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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벗 삼아 영적 성숙 이룬다!

TCG, 러스티 맥키 목사가 전하는 강요된 고립 통한 영적성장 노하우 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약간은 차이가 있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너무 힘들어 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기간이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시간일 수도 있다. 이들이 SNS에 올린 우스운 사진도 여러 장 봤다. 다른 사람과 관계하며 유지되던 우리의 삶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멈춰졌지만 대인관계를 부담스러워하던 이들에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히려 편안한 시간이 된 것이다. 격리기간이라 해도 아픈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취약계층에 있는 이들을 보살피겠지만 집 안에 머물며 그저 넷플릭스를 보게 돼 아주 신이 난 사람들도 있다.

러스티 맥기(the founding and lead pastor of Sojourn Community Church in Chattanooga, Tennessee) 목사는 오히려 팬데믹 상황이 강요하는 고립/외로움에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바른 길을 말해준다(Leverage Your Loneliness).

 

이해는 한다. 목사로서, 어린 자녀들의 아버지로서 내 삶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흔치 않은 시간, 그 아름다운 고독(solitude)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혼자서 누리는 자유의 시간, 그 초반의 흥분이 가시고 나면 외로움을 느낀다. 사람들이 그립다. 내 가족, 친구, 그리고 교회처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보고 싶다. 이런 패턴이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계속될지 알 수가 없다.

복잡한 사회에서 벗어나 혼자 있게 되면 처음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이 너무도 바쁘게 살아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TV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평소에는 결코 사먹지 않았던 즉석식품을 쌓아놓고 즐긴다. 고립이라는 햇빛 아래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 늘어난 걱정, 우울, 그리고 인간관계를 더 갈망하는 마음으로 힘들게 될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유행병(epidemic)은 벌써 퍼져가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의 외로움이라는 유행병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대규모 전염병(pandemic)으로 번진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 

예수님과의 관계 발전시켜야...외로움은 타인의 삶에 동참할 기회

다시 만날 그날까지 고독의 장소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 만나자

 

강요된 외로움

 

많은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고문 방식은 그냥 홀로 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거나 보지도 않는 영상을 틀어서 소리가 나도록 한다. 아니면 바삐 움직여서 혼자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우리의 일정이 다른 사람과 만남으로 채워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질병관리본부에서 장기간 서로 격리된 상태로 지내라고 권고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적 거리두기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사회적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 침체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침체”를 다룰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스스로 외로운 곳을 찾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외로운 상황이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귀하게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으로 의도된 것을 기적적인 선으로 바꾸신다(창50:20; 롬8:28).

 

혼자만의 자리 만들기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더욱 전심으로, 또한 더욱 희생적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따랐다(눅5:16). 우리 영혼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듣기 위해서는 고독과 침묵이 꼭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날들에 있어 첫 번째 관문은 우리가 만날 고독의 처소를 시끄러운 곳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시간은 하나님과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온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시46),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잠잠히 기도하며 그가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고, 이것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대규모 전염병 뒤에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난관, 염려, 그리고 외로움으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는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런 어려움은 실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과는 잠시 담을 쌓을 수 있으나 하나님을 향해 담을 쌓아서는 안 된다. 두려움이나 무감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목소리들을 거부해야 한다. 대신, 선하고 주권적인 왕 앞에서 우리의 영혼을 고요하게 하자(시131).

 

영혼의 필요 채우기

 

우리가 외로움을 겪는 것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존재로 창조됐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관계에 대한 열망이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삶을 부인하고 광야로 들어가 고립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가 겪는 외로움은 애통해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기회다.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해 망가진 이 세상을 애통해한다. 사람들이 고통 받고 죽음에 이르는 이 무자비한 상실로 슬퍼한다. 우리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 가득한 두려움과 염려로 애통해한다. 더 이상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갈 수 없음을 애통해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 된 이들과 함께 모일 수 없음을 애통해한다. 이 대규모 전염병을 슬퍼하고 이 병이 초래했고, 앞으로도 초래할 끔찍한 결과에 대해 마음 아파한다. ‘주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하며 우리는 울부짖고 애통해한다.

이 외로움은 중보하시는 예수님께 동참할 기회다.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깊어진 우울과 염려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이 외로움은 다른 이들의 삶에 동참할 기회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영성과 관계성을 현대 기술이 완전히 제공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고독의 장소에 예수님과 함께 들어가면 우리 영혼의 필요가 채워지고, 다른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영혼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고후5:14–20).

매일 교회 친구 한 명, 그리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 한 명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면 어떨까? 마트에서 사다줄 것이라도 있는지 물어보는 쪽지를 이웃집 문에 남겨두면 어떨까? 당신이 어떤 이를 위해 그간 어떻게 기도해오고 있었는지를 손으로 직접 쓴 쪽지로 건네준다면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변화될까?

 

다시 만날 그날까지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는 슬프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함께할 수 있는 날을 벌써 고대하고 있다. 우리 앞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길이 놓여 있지만 나는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다. 예수께서는 어떠한 친구, 형제, 또는 연인보다 가까이 계신다. 이 모든 혼란과 단절 속에서도 그는 우리를 붙드신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시다!

내가 또한 믿는 것은 교회는 분명히 다시 모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나서 더 크게 노래하고, 더욱 큰 미소로 인사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기쁨과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고독의 장소 ‘밖으로’ 도망치기보다 그 ‘안으로’ 들어가 거기 계신 예수님을 만나자. 다시 만날 그날까지,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대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자. 그리고 이 대규모 전염병은 하나님이 창조 역사에서 쓰셨던 혼돈의 찰나 같은 것이므로 그날이 오면 이 병은 우리를 더는 위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소망하자.

02.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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