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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복음은 예수의 복음과 다르다?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하게 표현했음을 확신

어느 날 저녁,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자기 교회는 바울의 복음이 초래하는 수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의 편에 서 있다고 말하는 어느 목사의 영상을 보았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을 많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에 비하면 사실 내가 받은 충격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바울에 대한 이런 식의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바울은 예수님이 전파하신 “사회적, 윤리적” 복음과 모순되는 예수님에 관한 “신학적” 이야기를 새로 만든 걸까? 

이 문제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 일단 공통 기반을 구축하면 더 쉽게 불일치를 좁힐 수 있다. 한번 솔직해져 보자. 사실 복음주의자는 의도치 않게 예수님보다 바울에게 더 큰 초점을 둘 수 있다. 바울의 서신서는 일반적으로 복음서 속 서사보다 더 직접적이고 문자적이며 또 논리적인 주장을 펼친다. 누구나 더 관심을 두는 성경 속 장르가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우리는 자신만의 “경전 속 경전”을 만드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의미는? 

 

“두 복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울은 간접적으로 접한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파했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관련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설교하셨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한 메시지는 확실히 마가가 예수님의 설교를 요약한 내용과 일치한다(막 1:14-15).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절은 마가가 그 자신에게 전달된 목격담을 요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간접적이라는 면에서 바울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이 과연 “사회적, 윤리적” 복음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이라고 정의하셨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마가복음의 시작 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가는 1장 1절(“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에, 그러니까 사실상 제목에 “복음”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이 제목에서 마가는 “복음”을 다름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또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유대인과 로마인의 왕 칭호)로 묘사하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마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제1세기 로마 세계에서 “복음”(euangelion)이라는 용어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전기적 서술이 아니었다. 당시 복음이 의미하는 바는 전쟁터에서 신들이 준 승리뿐만 아니라 신성한 통치자의 탄생, 권력 상승, 신성한 권력자가 내리는 법령(예: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칭송하는 프리에네 비문) 등을 의미했다. 

동사 euangelizō(“나는 좋은 소식을 선포한다”)는 칠십인역, 특히 이사야서(예: 사 40:9-10; 52:7-10)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포로 생활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행동하고 계심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세상의 우상을 숭배하는 통치자를 타도하시고 당신의 통치를 확립하셨다. 마가는 서문에서 이사야 40:3을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떻게 그를 왕의 통치에 들어가도록 했는지, 그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복음”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복음은 바울의 복음과 모순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5:3-11에서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선포가 어떻게 구약의 이야기를 성취하는지 강조한다.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두 복음” 주창자들이 바울의 대적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사람들) 나타나신 예수님을 통해 부활의 역사성을 확증한다. 로마서 11:1-7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파한 복음이 선지자들의 약속의 성취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고, 그 결과 예수님이 왕으로 즉위하실 것이다. 

 

왜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했을까? 

 

바울과 예수님이 피차 동의한다면, 바울은 굳이 왜 “나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바울은 총 60번에 걸쳐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가운데 6번만 “나의/우리의”라는 수식어를 추가했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는 자신의 복음이 왕이신 예수님이 행하신 심판을 포함하고(롬 2:16),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을 가능하게 하며(롬 16:26), 신자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방법(고후 4:3; 살전 1:5)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예는 바울이 자신의 메시지를 예수님의 메시지와 차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치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바울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복음”을 27번이나 사용한다. 이와 같은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그가 전파한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가 전파한 복음과 같다는 그의 이해를 반영한다(행 15:22-30). 게다가 바울은 마가복음 1:1, 1:14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예: 롬 15:19)과 “하나님의 복음”(예: 살전 2:2)을 사용한다. 

바울에게 계시된 복음(갈 1:11-12)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곧 예수님의 왕권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계획과 일치한다(마 24:14; 26:13; 막 13:10; 14:9; 눅 24:44-49).

 

예수님과 바울의 통일된 복음은 오늘날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할까?

 

먼저, 우리는 행여라도 내가 바울을 너무 좋아해서 예수님과 경쟁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신약과 구약 사이에 편향성이 있는 건 아닌지 또 특정 장르와 저자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건 아닌지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경 전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하게 표현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의 개념과 언어는 구약성경과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과 메시지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완벽하게 계시하신 통일성 있는 말씀이라는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에 66권의 책을 맡겼고, 초대교회는 이 모든 책을 기독교 정경이라는 테두리 안에 나란히 두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주신 계시의 일부를 풀겠다는 교만에 빠져서 인간의 이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남겨진 이성을 소위 말하는 성경적 논쟁에 악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더 중시하는 오류에 빠질 것이다. 

by Donny Ray Mathis II, TGC

05.1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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