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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를 향한 폭력, 교회 안에 있다!

처치리더스.컴,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목회자를 향한 폭력 유형 소개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성도들 중에서는 ‘목회자가 저지른 폭력성’을 폭로하느라 바쁘지만, 정작 자신이 ‘목회자를 향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은 잊는 경우가 많다. 한 목회자는 최근의 사례들을 관찰한 결과, “대부분의 교회 내 폭력 사례에서, 나는 목회자를 헐뜯고 괴롭히는 폭력적인 회중들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많이 듣는다”라고 답했다.

따라서 니콜라스 배트지그(Nicholas T. Batzig, 조지아주 Richmond Hill에 있는 New Covenant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목사)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목회자를 향한 폭력 5가지 위험 신호들로 소개한다(Is Your Church Committing Pastor Abuse? 5 Warning Signs).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영혼을 보살펴야 할 막중한 역할을 수행할 목회자들을 지역교회에 세우셨다.(히 13:17; 벧전 5:1-3) 하나님이 부르신 일, 어찌 보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렇기에 목회는 높고 고귀한 소명이라 말할 수 있다. 한 기자가 ‘마틴 로이드 존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의료계를 떠난 것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 존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복음의 전령으로 부르신 것은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영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 성도들이 목회 사역을 향해 가져야 할 시선이 아닐까?

물론 목회 사역에는 중대한 도전이나 위험들이 있다. 어떤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자신을 기능적으로 최고 경영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역을 전문화해야 할지도 모르며, 그러다 보면 지도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강압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목회자는, 자신을 바쁜 사역에 투자함으로써 자기 영혼의 필요는 무시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진정으로 돌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또 어떤 목회자는, 유일한 왕이자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색하게 하는 방식으로 목회자만을 추켜세우게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목회자들과 장로들은 교회에서 내리는 수많은 결정 앞에서 실수할 수도 있다. 교회에 아무리 많은 장로들이 있다 하더라도, 교회 지도자들은 때로는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하며, 때로는 중대한 결정 앞에서 주춤거리기도 한다. 결국 목회자 역시 유한한 지혜를 가진 죄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지혜를 가진 죄 없으신 분은 단 한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많은 양 떼를 위해 성실히 말씀을 전하고 기도로 인도하고 성사를 행할 사람으로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주신다.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양 떼의 건강과 안녕에 필요한 목회자들을 목자들로써 임명하신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목회자들을 비난하는 게 매우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비난은 교회가 잘못한 목회자들에게 바르게 책임을 묻지 않은 일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폭력 혐의는 장로나 직원 또는 교회 성도들을 괴롭힌 목사의 이야기에서 발생해왔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 성추행을 은폐한 혐의를 받고있는 목사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런 사건에 연루된 교회는 대체로 이 일을 적법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 온 것이다. 즉,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변호하고, 이 사건을 법적으로 가지고 가 절차에 맞게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교회 안에는 여성을 억압하고 그들이 가진 은사를 축소시키며 ‘과잉 남성성’ 또는 ‘가부장제’와 관련된 부정적 문화를 조장해왔다는 비난도 꽤 많다. 아무리 정당한 형태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목회자가 저지른 폭력성에 대해서는 언제든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사건들과는 달리, 요즘 온라인에서는 목회자들을 향해 손쉽게 손가락질하며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목사의 폭력성”을 폭로한다는 일념에 갇힌, 자칭 선의의 교인들은 눈에 띄지 않게 “목사를 향한 폭력”의 올무에 빠지기 시작한다. 한 목회자가 최근 일어난 사례들을 관찰한 결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의 목회적 폭력 사례에서, 목회자를 헐뜯고 괴롭히는 폭력적인 회중들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들었다.”

목회자에 대한 모든 비판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회자를 향한 폭력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비판과 공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를 향한 폭력의 위험에 적절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폭력이 발생하는 일반적인 사례 중 일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를 향한 폭력을 내포하는 다음 다섯 가지 현실을 보자.

