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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하는 사회, 교회공동체가 해결한다!

CT, 마크 레저루스 교수 글로발 리서치 통해 크리스천 비혼증가 이유와

우리 대부분은 화목하고 건강한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런 가족은 도대체 어떤 모습인 걸까? 우리는 따뜻한 불빛이 비취는 방에 옹기종기 앉은 가족의 모습을 상상할지 모르겠다. 오늘날 현대적이고 도시화된 사회에서 가정은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휴양지 같은 의미다. 낮에는 각자 흩어져서 일하거나 공부하다가 저녁이 되면 함께 모여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즉 “가족시간”(family time)은 대부분에게 쉬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런 가정의 모습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전까지만 해도 가족은 하나의 생산 단위였다. 집은 일하는 장소였다. 가족을 하나로 묶는 것은 함께 있으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게 아니라 가족은 노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때문에 가족이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창조주가 지으신 피조물을 잘 관리함으로 다른 이들을 창조주에게 이끌고,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전하고, 주님이 주신 대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함께 일할 때, 그것은 세상을 향해 예수님과 그의 신부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바로 양육하고 그들과 함께 일할 때, 그 모습은 세상을 향해 아버지와 그의 영적 자녀들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가족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가치가 있지만, 기독교인 가정은 사명을 공유해야 한다. 함께 일하고 또 함께 예배하는 것은 가족의 유대관계를 강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향한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Strong Families Share Mission).이에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TGC(The Gospel Coalition)가 소개한 헤리엇 코너의 “사명을 같이 한다”를 게재한다. 헤리엇 코너는 Sydney Missionary and Bible College에서 언어학과 신학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 'Big Picture Parents: Ancient Wisdom for Modern Life'가 있다.

 

유엔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25세의 레바논 여성 파라는 이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었지만 배우자를 마냥 기다리는 일은 어려웠다.

파라와 같이 레바논에서 대부분의 미혼 성인 자녀들은 결혼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산다. 성직자인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사는 아파트의 많은 부부에게 조언을 해주는 분이다(작은 동네이기 때문에 그녀도 대화를 종종 듣게 된다). 그녀는 결혼할 준비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구혼자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걱정하지 않는다. 많은 독실한 레바논 여성들이 시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 베이루트시에서 살기 위해 월급을 초과하는 엄청난 생활비가 들기 때문에 레바논의 기혼여성들은 미혼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곤 한다. 또한, 여가시간에는 가사를 돌봐야 할 책임까지 있다.

“두 배우자가 모두 일하고 귀가하면 피곤한 상태죠. 아이들을 갖기 전에도 부부는 함께 앉을 시간이 없어서 미루게 되는 것 같아요. 토요일이나 주말까지 밀린 일을 하느라 과부하가 걸리고 매우 피곤합니다”라고 파라가 말했다. 따라서, 파라는 분명한 결론을 내렸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결혼의 모습이 바뀌고 있어요.”

이러한 역동적 변화는 레바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배우자들은 서로의 커리어를 지원하고 평등한 부모로 양육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많은 영역에서 희생하기를 서로에게 기대한다. 이러한 조건 중 일부는 경제적 부담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지만 내부적으로 생성되고 선택적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상적인 배우자를 찾고자 한다면 사회심리학자인 엘리 핀켈이 이름 붙인 결혼의 “숨 막히는 구조”에 항복하고 말 것이다. “결혼을 말하다”의 저자인 팀 켈러도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은 결혼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에 대한 관점을 생각할 때, 결혼생활에 실제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할 때 애정을 갖고 시작하지만,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은 상호 제공하는 공식화된 성관계의 결합이라는 차원에서 결혼에 여전히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매력적이지 않고 구식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결혼은 오랫동안 배우자들 사이의 불평등한 교류에 의존해왔다. 남녀는 서로가 가진 것을 필요로 한다. 이 개념에 많은 사람들이 반문을 제기할 것이다. ”결혼의 기본이 전문화와 교환의 의미라면 결혼은 점점 시대착오적인 사회적 형태로 보입니다”라고 UCLA의 인구 학자 발레리 오펜하이머가 말했다.

그녀의 말이 옳다. 결혼율의 감소가 그녀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다. 그러나 결혼은 바로 그런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실망할 일만 남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사회적, 문화적, 법적 노력은 결합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결혼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택권, 기술, 성 평등, ‘저렴함’ 성행위, 세속화가 증가하고 있는 이 시대에, 크리스천을 포함해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결혼을 선택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결혼은 점점 더 ‘기독교적’인 일

 

연구자로서 결혼의 소멸을 연구하는 것은 파고든 곰팡이가 서서히 오래된 참나무를 천천히 파괴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좋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을 이유가 있다. 참나무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결혼은 점점 더 ‘기독교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는 미래가 불확실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며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성스러운 용어로 묘사한다고 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언약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가정교회, 독창적인 연합, 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연합이라고 묘사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답변에 만족할 지도 모르겠다. 그의 저서 “결혼론”에서 그는 결혼을 인간 사회의 첫 번째 자연적 유대라고 확언한다. 실제로 인터뷰했던 많은 사람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세 가지 선함’(신실함, 후손, 성례)의 일부를 참조해 결혼을 정의했다.

