. 22막의 스토리 요소요소에 때론 큰 소리로, 때론 작은 소리로 들려온 메시지의 결국은 ‘정직함’이었다.

청소년기에 언더우드의 구세학당(현, 경신중고등학교)에서 신학문을 접하고 기독교정신을 만난 도산은 60평생을 정직하게 살았다. 그를 평가할 최후의 단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만큼 그는 큰 사람, 깊은 사람이었다. 성실, 인내, 의지, 열심.... 모든 단어가 도산과 만나면 사랑으로 승화했고 그 사랑을 이루는 방법은 한 곳으로 귀결되었다. ‘정직.’ 도산이 그렇게도 조국의 독립을 애타게 기다리며 부르짖던 외침은 그를 성실하고, 참고, 열심히 의지를 굽히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났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이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정직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어떤 사람, 어떤 상황, 어떤 일 앞에서도 정직했다. 그렇게 살다 그렇게 하나님 앞으로 갔다. 그렇게 도산이 떠난지 80년이 지난 올해, 그가 정직을 품고 살며 나라를 사랑하던 이 미국 땅에서 그 분처럼 ‘동포’로 살아가는 이민자, 특히 차세대 젊은이들이 도산을 불러냈다. 이들이 쏟아낸 땀의 열정이 뮤지컬로 부활했고, 탁월한 달란트로 3시간을 이끌어간 최원현(도산 역)의 힘은 도산의 정신까지 부활시켰다.

우리는 오늘 위기 앞에 서있는 것이 맞다. 무엇보다 신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너무 비대해져서 위기이고, 너무 높아져서 위기며, 너무 편안해서 위기이다. 억압받고 빼앗겼던 도산의 시대와는 또 다른 형태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사 속에서 불러낸 도산의 생각들과 그의 삶이 절절하게 필요한 이 시대에 우리가 서야할 자리는 어디인가.

이민교회, 우리는 이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루어내야만 남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 아버지가 돈이 많아야 자식들에게 남겨졌는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로 남겨져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남겨준 것으로 좋은 자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이 아버지 같은 자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100년전 도산이 무얼 이루어냈는가? 그는 1938년 병상에서 쇠약한 환자로 세상을 떠났다. 이루고자 했던 것이 실패인 상태에서 그는 떠났다. 그런데 그는 살아나서 오늘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돌아와야 한다. 오히려 순박해지자. 오히려 단순해지자. 오히려 처음의 미숙했던 자리로 돌아가자.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이다. 하비루의 인생들이 창조주 앞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와 서야할 자리.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길 기다리는 것이 정직한 삶이다. 수문앞 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낭독 앞에서 울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 앞에서 솔직해지고 말씀 앞에서 정직해질 때 비로소 교회는 소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08.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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