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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위기, 9.11사태 20주년이 주는 교훈으로 대처

BBC, ‘끝나지 않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대안 제시

지난 20년간 전 세계에서 벌어진 테러와의 싸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무엇이 효과가 있었고, 무엇은 그렇지 않았을까. 알카에다를 보호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 재집권한 오늘날, 우리는 테러가 일어난 2001년 9월 11일 아침보다 더 현명해졌을까.

9.11이후 BBC는 중동, 아프간, 워싱턴, 관타나모만과 관련된 테러리즘을 관찰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대처할 수 있는 5가지 교훈을 말한다. 이는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고 완전히 종합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설득력이 있다(Afghanistan crisis: Five lessons learned (or not) since 9.11).

 

1. 중요 기밀은 공유하라

 

9.11이 발생할 것이라는 단서들은 있었지만 이를 연결해 중요한 정보를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11사태까지 몇 달 동안 미국의 주요 정보기관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는 모종의 음모가 미수에 그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국내와 해외 정보요원들은 서로 간 경쟁의식 때문에 자신들이 입수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 후 9.11위원회 보고서는 정보기관의 실수를 면밀히 추적했고 몇 가지 주요한 점들이 개선됐다.

BBC는 2006년 미 버지니아 주에 있는 국가테러대책센터(NCTC)를 방문해 17개의 미국 기관이 어떻게 매일 정보를 수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영국은 2003년 합동테러리즘분석센터(JTAC)라는 융합 센터를 설립했다.

런던 템스강 제방 부근에 위치한 이 센터에는 MI5, MI6, 국방, 교통, 보건, 기타 분야의 전문가들 수십 명이 모여 국내외 발생하는 테러 위협을 지속 평가하고 그 결과물을 제공한다.

하지만 JTAC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센터 설립 2년 후인 2005년, 알카에다는 영국인인 자폭 테러범들을 이용해 50명 이상을 살해한 런던 7.7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이듬해는 비행 중이던 여객기 여러 대를 폭파하려 한 대규모 테러 음모가 파키스탄 정부의 도움으로 적발됐다. 하지만 그 후 영국은 2017년 맨체스터 폭탄 테러 등 여러 차례의 공격을 받았다.

즉, 좋은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해도 작업의 우선순위를 잘못 구성하면 테러를 막지 못할 수 있다.

2015년 11월 발생한 파리 바타클랑 테러는 130명의 사망자를 냈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도 유럽 당국이 제때 해외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해 발생한 측면이 있다.

 

2. 임무를 정의하고 집중하라

 

탈레반이 재집권하게 된 이유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침공이다. 이 불운의 결정은 아프간에서 진행 중이던 작전을 크게 방해했다.

많은 미국과 영국 특수부대는 알카에다 공작원을 색출하고 아프간의 협력자들과 함께 탈레반 저항세력(폭도들)의 배후를 잡는 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었지만 이를 중단하고 철수한 후 이라크로 파병됐다.

그 결과 탈레반과 그 협력자들은 다시 뭉쳐 더 강한 세력으로 되돌아왔다. BBC가 2003년 11월 아프간 동부 팍티카주에 있는 미국 보병 전초기지를 취재했을 때 미국인들은 이미 그들의 임무를 "잊혀진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아프간에서의 원래 임무가 명확했고 제대로 수행됐다는 사실은 잊혀지기 쉽다. 탈레반 정권이 가해자들의 인도를 거부하자, 미국은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몰아내기 위해 북부동맹(탈레반에 반대하는 아프간인들)과 협력했다.

그러나 임무가 끝나고 몇 년 동안 북부동맹은 약화해 여러 파벌로 흩어졌다. 그 기간에 대다수 아프간인들의 삶은 크게 개선됐지만 아프간의 "국가건립" 명목으로 투자된 수십억 달러는 부패와 쓸데없는 낭비에 쓰이고 말았다.

 

 

5가지 교훈: ①중요기밀 공유 ②임무 정의하고 집중 

③파트너선택 신중하게 ④도덕적 우위 유지 ⑤출구전략 세우기

 

3. 파트너를 신중하게 선택하라

 

영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과 협력했다. 이로써 영국은 미국이 이라크 점령기간에 내린 대부분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하위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라크에서는 이라크 군대를 해산하거나 바트당(서구 세력에 저항하는 아랍사회주의부흥당)의 모든 당원들을 정부 역할에서 제외하지 말아달라는 긴급 탄원이 제출됐으나 서방 세력은 이를 무시 또는 기각했다. 그 결과, 실직으로 불만을 품은 이라크 군대, 정보요원들과 극단적인 지하디스트들은 비극적인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은 향후 Isis가 됐다.

9.11테러 이후 전 세계에 발생한 집단공황은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이 인권을 박해한 일부 중동 정권들과 협력해야 함을 의미했다. 서방 세력에겐 자업자득이었다.

그 사례로 2011년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알 카다피 대령의 폭압 정권이 전복된 후 언론인들은 한 MI6 고위 장교가 곧 체포와 고문을 당할 이슬람 반체제 인사의 인도에 관해 리비아 군 간부에게 쓴 편지를 입수했다.

오늘날 폭력적 지하디즘은 통제되지 않거나 통제가 부실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재개되는 한편, 서방 세력이 정확히 누구와 협력해야 하는지에 문제를 제기한다.

 

4.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도덕적 우위를 잃는다

 

중동 사람들은 BBC에게 몇 번이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미국의 법치는 늘 존중했다. 포로들을 관타나모만 수용소에 보내기 전까지는."

미국은 "전장에서" 포상금을 받고 팔린 일부 무고한 민간인들을 포함해 용의자들을 체포한 다음, 그들에게 기저귀, 고글, 귀마개를 씌워 쿠바 관타나모만에 있는 미 해군 구치소로 이송했다. 이송 과정과 그 후 수용소에서 벌어진 학대는 미국과 서방의 명성에 타격을 입혔다.

재판 없는 구금은 중동의 독재국가에서나 생기는 일이었다. 아랍인들은 미국도 그렇게 할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테러 용의자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CIA의 블랙사이트(포로를 감금하는 비밀 군사시설)에서 "한층 강화된 심문"과 물고문, 그 외 학대실상이 폭로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중단했지만 미국의 명예는 이미 손상된 후였다.

 

5. 출구 전략을 세워라

 

9.11테러 이전, 서방 세력의 중동개입은 비교적 빠르고 간단했다. 시에라리온 내전, 코소보 전쟁, 심지어 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이란 이름으로 치른 걸프전도 모두 유한한 결말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침공은 일명 "영원한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이 각국을 침공한 2001년과 2003년, 미군이 20년 후에도 주둔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단히 말하면 서방 세력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놓일지 알지 못했고 현실적인 출구전략도 없었다.

서방 세력이 2001년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몰아내지 않았다면 분명 아프간으로부터 더 많은 공격이 이어졌을 것이다. 아프간의 대테러 임무가 실패하진 않았지만 국가건립은 완료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할 영원한 이미지는 서방 세력이 포기하다시피 한 아프간을 USAF C17 수송기가 떠나면서 이를 뒤쫓아 달려가는 아프간인들의 절박한 모습이다.

09.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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