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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 폐지’ 판결문 유출에 미국 '발칵'

BBC, 미 대법원 “낙태 합법화 판결 폐기 방침”…문건 유출 논란 보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지난 2일 공개한 문건(Supreme Court has voted to overturn abortion rights, draft opinion shows)이 미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폴리티코는 연방대법원의 다수 의견서 초안을 입수해 공개했다.

해당 초안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1973년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한 기념비적인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뒤집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보수 성향의 사무엘 엘리토 대법관이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주 법안에 대한 심리를 위해 작성한 1차 초안으로 알려졌다.

엘리토 대법관은 초안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는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며 폐기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문건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미 현대사에 전례 없는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7월 초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뿐만 아니라 미 백악관 또한 이례적인 판결 초안 유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Roe v Wade: US Supreme Court may overturn abortion rights, leak suggests).

 

해당 문건은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됐다"면서 "헌법에 귀 기울이는 동시에 낙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국민이 뽑은 대표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는 의견이 포함돼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엘리토 대법관이 "'로 대 웨이드' 사건의 추론이 '유난히 미약'하며 '해로운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적었다고 알려졌다.

"낙태권은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권리가 아니라는 게 불가피한 결론"이라고 덧붙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문건 유출과 관련해 합동 성명을 발표했다.

펠로시 의장과 슈머 대표는 "만약 해당 보도가 진실이라면 대법원은 지난 반세기 이래로 가장 심각하게 인권을 제한하려 드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공화당이 임명한 대법관"의 이러한 판결은 "가장 최악의 혐오스러운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일 워싱턴 D.C. 대법원 앞에는 분노에 찬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시위대는 이날 '내 몸, 내 권리',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내 몸이니 내가 선택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한편 폴리티코는 유출된 문건에는 '1차 초안'이라고 적혀 있으며, 지난 2월 대법관 사이에서 회람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판결문 초안이 회람되는 중에 대법관이 의견을 바꾸는 일도 있다.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2년 보수 성향의 앤서니 케네디 전 연방 대법관은 마지막 순간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자는 의견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이번에 유출된 문건이 사실이고 곧 미국 전역에 선포된다고 가정해보자.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진 여러 '방아쇠' 법들과 이미 준비 중인 법안들로 인해 곧 22개 주에서 낙태는 불법으로 규정될 것이다.

그리고 낙태의 합법성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장 정치적으로 치열한 싸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연방 대법원이 내놓을 수 있는 이번 판결이 지닌 의미다.

그러나 사실 초안은 초안일 뿐이다. 그리고 의견수렴 과정에서 대법관들이 기존 견해를 뒤집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번에 전례 없이 초안이 유출되면서 그 과정이 짧아질 수도 있다.

미국 역사에서 연방 대법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올림포스산처럼 저 높은 곳에서 의견을 아래로 전해 내렸다. 그러나 이번에 문건이 유출되고 논란이 확산하면서 그러한 대법원의 불투명함과 폐쇄성은 아마 산산이 조각날 수 있다.

미국에서 사법절차의 정당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한때 '형제'로 알려질 정도로 쌓였던 대법관들 사이의 모든 신뢰는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해 보이는 형국이다.

지진에 깨져버린 도자기처럼 정치적 규범이 산산이 부서진 이 시대에 또 다른 큰 조각이 떨어졌다.

한편 현재 연방 대법관 총 9명 중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이 5명, 민주당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 성향이 3명이다.

폴리티코는 클래런스 토마스,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 보수 성향의 대법관 4명은 엘리토 대법관과 같은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의 생각에 대해선 분명히 알려진 바 없다.

또한 진보 성향의 스티븐 브레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등 대법관 3명 중 최소 한 명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해당 초안이 대법관 다수의 지지를 얻어 확정된다면 엘리토 대법관의 이번 의견은 임신 중지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이전 판례를 뒤집게 된다. 이에 따라 개별 주들이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더 많은 제약을 규정할 길을 열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50여 년간 여성 수백만명이 누려온 기본적이고 헌법적인 권리를 현재 여성들은 빼앗기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돕 대 잭슨여성건강기구' 사건을 살펴보면, 미시시피주가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자 낙태를 원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잭슨여성건강기구는 위헌이라며 소를 제기했다. 작년 12월 대법원에서는 해당 사건의 변론이 진행된 바 있다.

미국 CBS 뉴스에 따르면 이번 유출 사건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관 중 하나인 대법원에 엄청난 파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CBS는 로버츠 대법원장이 유출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미연방수사국(FBI) 등에 전면적인 수사를지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만큼 전례 없는 사건으로, 과거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후보 간 잡음으로 미 대통령직이 공석이었을 때조차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의 판례를 통해 낙태를 합법화했다. 당시 법원은 여성들에게 임신 초기 3개월 동안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고, 3~6개월 기간엔 제한적으로 낙태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다 1992년, '가족계획협회 대 케이시' 사건을 통해 대법원은 각 주 정부가 태아가 자궁 밖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시기인 임신 24주 안에 임신을 중단하려는 여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2019년 미국에서 보고된 낙태 건수는 약 63만 건으로, 2010년에 비해 18% 감소했다.

낙태 여성 중에는 20대가 가장 많았으며, 2019년 낙태 유경험자의 약 57%가 20대였다.

또한 인종별로는 흑인 여성들의 비율이 높아 15~44세 사이의 미국 흑인 여성 1000명 중 27명이 낙태 경험이 있다.

05.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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