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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있다

CT, 에즈버리 신학 대학원 교수들이 전해주는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와 그

켄터키주, 윌모어에 있는 에즈버리 신학 대학원의 정교수들(Timothy C./Julie M)은 동 대학  채플에서 일어나는 부흥운동이 애즈버리 캠퍼스와 그 너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희망적인 이유를 바로 부흥의 현장에서 전해준다(Asbury Professor: We’re Witnessing a ‘Surprising Work of God’).

애즈버리 대학의 평범한 수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같았다. 10시 정각 몇 분 전 학생들은 채플에 참석하기 위해 휴즈 강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기마다 일정 수의 채플에 참석해야 하기에, 그들은 정규 수업의 일환으로 채플에 참석하곤 한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은 달랐다. 축도가 끝난 후, 성가대는 마지막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고, 그 후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초월감에 사로잡혀 충격을 받았고,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머물렀고 계속 예배했다. 그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나는 채플실 바로 건너편 애즈버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듣고 채플실로 가서 직접 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나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조용히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과 이웃들, 그리고 지구촌을 위해 진심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죄에 대한 회개와 뉘우침을 고백하고 치유와 온전함, 평화와 정의를 위해 간구했다.

몇몇은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팔을 들고 서 있었다. 몇몇은 작은 그룹으로 모여 함께 기도했다. 몇몇은 강당 앞에 있는 강단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기쁨의 환한 얼굴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엎드린 채 있었다.

늦은 오후 잠시 떠났다가 저녁에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들은 여전히 예배드리고 있었다. 목요일 아침 일찍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오전 중에는 수백 명이 다시 강당을 가득 메웠다. 나는 매일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채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목요일 저녁에는 좌석이 다 차서, 서서 예배드리는 곳에만 참석 가능했다.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켄터키 대학, 컴블랜드 대학, 퍼듀 대학, 인디애나 웨슬리 대학, 오하이오 기독 대학, 트랜실바니아 대학, 미드웨이 대학, 리 대학, 조지타운 대학, 마우트 버논 나사렛 대학, 그리고 다른 많은 대학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예배는 금요일 하루 종일, 더 나아가 밤새 계속되었다. 토요일 아침, 나는 자리를 찾는 어려움을 겪었다. 저녁 무렵에는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꽉 찼다. 매일 밤, 몇몇 학생들과 다른 이들은 밤새도록 기도하기 위해 예배당에 머물렀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현재, 그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이 용어가 정치적 행동과 기독교 민주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애즈버리 대학에서는 아무도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신학교에서 은퇴한 신학자이자 동료인 스티브 시먼스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가 학생이었을 때 경험했던 유명한 1970년의 애즈버리 부흥과 유사하다고 내게 말했다. 그 부흥회로 인해 일주일 동안 수업이 중단되었고, 그 후로도 2주간 더 저녁 집회는 계속되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른 학교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애즈버리가 훨씬 더 깊은 부흥의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 일찍이 1905년에 일어났고, 최근에는 2006년에 학생 채플에서 4일간의 예배, 기도, 찬양이 있었던 것을 포함한다.

많은 사람은 채플실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거의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다.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면서 시간과 영원이 뒤섞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이하고 예상치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분석 신학자로서, 나는 과대광고에 지쳤고 조작에 대해 매우 경계했다. 나는 특히 감리교 성결 부흥의 전통을 배경으로 한 환경에서 자라왔고, 그 교단은 공허할 뿐 아니라 해로울 수 있는 “부흥”과 “성령의 역사”를 조작하며 강요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것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강요나 과대광고는 없다. 조작 또한 없다. 감정적으로 고조되지도 않았다.

반대로, 지금까지는 대부분 차분하고 평온하다. 희망과 기쁨과 평화의 어울림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손에 만져질 듯이 뚜렷하다 – 생생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shalom이라 할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함과 동시에 매우 온화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너무나 뚜렷하고, 형언할 수 없는 따스함과 고유의 끌림이 있다. 왜 아무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왜 한시라도 빨리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신비한 방법으로 운행하심을 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바람이 임의로 분다고 말씀하셨다(요 3:8).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불렀던 “놀라운 일”, 존 웨슬리가 언급한 “비범한” 사역들을 행하신다.

나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중요하고 중대한 것들의 대부분이 일상적인 규율과 성례(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순간적인 결정, 이웃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의 행위, 절망 속에서 하는 조용한 기도와 같은 일상의 순간에 일어난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랄 만한’ 일이 말씀과 성찬을 통한 성령의 ‘평범한’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제자도의 긴 길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동료 제이슨 비커스가 상기시키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은혜로운 경험을 주시는 성령보다 이러한 경험을 더 의존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우리가 성령과의 놀라운 만남을 기꺼이 인정하고 축하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채워질 것을 약속하신다. 그는 “보혜사”(KJV)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실로 자신이 떠나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 더 좋다고 약속하셨다.

지난 며칠 동안 휴즈 강당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약속된 보혜사는 존재하며 강력하다고 고백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분석할 수도, 심지어 적절히 묘사할 수도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일하신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몇몇 재학생들과 최근 동문은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일하심을 위해 함께 기도해 왔으며, 현재 일어나는 일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학기에 대학에서 신학 인류학 수업을 하고 있는데, 지난 금요일 학생들에게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예배하고 영적으로 교감하기 위해 창조된 피조물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것은 목적인(目的因), 즉 우리가 창조된 이유이다. 우리는 예배할 때 가장 완전하게 살아있고 온전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진 삶에 대한 아주 작은 창문일 뿐이다.

이것은 분명히 그의 모든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는 복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그 실체의 아주 희미한 그림자라면, 우리 앞에 높여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거룩한 사랑이다.

나 또한 학생들에게 우리가 하나가 되고 서로 교감하면서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당에서 경험하고 있는 예배는 예배당 밖,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인종과 민족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

이전 부흥에서는 교회와 사회 모두에게 축복의 열매가 항상 있었다. 예를 들어, 세속적인 학자들도 2차 대각성 운동이 미국 노예제도의 종말을 가져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세대에 이런 부흥으로 어떤 열매를 맺게 하실지 기대된다.

금요일 점심에 아들 조시아가 나를 발견하고는 그와 그의 친구들이 강단에서 무릎 꿇고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 일행은 4명이었고, 그들은 각각 다른 나라의 언어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것이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에 대한 가장 희미한 반영이라 생각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마치 천국의 작은 조각이 지구상에서 우리를 만나는 것 같다.

복음은 사실일 뿐 아니라 눈부시게 멋지고 신비롭게 아름답다. 채플 강당을 나설 때마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경험한 느낌이 든다.

03.1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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