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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하되 저질러진 죄악을 기억하라, 그리고 사죄하고 용서하라!”

③크리스천이자 존경받는 타카미츠 무라오카 교수 참회록

<1742호 2면에서 계속>

가해 국가 일본 출신의 참회하는 일본이 학자가 우리가 잊고 감추고 있는 진실을 일깨운다.

타카미츠 무라오카 교수는 고전 언어 및 문헌학의 대가다.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그는 “학자들의 학자”다. 도쿄대학과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수학하고 영국 맨체스터대학, 호주 멜버른대학, 네덜란드 라이든대학 등지에서 탁월한 가르침과 방대한 연구를 수행한 이 노학자(1938년 생)가 일생의 연구서들과는 결이 다른 역저를 내놓았다.

그는 최근 한국어 역본으로 선보이는 “나의 비아 돌로로사”는 영어 원제-My Via Dolorosa: Along the Trails of the Japanese Imperialism in Asia-에 생생히 드러나듯 20세기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 및 수탈의 역사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자, 그 추악한 역사 앞에서 느낀 고통스런 심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제국주의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 행한 침략과 수탈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아내와 함께 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미얀마,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중국, 대만, 보르네오, 태국에 이르는 피해국을 돌며 참배와 사죄, 자비량 강의 등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속죄의 책임을 이행해가는 여정을 담은 담백한 기록을 이 책에 담는다. 

무라오카는 이미 학문 업적으로 특별한 존경심을 받고 있다. 성경 히브리어 문법의 대작을 비롯해 히브리어 강조어법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 시리아어-아람어 문법, 사해문서 히브리어, 그리고 칠십인역 연구의 신기원을 이룬 최근의 칠십인역 헬라어 사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술 논문과 저서는 늘 그 분야의 기준을 세우고 신기원을 이루는 업적이었다. 

“나의 비아 돌로로사”는 이러한 학술 저서들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여전히 무라오카다운 책이다. 저자의 학문영역과 먼 내용을 다뤘지만 그의 학문정신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연구서를 자처하지 않는 수상집 형태지만 저자의 서술은 치밀하고 분석은 예리하며 성찰은 울림이 깊다.

처음 책장을 넘기며 “콰이강의 다리”라는 이야기가 눈에 와 닿는다. 

무라오카는 이 글에서 태평양 전쟁 말기 인도네시아와 버마 간의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무려 420km에 달하는 철도와 교량 건설에 불법적으로 동원된 포로들과 민간인들을 보게 해준다. 전쟁포로 6만명과 민간인 20만명이 동원된 이 공사에서 영양실조와 중노동, 전염병, 추락, 폭발물 사고 등으로 1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시신도 수습되지 않고 명부도 위령비도 보상금도 사과문도 없이 허공에 스러지고 말았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그들에게 합당한 사과나 보상을 제공한 바 없다.” 건조하다 못해 무정하게 들리는 몇 문장이 일본의 가해 행위의 규모와 참혹함을 오히려 더 깊이 각인시켜준다. 

이처럼 과거 일본이 많은 국가에 피해와 상처를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정작 일본인으로서 조국의 어두운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절감했다. 그는 일본정부를 대신해 그저 ‘죄송합니다’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방식으로 양심의 가책과 고통을 피해자들에게 보이고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실천적 방법으로 그는 일제 침탈로 인한 피해국을 순회하고 각국에서 5주간 머무르며 성경 히브리어와 사해문서 히브리어 등 그의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사역을 진행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을 아시아의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무료로 전하고, 몇몇 일본인은 이전 세대가 아시아 국가에 행한 일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들도 나눴다.

무라오카는 피해 국가 국민들이 일본의 악행과 그들의 선대가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감각하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일본 식민 체제가 자신들에게 유익을 주었다고 애써 강변하거나,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리워하는 그들을 마주보며 그는 반복해서 말한다: "당신들이 겪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내 조국 일본이 저지른 죄를 알고 기억하고, 그러고 나서 용서해야 한다."

피해자가 잊은, 혹은 잊으려 하거나 심지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과거를 가해자가 되살려 스스로의 죄악을 공론화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한 기록들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하다. 저자는 크든 작든 이미 저질러진 악행은 손쉽게 용서하고 편하게 망각할 수 없다며 참된 은혜의 본질에 대한 재고를 촉구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용서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죄악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에 대한 손쉬운 처방전이 될 수 없는, 값싼 은혜에 기초한 유사 복음일 뿐이다. 진정 은혜를 깨달은 자는 죄악이 가한 고통과 상처를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죄를 용서하고 상처를 싸맬 진정한 주체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용서와 치유를 가능케 하시기에, 무라오카는 자신이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대하되 저질러진 죄악을 기억하라, 그리고 사죄하고 용서하라고 조언한다.

무라오카의 충고는 허언이 아니다. 일본인의 의식을 강력히 지배하는 하나가 원폭 피해의식인데, 히로시마 피폭의 고통을 잊지 않고 “더 이상 히로시마가 없기를” 외치면서도, 자신들이 저지른 난징 유린을 기억하며 “더 이상 난징이 없기를” 다짐하지 않는 자기모순을 히로시마 태생의 무라오카는 통렬히 지적한다.

한국에서도 북콘서트를 통해 한국어판 번역본을 알린 무라오카 교수는 “나의 비아 돌로로사”가 한국인들에게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책이 되길 바라며 일제 치하의 잔재로 정신적, 물리적 고통을 겪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은 뜻을 전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가장 오래 겪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슬픔에 젖은 사람들, 1945년 8월 해방 이후에도 만족스럽게 풀리지 않는 한일관계 속에 상처를 갖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08.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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