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년 동안 나는 기쁨도, 능력도 없는, 늘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 목사였다. 그런데 인생과 사역의 늦은 시기에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주셨다. 내 교만의 깊이를 알게 하셨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이 주는 기쁨 어린 경이로움까지 다 맛보게 하셨다. 그 체험은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1988년, 뉴저지 중심부에 있는 우리 집 거실에서 크라이스트 커뮤니티 교회가 시작됐다. 첫 해 교인 수는 평균 86명, 꽤 괜찮은 출발이었다. 1년 뒤에는 릭 라비스라는 부목사까지 청빙했다. 교인은 해마다 늘어나 2002년에 이르러서는 267명이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여러 사역자를 둔 교회로 성장해서 매주 럿거스 대학교 캠퍼스에서 모이고 있었다. 나는 목회 면에서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두 번의 중단
2002년 8월에 나는 그 어떤 원고도 없이 설교하기로 결심했다.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원고 없이 설교하도록 훈련을 받았고, 1990년대의 어느 한 해 동안 실제로 그렇게 설교하기도 했다. 이후에 다시 원고를 썼지만, 그럼에도 그게 가장 효과적인 설교 방식이라고 믿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주일을 정해 여느 때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한 뒤, 오로지 성경책만 들고 강대상에 섰다. 하지만 기분이 이상했고, 설교를 끝내는 데에 애를 먹었다. 예배 후 아내 패트리샤에게 강대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그녀가 대뜸 말했다. "공황발작처럼 들리는데!"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 상담사를 찾았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일이 일어났고 또 일어났고, 반복됐다. 거의 10년 동안, 나는 설교할 때마다 불안과 씨름했다.
나의 성공가도 목회 여정을 가로막은 두 번째 사건은 ‘큰 하락’이었다. 10년 넘게 늘던 교인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1년이 되자 2002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런 하락세가 계속되면 교회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우리는 절박해졌다. 너무나도 절박해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성령이 일으키시는 부흥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흥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고, ‘부흥 집회’를 열었으며, 교인 전체가 함께 떠나는 주말 부흥 수련회도 가졌다. 몇몇은 매주 새벽 5시 반에 모여 부흥을 위한 기도회도 시작했다.
갱신을 위한 기도
2016년 가을, 릭 목사가 교회를 기도의 공동체로 이끄는 방법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전략적 갱신(Strategic Renewal)’이라는 사역을 이끄는 다니엘 헨더슨이었다. 과정을 마친 뒤, 리크는 우리 지도자들에게 헨더슨의 책 ‘오래된 길, 새로운 능력(Old Paths, New Power)’을 읽으라고 권했다. 그 책의 주제는 교회가 다 함께 하는 기도의 중요성이었지만, 나는 그 교훈을 내 개인 삶에 적용했다.
나는 기도하지 않는 목사였다. 적어도 해야 마땅한 만큼은 하지 않았다. 늘 바빴다. 설교를 준비해야 했고, 이메일에 답하고 또 회의를 이끌어야 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기로 결심했다. 헨더슨이 가르친 방식대로, 예배에 기초해서, 말씀을 먹으며, 성령이 이끄시는 기도를 시작했다.
첫날, 나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전혀 새롭게 경험했다. 깊은 두려움과 경외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하나님의 영광을 잠시나마 바라보는 순간, 시간이 느려졌다. 그때야 나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 방어적인 태도,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습관, 그리고 기쁨을 잃은 삶, 이 모든 게 다 교만에서 비롯되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교만을 고백했고, 그때까지 걸어온 나를 중심에 둔 인생을 하나님 앞에 자복했다. 그러자 실로 낯선 감정을 경험했다. ‘이게 뭐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 이게 기쁨이구나.’ 그리고 정말 그랬다. 잠깐의 기쁨이 아니었다. 하루나 일주일, 한 달짜리 기쁨도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기쁨, 변화를 일으키는 기쁨이었다. 그때 나는 예순세 살이었다. 내게 영적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웃는 법을 배우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모든 게 달라졌다. 내 설교가 더 깊어지고 더 뜨거워졌다. 그동안 나는 교인들이 바라던 리더가 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진짜 리더가 되어 그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항상 나를 괴롭히던 내성적인 성향도 사라졌다. 다섯 달이 지나고, 형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우리는 매주 통화했지만, 내가 체험한 영적 각성에 관해서 나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형이 이렇게 썼다. ”다음에 통화할 때 나한테 꼭 물어보라고 상기시켜줘. 네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걸 느꼈거든.“ 그리고 우리가 통화할 때, 형이 가장 먼저 지적한 건 내게 유머 감각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비로소 웃는 법을 배웠다. 나의 변화가 워낙 드라마틱해서인지, 교회에서는 나를 “데니스 버전 2”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설마, 그게 진짜 회심이었던 건가? 아니면 성령세례를 받은 건가? 나는 이 두 가지가 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가 믿기로, 그것은 성령이 일으키신 각성이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내 죄의 깊이, 그리고 기쁨에 찬 복음의 경이로움에 눈이 열린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었다’(엡 3:19). 그리고 그 충만이 흘러넘치는 가운데서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복음은 내게 의무가 아니었다. 복음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풍성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이 되었다. 복음의 각성은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다. 내 경우가 그랬다. 그러나 대부분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든, 복음의 각성은 복음의 삶에 꼭 필요하다.
지속되는 기쁨
나는 산꼭대기의 순간을 잠깐 맛보고 다시 무너진 나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그리고 다른 사람들)는 과연 지속적인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까?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정말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그렇다. 나는 바로 그 길을 발견했다. 복음의 길이다. 예수님과의 연합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는 길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이 길은 고난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기쁨을 가져다준다.
2017년 이전, 교단 연례 모임에서 어느 목사가 내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내 얼굴에서 힘겨움과 기쁨 없음이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다. 내가 그에게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맞았다. 내 삶에서는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몇 년 뒤, 2017년 이후에 같은 모임에서 나는 잘 모르는 어느 목사와 점심을 함께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참 기쁨이 넘치는 사람 같군요!“ 그가 맞았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내 얼굴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그 기쁨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by Dennis Cahill, TGC
09.13.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