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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호칭 대명사를 꼭 사용해야 할까?

미국 내 성별에 따른 언어 사용이 사회적으로 점점 더 많은 논란을 불러

슈아 윌못과 래건 젤라야는 뉴욕 북부에 있는 기독교 학교인 휴튼 대학교의 기숙사에서 근무했다. 대학 정책에 위배 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별을 식별할 수 있도록 이메일 서명에 대명사를 사용했다. 올해 초 대학 측에서 대명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윌못과 젤라야는 이를 거부했다. 그들은 해고당했다. “제 이름은 슈아입니다. 특이한 이름이죠. 여러 언어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을 가리키는 모음인 a로 끝납니다.”라고 정확한 이름이 조슈아인 윌모트가 유튜브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메일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저를 개인적으로 모른다면 성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를 겁니다.” 젤라야는 인터뷰에서 “제가 이메일 서명에서 대명사를 삭제하면 그렇게 한 것을 본 학생들이나 이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태도를 보일 가치는 없다고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윌못은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성별과 정체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는 휴튼 대학교의 후원 교단인 웨슬리언(감리교) 교단의 신학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휴스턴 대학은 언론에 보낸 성명에서 대명사 사용만으로 해고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이메일 서명에서 성경 구절을 언급하거나 ‘불필요한 항목’을 기재한 경우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휴스턴 대학의 웨인 D. 루이스 주니어 총장은 CT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명사는 개인에 의해 선호되거나 변경될 수 있으며,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휴스턴 대학교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성과 성별을 지정하는 것은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믿습니다. 대명사 사용에 관한 제도적 규범의 변화를 직면한 것은 기독교 대학과 직원들만이 아니다. 직장, 교실, 조직화 된 사회 환경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나 서신에 개인이 정한 대명사를 명시하는 것이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종종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인칭 대명사를 사용해야 하도록 기대되거나 요구되는 전 휴스턴 직원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직면한다.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대명사를 밝히는 것을 꺼리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출생 시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대명사로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을 존재론적 문제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이자 휘튼 대학의 성 및 성 정체성 연구소의 책임자인 마크 야르하우스는 “우리는 이 거대한 주제에 관한 대화를 축소시켰지만, 이제는 문화적으로 이 논쟁이 드러나는 시점에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즉, 여러 세대에 걸쳐 단순한 형식에 불과했던 인사말과 이메일의 서명란이 이제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명사에 대한 논의는 ‘미덕의 신호’나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섰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기독교인들은 현실과 사고를 형성하는 데 있어 언어의 역할을 이해하며, 언어는 사람들을 가치 있게 대하는 방식에서 핵심이라고 믿는다.

2016년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they’와 같은 성 중립 대명사의 증가에 대해 “어휘론적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 성 중립 대명사와 대체 대명사 사용이 많은 직장, 학계, 미디어에서 이론적인 논의를 통해 기준을 세우고 바뀌는 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14년에 페이스북은 사용자를 위한 50개의 새로운 성 정체성 옵션을 출시했다. 5년 후 메리엄 웹스터는 단수 대명사 ‘they’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고, 일부 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대명사를 추가하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대명사는 여성 스포츠부터 마케팅에서의 트랜스젠더 표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성중립 대명사 논쟁에서 정치적 지뢰가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성 중립 대명사 사용을 거부한 개인에 대한 소송이 여러 건 제기되었다. 그리고 2023년 1분기에만 미국 24개 주에서 학교 내에서 대명사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일부 고용주들도 이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직장 내 성별 대명사 가이드에 따르면 “정확한 대명사를 사용하여 성별을 긍정하고 상호 존중의 의사를 표시하면 폭넓고 수용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타인의 정확한 대명사 사용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성범죄에 해당하며 타인에 대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대명사 식별에 대한 제도적 추진은 제3의 성 대명사 또는 출생 시 성별과 다른 대명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증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퓨 리서치 센터는 2022년에 미국 성인의 1.6%가 자신의 성별이 출생 시 성별과 다르다고 답했으며, 30세 미만 성인의 5%가 제3의 성 또는 트랜스젠더로 분류된다고 보고했다.

미국인 10명 중 1명은 트랜스젠더와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같은 비율로 성 중립 대명사를 사용하는 사람과 친밀한 친구 관계를 맺고 있다고 공공종교연구소(PRRI)는 밝혔다. 2019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직장과 시장에서 성 중립 대명사를 사용하면 여성과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심리적 편견이 줄어든다”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 따르면, 대명사에 대한 강조가 증가하면서 성별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 오히려 강화되었을 수도 있다. 2023년 봄에 보고된 PRRI의 연구에 따르면, 2년 전보다 더 많은 미국인이 성별 이분법을 믿는다고 답했다(59%에서 65%로 증가). 종교를 가진 미국인 중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의 92%, 히스패닉 개신교 신자의 81%, 흑인 개신교 신자의 71%가 이에 동의했다. 2023년 6월 NPR, PBS, Marist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슷한 비율(61%)의 미국인이 성별은 출생 시 성별에 따라 결정된다고 답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지난 1년 동안 크게 증가했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

 

“언어는 심오한 도구입니다. 언어는 우리가 실체에 접근하고 구성하는 방식입니다.”라고 노트르담 대학교의 가톨릭 학자이자 ‘젠더의 기원: 기독교 이론’의 저자인 아비게일 파베일은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젠더 이론은 언어가 인간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합니다.” 언어와 젠더에 대한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대명사는 단순히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미네소타 보건부와 같은 일부 옹호자들은 정신 건강과 자살률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확한 대명사를 사용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베일은 오늘날 “성 정체성은 신체적 성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언어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단어에 너무 많은 강조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베일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젠더 이론이 말로 현실을 창조하는 데 너무 멀리 나아가고 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주장한다(창 1장, 요 1:1).