 

1. “목회자를 향한 폭력”은 교회나 교단을 통해 하나님이 안수하신 직분자에 대한 암묵적 또는 명시적인 무시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일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교회의 임원이나 교단 지도자에 대해 모욕적으로 말하는 방식에서 잘 나타난다. 목회자에 대해 당신이 말하거나 사용하는 대부분의 표현이 본질적으로 부정적이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목회자를 향한 폭력의 올가미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끊임없이 비판만 한다면 당신이 하는 일은 그들에 대한 학대일 수도 있다.

실제로, 성경에 충실한 목회자들 중에 끊임없이 악한 자의 공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공격을 받기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가 필요한 존재다. 당신이 기도로 목회자들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부끄럽게 하려는 의도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목회자 학대를 부추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목회자들은 분명 어떤 일이든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목회자들이 무조건적인 공격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목회자를 향한 폭력”에는 목회자에게 위임된 역할이나 성경적 권위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자신이 교회에서 진행하고 싶은 것들(프로그램, 모임 시간, 특정 음악 등)을 요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교회 안에 성도들 중에서는, 교회의 일들에 대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발견한 모든 문제들을 다 목회자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교회에 불만을 품은 성도들이 목회자들에게 그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은 때때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버리겠다고 목회자를 위협하곤 한다. 슬프게도 많은 성도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교회를 원한다. 때로는 자신의 영혼에 영적인 결핍이 있을 때, 쉽게 영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만약 교회에서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목회자들을 협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목회자를 향한 폭력에 가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목회자들은 성경에 명확하게 정의된 직업 설명이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교인들의 변덕이나 욕망을 충족시켜주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양 떼의 말을 듣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기도와 말씀 사역으로 지역교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행 6:1-4) 여기서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필요를 위해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디아포라’(선과 악의 문제로 나뉠 필요가 없는 비본질적인 일들)이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의 권위를 지지하고, 교회의 평화와 순결을 배우기로 약속해야 한다.

만약 목회자에게 불합리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요구를 하는 교인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도 계속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3. “목회자를 향한 폭력”은 교인들이 목사의 ‘급여’, ‘휴가’ 또는 ‘상황적 특권’에 대해 불평하면서 발생할 수도 있다.

개신교 교회의 많은 교인들은, 마치 목회자들이 “짚 없이 벽돌을 만들 것이라” 기대한다. 목사가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도, 가능한 한 적은 사례비를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목회자가 SNS에 가족들과 함께 보낸 휴가 사진을 업로드할 때, 뜬금없는 논평을 나누곤 한다.

‘PCA 교회 규례서’(26,4)에서 회중이 목회자의 사역 계약을 연장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당신이 세속적인 염려와 직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우리는 당신에게 1년에 $( )를 지불할 것을 계약하고 의무적으로 이행하겠습니다.”

당연히 목회자들 중에서는 고액의 봉급을 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개신교 목회자들은 분명히 저임금을 받고 있다. 나는 어떤 목사가 그 교회에 있는 어떤 성도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이 그 목사의 보수가 많다고 불평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4. “목회자를 향한 폭력”은 불만을 품은 교인들이 다른 교인들에게 자신의 불만을 나누며 ‘선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도 일반적이다. 히브리서 기자 역시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히 12: 15)

이러한 일들은 불만을 품은 교회 임원들 사이에서, 혹은 소그룹에서 뒷담화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은 지역 사회의 사람들의 가벼운 입에서 옮겨진다. 험담, 분열적인 말, 불만을 표출하는 목소리들로 목회자가 겪게 되는 모욕적인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5. “목회자를 향한 폭력”은 목회자가 피해자인지 혹은 방관자인지 기준에 따라 정의할 의지도 없이 섣불리 고발할 때 발생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두 개의 법정, 즉 교회 치리와 민사 법정을 만들어주셨다. 정당한 절차 없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목회자를 학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당한 절차가 있더라도, 특정한 형태의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교회 법정에서 목사를 공격하는 것을 쉬지 않는다. 성도들은 법원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재판 결과나 장로 위원회의 처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상급 법원에 의뢰하면 된다. 이것은 장로교의 아름다운 원리 중 하나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우리가 복음을 가진 목회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헐뜯는 것을 더디 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종인 목회자들을 꾸짖는 것도 더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린 만큼, 특히 복음의 봉사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11.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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