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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라운 구약의 기도

언약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경건함의 강력한 본보기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데 큰 관심이 없다. 유다의 가장 뛰어난 왕으로 꼽히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이야기조차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불경건한 왕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흐름을 잠시 끊는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의 이야기도 본받을 만한 모범의 제시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많은 왕들의 장기적인 실패와 잘못의 증거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예: 왕하 19:14–19; 20:12–20; 23:28–30).

특히 열왕기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기도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열왕기상 8장에서 솔로몬의 기도가 크게 강조된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솔로몬의 기도는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풍성한 메시지를 주며, 하나님의 광대한 언약의 신실함, 곧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임재를 누릴 길을 여시고 모든 민족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바로 그 결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솔로몬의 놀라운 영성

 

열왕기에서 솔로몬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대목은 열왕기상 1장에서 다윗의 수치스러운 무기력과 관련된 맥락에서인데, 이 시점부터 독자는 혼란 속에서 시작한 그의 통치가 결국에는 모호함으로 점철될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솔로몬의 지혜가 구체적으로 처음 언급되는 건 다윗이 요압과 시므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네 지혜대로 행하라”(왕상 2:6, 9)라고 한 대목에서이다. 이 말은 열왕기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솔로몬의 성품과 경건함에 관해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계속 이어진다. 하나님께 받은 지혜가 처음 드러나는 장면이 아이의 친모를 가려내는 사건인데, 그 배경이 기묘하게도 마치 매춘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상적이지 못한 상황 때문이었다(3:16–28). 그리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열왕기상 3장 초반에 나오는 바로의 딸과의 혼인은 신명기 17장의 명령에 대한 정면 거부이다. 솔로몬이 이집트 왕비를 위해 성전 구역 안에 별도의 궁전을 지어주고, 또 그의 궁전이 성전보다 훨씬 더 웅장하게 지어졌다는 사실(왕상 7장)은 그의 “마음”에 대한 불편한 의문을 제기한다(신 17:17, 20; 삼상 16:7 참조). 솔로몬이 행사한 통치의 궤적은 열왕기상 11–12장에서 명확히 제시되는데, 비록 긍정적인 점이 강조되었다 해도 그의 레거시는 기껏해야 혼합적이다. 그럼에도 이 불편한 내러티브는 오히려 열왕기상 8:22–53에 기록된 그의 기도가 더 찬란하게 빛나는 효과를 낳는다.

솔로몬의 기도가 열왕기 기록의 영적 절정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신학적으로도 매우 풍성하다는 점은 더욱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기도는 깊이 면에서 한나, 에스라, 느헤미야의 기도와 나란히 서지만, 범위에 있어서는 오히려 다른 모든 기도를 능가한다. 모세가 세운 신학적 의제(특히 신명기에 표현된)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표현으로서, 이 기도는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 기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당시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물 또는 봉헌물에 거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성전의 일상적인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대신, 솔로몬은 성전이 앞으로 민족의 영적 궤적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만 집중한다. 그 결과 그의 기도는 신학적으로 풍성할 뿐 아니라 깊은 경건함까지 드러낸다.

 

하나님의 신실함

 

솔로몬의 기도(22–26절)의 기본 전제는, 성경에 기록된 거의 모든 기도와 마찬가지로 언약을 세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토대로 한다. 본질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기를 구하는 간구이다. 기도 안에 찬양 또는 고백 같은 다른 요소들이 담길 수 있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의 핵심은 약속하신 것을 실현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 점은 솔로몬의 기도 서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23–26절에서 그는 성전의 건립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에 가장 먼저 사무엘하 7장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언급한다. 성전 건물의 마련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 기름부음 받은 왕에 대한 약속에 종속된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솔로몬은 메시아라는 한 개인을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이 성전 건물보다 훨씬 크고, 동시에 그 건물의 의미를 규정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왕이자 참된 성막과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데 필요한 신학적 토대가 된다. 이 흐름 위에서 솔로몬은 이어서 본격적인 신론이라는 주제로 눈을 돌린다.

 

하나님의 임재

 

솔로몬은 신명기 4장(특히 32–40절)을 깊이 의지하면서, 성전을 짓도록 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그 성전에서 백성과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8:27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참으로 하나님이 땅에 거하시리이까?” 이 질문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솔로몬도 이 두 개념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주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은 동시에 성소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28–30절에서 마치 제사 제도 전체를 전복하는 듯 보이는 솔로몬의 태도이다. 이제 막 시작될 피비린내 나는 성전의 일상적 제사 운영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물 희생 제물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용서를 구하며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요청한다(30절). 그는 지금 구약의 제사 제도를 지탱하는 신학적 토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곧 죄 사함이 궁극적으로 황소와 염소의 피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간구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열방들과 이스라엘의 미래

 

놀랍게도 41–43절에서는 기도의 지평이 아예 열방으로 확장된다. 어떤 측면에서 이는 신명기 4:5–8을 연상시키는데, 거기서 한 외국인이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을 듣는다. 그렇다면 그 이방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자든 여자든 그 사람은 “와서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한다”(왕상 8:42).

솔로몬은 하나님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한다.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를 경외하며, 내가 지은 이 성전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줄 알게 하옵소서”(43절). 따라서 성전 건립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중요한 단계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이 열방의 빛이 되는 사명(사 42:6; 49:6)을 감당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땅에서의 미래, 그리고 결국 성전마저 (그리고 예루살렘 성읍마저) 하나님의 백성이 다 잃을 것이라는 근본 문제가 내포한 궁극성으로 돌아간다(왕상 8:44–45).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여전히 열쇠는 남아 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택하신 성,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게 하옵소서”(48절). 출애굽의 하나님(51절)은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서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솔로몬은 지금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셨고 또 모세를 통해 이루셨던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 미래를 소망하고 있다(53절).

솔로몬의 기도는 신명기 신학이 이스라엘 민족사의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그가 봉헌되는 성전 건물 자체를 강조하지 않고 오로지 언약의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 기도가 솔로몬 이야기에서 (그리고 열왕기 전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이후 이어질 그의 태도와 행위들이 결국 바빌론 포로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음을 강하게 주석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도가 구약의 다른 많은 기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하나님께 약속하신 일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도록 격려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솔로몬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모아 당신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마침내 새 창조 안에서 그들을 영원히 안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도록 자극한다.

by  J. Gary Millar, TGC

09.1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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