창세기의 처음 두 장은 인간의 정체성을 하나님과 서로의 관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여성이 되려면: 여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기독교인의 대응 방법’의 저자 케이티 맥코이는 주장한다. 창세기 1장은 창조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용어인 남자(zakar)와 여자(nequeba)의 창조를 언급한다. 그러나 창세기 2장에서는 창조 이야기가 훨씬 더 관계적이라고 맥코이는 주장한다. 이 장에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용어 대신 남(ish)과 여(ishah)라는 성별 용어를 사용하며, 이는 본성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의 이름을 짓고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짓는 방식조차도 그들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창 2:7, 2:23).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된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성별은 신학적으로 부여된 것이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맥코이는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의 언어가 정체성을 반영하기보다는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자신과 교회가 진화하는 언어 및 사회적 규범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서 목회를 하는 트래비스 라이머도 그중 한 명이다. “왜 사람들이 이 주제에 열광하는지 궁금해서 대명사 연구에 뛰어들었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더 큰 철학적, 이념적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자신의 교회와 다른 지역 교회에서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해 가르치는 라이머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세속적 종교 체계로 보고 있다. 라이머는 선호하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은 신념 체계를 묵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도들에게 직장이나 교육 환경에서 자신의 대명사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의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거절하도록 권장한다. 이는 성경에 충실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행위이기도 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로사리아 버터필드와 신약학자 로버트 가뇽 외 성에 대해 글을 쓰는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개인의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죄이며, 거짓 증거를 하는 것이고 창조 명령을 모욕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전직 영어 및 여성학 교수였던 버터필드는 이런 대명사의 사용을 ‘광범위한 복음주의 진영의 아간’이라고 부르며(여호수아 7장 참조), 가뇽은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고전 8-10장)를 인용한다.

“바울의 발언은 우상 숭배와 같이 하나님이 혐오스러워하는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의 자기기만에 참여하는 것까지 확대하지 말라는 것이며, 이 원칙은 심지어 우상 숭배가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인식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라며, 이 문제를 ‘찬반 가능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휘튼 대학의 임상 심리학자인 야르하우스는 트랜스젠더 청년 및 성별 위화감을 경험한 사람들과 자주 일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제도적인 환경에서는 대명사를 자원해서 밝히지는 않지만 요청이 있을 때는 대명사를 사용한다. 그는 반대하지도 주도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메일 서명 같은 곳에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고작 “생물학적 표식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개인이 있다는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여긴다. 최악의 경우, “미덕을 어기는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야르하우스는 기독교인들이 여러 가지 ‘존재론적 진리’를 동시에 붙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내재적 진리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신다는 진리를 동시에 믿을 수 있다. 야르하우스는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의 가치를 믿지만, 성별이 자의적이라는 것을 암시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일부 제도적 형태의 포용성은 대명사 사용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가진 커뮤니티에서도 ‘환원주의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만화경의 엘리자베스 델가도 블랙 회장은 기독교인은 다른 틀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수님도 문화적 틀 안에서 교류하셨습니다. 그분도 동의하지 않으셨던 것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위해 커뮤니티에 속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과 그들이 사역하는 트랜스젠더 및 제3의 성 커뮤니티의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대명사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이야기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PRRI의 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62%)은 사람들이 대명사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고 생각한다고 보고했다.

많은 사람에게 대명사 사용 문제는 양심의 문제이다. 어떤 이들은 바벨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왕궁에서 일하도록 발탁된 다니엘의 성경적 예를 들기도 한다(단 1:4).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 성감과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신경 쓰지 않는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그들에게는 이교도 이름과 모세 율법에 반하는 음식과 마실 것이 주어졌고,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했다 (1:4-7).  성경은 다니엘이 이러한 상황을 은혜롭고 지혜롭게 헤쳐나갔다고 기록한다. 다니엘은 새 이름을 받아들이고 문화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음식에는 선을 그었다. 이는 그에게 법의 문제였을까, 지혜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양심의 문제였을까?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다니엘이 용기와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 것은 분명하다. 

일부 기독교인은 제도적 규범과 개인적 관계를 구분한다. 노트르담의 학자인 파발레는 “사랑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이 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양심이 신앙에 매여 있는 기독교인은 친구에게 자기 식별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제도적 차원에서는 시민 불복종이나 침묵을 통해 자신의 대명사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편지에서 진리를 따르고 동시에 사랑 안에서 행하라는 기독교의 명령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러한 신학적 진리는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둘 중 하나가 부재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종종 문화와 싸우거나 문화에 항복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대사가 되는 방법을 알 수 있는 본보기가 적습니다.”라고 야르하우스는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점점 더 희미해지는 문화 속에 살아가지만, 우리는 문화에 대해서도 하나님 나라의 대사입니다.” 비록 성경이 모든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의 고유한 존엄성과 성령, 성경, 교회를 통해 발견되는 경건한 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원칙과 진리를 제시한다. 야르하우스는 “이웃, 직장 환경, 인간관계를 위해 기도하며 분별력 있는 대응을 할 수 있는 대사의 직을 수행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저는 제 대사의 직분을 대명사로 축소하고 싶지 않습니다.”

by Kara Bettis Carvalho, CT

11.0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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