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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밈’으로 만드는 세상, ‘의미’만들어야!

TGC, 밈이 되어버린 삶 속에서 크리스천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성찰 제기

인스타그램을 별 생각 없이 스크롤하고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LOTR) 게시물 몇 개에 “좋아요”를 눌러놓고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한번 보라. 이제 내 피드에는 자연스럽게 LOTR 밈(memes)으로 넘칠 것이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항목(예: 캡션이 있는 사진 또는 비디오) 또는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온라인에 널리 퍼진 장르”라고 밈을 정의할 수 있다. 밈이라는 하위문화는 이상하고 종종 무섭기까지 하다. 단지 만화 캐릭터로 시작했던 눈이 튀어나온 녹색 개구리 페페(Pepe the Frog)는 결국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변했다. 그 어떤 사진도 어떻게 편집하는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하나의 원본 이미지 또는 비디오는 얼마든지 수천 개의 메시지를 위한 사료가 될 수 있다.

피터 바일스(Peter Biles)는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소설가로 모든 것이 “밈화”되는 세상이 얼마나 세상에 대한 당신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래서 하나님의 활기찬 창조 세계와의 만남을 어떻게 둔감하게 만드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밈 소재는 단지 영화와 쇼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글에 “칼뱅주의 밈”(Calvinism memes) 또는 “침례교 밈”(Baptist memes)라고 쳐보라. 심지어 성경과 예수님조차도 밈을 통해 얼마든지 모자라고 나사 하나가 빠진 존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에게 밈은 순수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문제가 있다. 개구리 페페와 같이 사악한 예가 명백한 예이다. 그러나 내가 더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밈이 되어버린 삶(meme-ification)에 의해 조금씩 달라지는 미묘한 변화이다. 아이러니와 유머에 너무 중독되어 우리 눈에 세상이 마냥 농담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Meme-ing Ourselves to Death)

 

LOTR에서 찾는 밈 구절(The LOTR meme-verse)은 한동안 내 일상에서 단골 유머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The Meme Havens”라는 LOTR 밈 계정도 시작했다. 다행히도 내 팔로워는 아직 12명을 넘지 않는다. 그 정도면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반지의 제왕 속 모든 장면이 인스타그램 속 밈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온라인에서 본 기발한 말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채 10분을 보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프로도가 반지 원정대에서 처음 간달프를 보았을 때, 소년 같고 천진난만한 그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그의 표정은 참으로 풍부한 밈의 소재가 되었다. 그 표정과 필적할 만한 것으로는 그리버스 장군을 향해서 오비완케노비(Obi-Wan Kenobi)가 던진 상징적인 인사, “거기, 안녕하신가?” 정도가 될 것이다. 일단 밈의 관점에서 파악하게 되면, 이제는 아무리 같은 장면을 봐도 결코 진지하게 대할 수 없게 된다. 

LOTR은 놀라운 영화적 성취이다.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울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경외감, 기쁨과 즐거움이 그만 밈으로 물들고 말았다. 이 걸작 영화가 그만 천 개의 밈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하나의 농담이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로 밈을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밈이라는 아이러니로 덮어버리는 건, 아름다움과 선함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좋은 영향까지도 약화시킨다. 

오피스(Office) 및 팍스앤레크리에이션(Parks and Recreation)과 같은 TV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청자는 서로의 관계 때문에 드라마를 시청한다. 짐과 팸. 레슬리와 벤. 앤디와 에이프릴. 이런 드라마는 유머와 인간미의 균형을 보여준다. 진지한 관계와 진실한 순간은 시시껄렁한 농담이 침범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드라마 속 인물과 연결한다. “사실 모든 게 항상 농담이야”라는 유머가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식의 대화는 결코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지 못한다. 

내 아버지는 LOTR을 읽는 것을 추운 곳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뜨거운 목욕을 하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그건 휴식, 회복, 그리고 치유의 행위이다. 책과 영화에서 내가 느껴온 것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밈으로 바뀌는 순간, 뜨겁던 물이 미지근해진다. 여러 층의 아이러니는 쾌락보다 아름다움이, 패러디보다 진실이, 그리고 만족보다 선함이 필요하다는 사실마저 잊게 한다. C. S. 루이스는 친구이기도 했던 톨킨의 이 걸작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칼처럼 찌르거나 차가운 쇠처럼 타오르는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 당신의 마음을 부숴버릴 놀라운 책이 있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마음은 굳어진다. 즐거울지는 몰라도, 더 이상 “깨지기 쉬운” 상태는 아니며, 더 이상 톨킨의 날카로운 말에도 녹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런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의 밈화(meme-ification)의 기저에 있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상실이다. 우리는 굳이 더 이상 객관적인 의미가 존재하는지 찾으려고 하지 않을지 모른다. 의미가 부과하는 무게에도, 또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의 느린 복잡성에도 시간을 들이지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무의미한 오락으로 축소한다. 그것을 성경의 용어로 표현하자면(렘 2:13), 우리는 물을 저장하지 않는 웅덩이를 파고 있으며 또한 내 영혼에 물주기를 거부하고 있다. 

영국 철학자 고 로저 스크러튼(Roger Scruton)은 아름다움에 관한 책에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름다움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있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우리가 희생의 습관을 잃어버렸고 항상 희생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신성 모독에 빠진 우리 시대의 거짓 예술은 그런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는 표시 중 하나이다.”

누구나 모든 것을 농담으로 바꾸는 사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다시 집에 갔을 때 나는 많이 우울한 상태였지만,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농담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소란스러웠고 또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 괜찮다는 식으로 형들과 함께 계속해서 유머를 지껄였다. 

그것은 상실감과 부서진 마음 그리고 향수병에 대처하는 나의 방법이었다. 또한 무의미함을 만회하려는 나의 방식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보낸 4년 중 3년 동안 진짜로 웃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얕은 유머에 빠진 나는 울고, 애도하고, 또 희생해야 할 때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유머가 나 자신과 사물 속 진실 사이를 갈라놓는 완충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문학과 예술 작품을 심도 있게 접한 후, 나는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밈이 아니라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웃을 수 있는 일회용 농담이 아니라, 인생을 걸고 추구할 초월적인 목적(telos)이다. 스크롤할 사진(GIF)과 리트윗할 밈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지켜내야 할 곤도르뿐 아니라 싸워야 할 적, 모르도르까지 필요하다. 

밈을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만 사용되면, 밈은 최고의 풍자와 진정한 창의성이라는 긍정적인 출구를 제공한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Obi-Wan Memobi라는 스타워즈 밈 계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밈이 세상에 대한 당신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래서 하나님의 활기찬 창조 세계와의 만남을 어떻게 둔감하게 만드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톨킨처럼 가톨릭 신자였던 체스터턴(G. K. Chesterton)은 “감사는 경이로움 때문에 두 배가 되는 행복”이라고 썼다.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우리 안에서 경이로움과 감사가 자라는 것처럼, LOTR을 읽은 후 우리 안에 남아야 하는 것도 경이로움과 감사가 되어야 한다. 

지나친 아이러니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 드라마 안에서 살고 있다는, 이 삶의 중대함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풍자는 신성함을 보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다 명확하고 덜 냉소적으로 보는 눈을 가질 때, “왕의 귀환” 마지막 장면 속 프로도처럼 우리도 우리를 기다리는 천국의 끝자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회색 장막이 온통 은빛 유리로 변하더니 뒤로 젖혀졌다. 그는 하얀 해안과 빠른 일출 아래로 멀리 푸른 나라를 보았다.”

10.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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