이 세 가지 선함은 기독교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관행이 무시되거나 훼손될 때마다 결혼제도는 힘을 잃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은 평균적으로 세속적 동료들보다 이 선함을 위해 더 헌신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크리스천이 계속되는 결혼생활 동안에도 결혼제도가 서서히 ‘기독교적’인 일이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러 서구 국가의 세계 가치관 조사의 수치는 이를 상당히 명확하게 보여준다. 

결혼 패턴에서 보여지는 성도들과 비성도간의 차이가 수십 년 후에는 훨씬 더 큰 차이로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결혼은 세계적으로 종교적인 이슬람교도, 정통 유대인,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과 점점 더 밀접한 연관이 있는 개념으로 남을 것이다.

이 설문조사는 동시에 좋은 결과와 안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이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반면 결혼에 더 많이 실패하기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행인 점은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결혼에 대한 중대한 사회적 지원과 문제해결에 대한 강한 열망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이 고되고 희망적인 공간에는 결혼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자원이 놓여있다. “모든 것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지. 그러나 무언가를 바꾸어 나가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어.” 나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가 현명한 말을 했다.

서구의 세속화가 결혼생활과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믿음이 우리 삶의 핵심이 돼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결혼의 수호자가 된다면 교회 안팎의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교회를 보호하고 장려해야 할까?

 

유사교회 조직 역할 중요

 

우리는 결혼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을 연구하고 육성해야 한다. 여기에서 유사교회(parachurch) 조직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더 많은 성도들의 결혼을 장려하기 위한 목회적인 노력에 대한 설교는 종종 들었지만 일관된 성공담은 들리지 않았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를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은(특히 미국에서)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짝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말했지만(그 중 크리스천을 선호) 사람들은 알고리즘을 통한 짝짓기보다는 실제 사람을 통해 소개받는 것을 선호했다(중매인은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있지 않은가). 활기 넘치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과정을 겪으면 만족도가 컸다. 

교회의 회중은 종종 규모가 너무 크고, 소규모 그룹은 너무 작고 선택권이 없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간규모의 공동체가 가장 적합하다. 기독교적 공동체가 갖고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때로는 문화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또래 청년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이 늦어짐에 따라 대학졸업 후 사회에서 생성되는 중간규모의 공동체 모임이 결혼의 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크라쿠프에서 결혼한 부부인 파웨와 마르타는 두 가톨릭 단체가 결혼전후에 그들의 결혼을 도왔다고 말했다. 하나는 인근 도미니카공화국의 청소년 단체였으며, 다른 하나는 폴란드, 레바논 및 스페인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언급한 최대 50명으로 구성된 교회기반 공동체의 운동인 신교리교육운동(Neocatechumenal Way이다. 

즉, 젊은 크리스천이 외로움이 아닌 거룩함에 초점을 맞췄을 때 배우자를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간단하고 생경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CS 루이스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하늘을 겨냥하면 땅을 ‘들어올릴’ 것이다.” 물론 높은 목표를 정하는 사람이 모두 결혼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성비 불균형은 지속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먼저 신앙과 제자훈련에 집중한다면 결혼생활에 유익한 기초가 될 것이다.

결혼의 시작은 개인적 방식과 축적된 경험을 통해 생겨난다. 한 러시아 인터뷰 대상자가 언급한 것처럼 타인의 나쁜 사례는 ‘결혼에 대한 일종의 백신 역할’을 한다. 대조적으로, 좋은 예는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모범적인 이야기만 하며 결혼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하거나 포장할 수 없으며 우리의 노력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어떻게 정의하든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것은 전통적인 행위다. 그러나 공동체 훈련을 통해 전통을 강화하는 것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달 만에 결혼하는 과달라하라 출신의 34세의 학교 상담사인 토마스는 이 교훈을 받아들였다. “부모가 어떻게 결혼생활을 하는지는 강한 인상을 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저는 부부관계가 아름답다면, 정말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젊은이들에게 ‘나도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열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이상화 함정 피하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결혼을 우상화 하거나 지나치게 이상화 시키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 C.S. 루이스의 “천국을 향한 목표”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결혼의 본질을 생각하고 결혼에 대한 오늘날 만연한 세상의 물질적, 심리적 기대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결혼은 부활의 때 하늘에서는 없을 지상에서의 일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마22:30). 그것은 우리의 물질적인 번영을 위한 도구인 동시에 일상에서(또는 매 순간) 희생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나타낼 기회가 되며, 영적 진보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이제 서구에서는 젊은이들은 남편과 아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해왔던 수많은 희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헌신적인 결혼생활이 건강한 사회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이 여러 면에서 배우자와 자녀뿐만 아니라 가정 밖의 세상을 향해 실질적(그리고 영적)으로 자비를 베푸는 행위라는 사실을 잊었다. 

서구사회의 성공은 가족의 사회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를 해체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회가 될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결혼이 무엇인지 설교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결혼에 대한 영원하며 탁월한 동기를 갖고 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멋진 과업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

05.0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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