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는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해방을 주는 통찰을, 곧 인생이 우리가 원하거나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한 단어에 담았다. 그런데 이 충격적이고 불편한 소식이 오히려 도움과 소망의 문을 열어 준다.
전도서에서 가장 중요한 이 단어는 번역하기에 가장 까다로운 단어이기도 하다. 바로 히브리어 '헤벨'이다. 이 단어는 전도서의 선언격인 1:2에 처음 등장하는데,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킹 제임스 성경(KJV)의 번역이 익숙할 것이다.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개역개정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헤벨은 "무의미하다" "헛되다" "덧없다"로 번역할 수 있다. 책 전체에서 자신을 코헬렛(Qohelet, 전도자)이라고 부르는 저자이자 주인공은 삶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모든 가능성을 추구하고, 또 온갖 즐거움을 탐구한 이후에 이 모든 것을 향해서 거듭 거듭 ‘헤벨’이라고 선언한다.

헤벨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숨" 또는 "수증기"이다. 시편 62:9은 낮은 신분과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입김보다 가볍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자적 의미에 근거하여 많은 사람들은 전도서의 헤벨이 “덧없다(transient)” 또는 “순식간에 사라진다(fleeting)”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도서는 이처럼 덧없고 사라지는 어떤 것을 헤벨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적어도 한 곳에서 분명하게 “덧없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네 마음에서 근심을 제거하고 네 몸에서 고통을 제거하라. 젊음과 생명의 새벽은 헤벨이니라”(11:10).
물론 인생의 좋은 것들이 다 덧없다는 사실은 분명 인간이 가진 문제의 일부이다. 하지만 ‘헤벨’의 의미가 단지 “덧없음”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만으로는 해 아래 인생에 대해서 코헬렛이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그렇다면 무엇이 더 정확할까? 바로 “부조리”(Absurd)이다. 이 단어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 세상이 주는 것,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과 세상이 돌려주는 것, 우리가 간절히 외치는 것과 세상의 무심한 침묵 사이의 불일치를 가리킨다.
코헬렛이 말하는 세상의 부조리는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부터 ‘헤벨’을 “부조리”로 번역해 보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코헬렛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의 원천에서 만족을 추구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자, 내가 쾌락으로 너를 시험하여 즐겁게 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보라, 이것도 헛된 것이로다"(2:1). 그는 일, 술, 여자, 부, 음악 등에서 쾌락을 추구했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욕망을 마음껏 탐닉했다. 그러나 결론은 이렇다.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그 일에 쏟은 수고를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요 해 아래 무익한 것이로다"(11절).
왜 코헬렛은 자신의 쾌락 추구를 '헤벨'이라고 부를까? 그것이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지만. 정작 원하던 만족을 얻지 못했다. 전도자는 각각의 쾌락과 그 쾌락을 극대화하려는 모든 노력에서 무언가 부족한 점을 발견했다. 쾌락은 결코 우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항상 다시 채워야만 한다. 그래서 쾌락 추구는 부조리한 일이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이 그것을 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더 큰 이유는 세상이 준다고 해도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무언가를, 혹은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은) 원하는 것을 얻는다.
앞서 말한 쾌락 추구의 교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코헬렛은 특히 돈과 관련하여 이 주제를 자주 언급한다. 5:10이 좋은 예이다.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 대부분 욕조에는 수도꼭지 쪽으로 3분의 2 높이에 작은 구멍이 있다. 욕조에 물이 넘치지 않도록 물이 자동으로 빠지게 하는 장치이다. 욕조가 넘쳐서 집이 침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돈은 그런 욕조와 다르다. 자동 차단 스위치도, 정해진 정지 지점도 없다. 더 많이 얻는 게 가능하기에 언제나 더 많이 원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쳇바퀴이자 함정이다. 만약 당신의 목적이 더 많은 돈이라면, 그 목표는 언제나 멀어지는 지평선 너머에 있을 것이다. 돈 자체도 그렇지만,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어떤 것도 당신이 원하는 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코헬렛이 전도서의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에서 말한 바로 그대로이다. "어머니 태에서 맨몸으로 나와서, 돌아갈 때에도 맨몸으로 간다. 수고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 한다"(5:15).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쫓지만 항상 더 멀리 달아나고,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예 사라져 버리는 목표,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부조리이다.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헤벨을 단지 “덧없다”라고 번역하는 건 한계가 있다. 코헬렛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헛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가 하면,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 이것을 보고, 나 어찌 헛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8:14). 이건 마치 누군가 장부를 바꿔치기 한 것 같고, 마치 우주의 질서가 헝클어져 우주의 장부가 바뀐 것과 같다. 의인이 악인이 초래한 결과를 얻고, 또 그 반대의 경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법정에서 회의실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종종 정반대의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에게는 한 줄기 소망이 필요하다.
하지만 코헬렛은 인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인생이 하나님의 선물이며(2:24-26; 5:18-20),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고 말한다(11:9). 그렇지만 코헬렛이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의 해체 작업의 출발점이다. 이는 우리가 기꺼이 종이 되는 우상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초석이다. 어둡게 보일지 모르지만,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코헬렛의 진단에는 희망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 부조리의 핵심 중 하나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것과 실제로 받는 것 사이의 괴리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역사상 나사렛 예수보다 더 부조리한 삶을 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부조리의 희생자가 아니라 파괴자로서 그것을 견뎌내셨다. 그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부조리를 경험하시고 소진시키고 끝내셨다. 그렇기에 오로지 그분만이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부조리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해답이시다.
by Bobby Jamieson, TGC
08.30.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