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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아메리칸 정체성 확립, 정치참여로 이어진다!

WP, USC 비비안 렁의 잇따른 아시안 혐오범죄 연구 보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3월 16일 오후 애틀랜타에서 중국인 등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한 혐오범죄로 의심되는 연쇄 총격사건이 일어났다. 이 총기난사사건으로 한국인 4명을 포함, 최소 8명이 사망했다.

총격사건의 용의자는 21세의 백인 남성 로버트 에런 롱으로, 그는 “중국이 미국인 50만 명을 죽인 것", “모든 미국인은 우리 시대의 최대의 악인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등의 글을 SNS에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총격 살인이 중국인 등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한 혐오 범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태평양계를 향한 혐오범죄 감시단체인 Stop Asian American Pacific Islander Hate(SAAPIH)은 2020년 3월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과 범죄 행위로 2,800건이 보고됐다고 발표했다.

USC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비비안 렁(Vivian Leung)은 애틀란타 사태 전인 3월 8일, 워싱턴포스트(WP)에 자신의 리서치(Recent attacks could push Asian Americans to get more politically active, research suggests: Being targeted by bias can drive people with extremely different backgrounds to identify under a common identity)를 기고했다. 잇따른 아시안들을 향한 혐오범죄는 이들의 정체성을 다시 공고하게 하고, 정치참여로 이뤄진다.

 

아시아계 미국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집단이자 정치력 키워가는 집단

SAAPIH, 지난 1년 새 아시아계미국인 대상 인종차별과 범죄행위 2,800건 보고

 

최근 특히 고령층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잇따라 공공장소에서 공개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혐오 범죄(hate crimes)로 분류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은 미국 사회 안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지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준다.

미국 사회에 절대로 섞일 수 없고 주류가 될 수도 없다는 아시아인을 향한 오랜 편견도 되살아났다. 팬데믹 이후 인종 때문에 차별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아시아계 미국인은 10명 중 3명이나 된다.

이런 경험이 정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제(Vivian Leung)가 진행한 연구결과를 보면 인종 때문에 차별받는 등 부정적인 편견의 희생양이 되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오히려 더욱 집착하게 된다. 물론 아시아 대륙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아시아계’라는 인종 분류는 어폐가 있다.

 

미국의 뿌리 깊은 반(反)아시안 정서

 

인종문제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간주된다. 본질적으로 미국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고, 그래서 미국 사회에 녹아들 수도 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미국의 뿌리 깊은 반아시안 정서의 시작을 살펴보려면, 미국에 중국인, 필리핀인이 처음으로 이주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 사회의 반아시안 정서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나타났다. 먼저 건강, 위생에 관한 것으로, 아시아인들이 질병을 옮긴다는 우려가 편견으로 굳어진 사례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로, 특히 아시아인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우려 때문에 생겨났다. 

1882년에 미국 의회가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을 제정한 데도, 1930년대에 백인 노동자들이 필리핀 출신으로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집단으로 습격한 배경에도 아시아인들 때문에 미국인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최근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중국에서 시작된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자, 중국인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두려움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반아시안 정서가 분명히 있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른바 모범적인 소수인종(model minority)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모범적인 소수인종’은 다소 복잡 미묘한 개념이자 이중적인 차별의 기제가 되기도 하는데, 아시아인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학업성적도 우수해서 미국 사회에서 고소득 전문 직종을 주로 갖는 성공한 이민자의 전형으로 그린다. 당연히 모든 아시아인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는 다분히 비뚤어진 고정관념이고, 영원히 미국에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겪는 고충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또한, 이 고정관념은 반대로 모범적인 모습과 거리가 먼 다른 소수인종을 폄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흑인이나 라티노를 향해 ‘아시아인처럼 모범적이지 않다’는 식의 딱지를 붙이는 행위가 그렇다. 게다가 아시아 대륙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곳이다. 출신국가, 종교, 문화도 서로 다르고 심지어 역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나 문화권도 수없이 많은데, 이렇게 다른 이들을 한데 뭉뚱그려 ‘아시아계’라고 명명하는 분류법은 시대착오다.

 

연구 방법

 

인종차별과 (모범적인 소수인종과 같은) 잘못된 고정관념이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이름은 2020 아시아계 미국인 옴니버스 조사(AAOS)다. 설문조사 회사인 보비츠(Bovitz)가 2020년 2월 말에 스스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규정한 이들 1,51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가운데 47%는 미국 밖에서 태어났고, 53%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시아인을 향한 고정관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같이 진행했다. 응답자들은 3가지 짧은 글 중 한 편을 읽게 되는데, 세 편 중 두 편은 아시아인이 다소 기분 나쁠 수 있는 전제를 한 글이었다. 미묘한 차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s)이 포함된 내용이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미국에 사는 아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겪어봤을 일이다.

첫 번째 글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근면 성실하고, 수학도 잘한다”는 전형적인 모범적인 소수인종의 고정관념을 드러낸 글이었다. 그래서 회사들이 사람을 뽑을 때나 승진 심사에서 다른 인종에 비해 아시아계 미국인을 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글은 영원히 이방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아시아인의 운명을 적시한 글로, 아시아계 미국인은 영어를 잘 못해서 일자리를 찾을 때 차별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통제군으로 사용한 세 번째 글은 회사들이 전반적으로 고용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소수 인종이나 민족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세 편의 글 중 하나를 무작위로 읽은 응답자들에게 자신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점수를 매겨달라고 부탁했다. 예를 들면, “나의 정체성 가운데 내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부분이다”라거나,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비슷하거나 일치한다”라는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물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가장 많이 일깨운 건 ‘영원한 이방인’으로 아시아인을 묘사한 글이었다. 통제군으로 쓴 글에 비해 ‘영원한 이방인’ 글을 읽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다고 답한 비율이 6.7%P 더 높았다. 출신 배경을 불문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면 정치적으로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도 더 많이 동의했다. ‘모범적인 소수인종’ 글을 읽은 이들은 통제군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일정부분 ‘운명공동체’라는 지적에 5%P 더 동의했다. 미국에서 자신이 잘사는 데 아시아계 미국인 전체의 안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험에서 드러난 효과는 크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개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미묘한 차별의 경험이 오랜 시간 계속 쌓이다 보면 더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한다.

 

정치 참여로 이어질까?

 

실험에서 확인한 내용은 기존의 다른 연구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정치학자 제인 전과 나탈리 마쓰오카는 특정 집단을 향한 차별이 담긴 글을 읽으면 당사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차별받는 집단과 더욱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였다. 이태구 교수는 집단의 인종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참여가 활발하다는 점을 보였다.

만약 인종차별을 받는 개인이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더 뚜렷이 인식하게 된다면 이는 당장 선거의 표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미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집단이자, 정치력을 키워가는 집단이다. 지난해 선거에서 조지아나 텍사스 등 격전 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투표율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의회 선거에서도 역대 가장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표를 던졌다. 

나의 일련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최근 들어 급증한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혐오범죄는 아시아인들이 출신국가나 문화 등 인종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자각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자연히 현실정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늘어날 것이다.

  0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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