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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샤넬, 프라다, 루이비똥, 크리스챤디올 등의 브랜드를 소위 명품이라고 부릅니다. 그들 품목들이 명품이 되기까지는 장인정신을 가진 디자이너의 공헌이 제일 클 것입니다. 

교회를 처음 디자인하신 분이 계십니다. 교회는 가장 위대한 교회디자이너 예수님께서 만든 작품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당연히 명품교회으로 또는 위대한 교회로 만들어져 가야하고 그렇게 불려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위에 언급한 명품처럼 그렇게 고귀하게 불리워지고 있는지… 진정 예수님께서 처음에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대로 오늘날 교회가 그 모습을 잘 지켜가고 있는 것일까요? 현실을 돌아볼 때 부정적인 교회 이미지를 질책하는 소리가 높게 들립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맨처음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늘날 원하시는 위대한 교회의 모습을 우리 모두 다시 회복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최고의 디자이너이신 예수님께서 그려놓으셨던 위대한 교회상은 무엇일까요?

첫째, “고백이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당시 로마황제의 도시요, 우상의 도시로 불렸던 가이샤랴 빌립보에 제자들과 함께 방문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특별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바로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반석’이란 다름 아닌 베드로의 고백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는 단순히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또는 사회복지나, 문화적인 동아리들이 함께 모인 집단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예수님만이 나의 왕이시요, 나같은 죄인을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해주신 대제사장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하며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가시는 진리 되신 선지자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교제하고 우리 삶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임 속에는 세상에서 체험할 수 없는 신령한 회개의 눈물이 있고, 영적 감격이 있으며, 감사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감동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 교회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명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곳이 교회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회의 모습은 사람이 주도해서 이루는 일은 아닙니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듯이 주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은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역시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고, 주님의 인정하심으로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운데 초대교회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가 주님이 디자인하신 위대한 교회로 세움 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 따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다시금 확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디자인하신 위대한 교회는 예수님만이 주인 된 교회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후 예수님께서 즉각적으로 선포하신 교회플랜은 “이 반석(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예수님만이 참된 오너(주인)이어야 합니다. 먼저 교회 나온 사람, 오래 믿은 사람, 학식이 많은 자, 헌금을 많이 한 자, 그들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로교회는 장로가, 감리교회는 감독이, 침례교회는 평신도가 등등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오직 교회의 참된 주인은 예수님 홀로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 지체로서 성도들이 감당할 사명이 있습니다. 

1)귀가 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의 말을 먼저 들을 줄 알아야 주인의 방향에 맞추어갈 수 있습니다. 계시록 2-3장에 보면 교회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던 소아시아 7교회를 향해 성령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각 교회를 향해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예수님이 주인 된 교회는 말씀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 뜻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내 뜻을 말씀에 맞춰가려고 해야 합니다. ‘이 사역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인가?’ 생각하기 전에 ‘주님의 말씀에 맞는 사역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인본주의, 인권 등이 말씀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이 시대의 조류를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시대의 조류에 의해 ‘진리의 불변성’을 ‘낡은 것’으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의 사명은 주님이 디자인한 말씀중심에 귀를 크게 열고 진리의 터를 더욱 굳게 지켜가야 하는 것입니다.

2)말씀 안에서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그의 책 'Church: Why Bother?'(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교회 회의기와 다시 사랑하게 된 이유를 서술해줍니다.

그는 솔직히 교회에 대한 회의는 자기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때였다고 고백합니다.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하는 예배, 내 맘에 드는 찬양과 대표기도, 내 맘에 드는 교회행정 등. 하지만 자기 마음을 온전히 채우는 교회는 없었기에 교회를 떠나 오랫동안 방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 깨닫게 된 것은 신앙생활은 오직 ‘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극장의 관객이 사람이라면, 교회의 관객은 오직 하나님이시기에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느냐에 초점을 두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또한 얀시의 신앙변화는 교회를 하나의 기구로 보았던 관점이, 가족공동체라는 관점으로 변화가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 교회관은 하나의 조직체였기에 일원들의 실수를 용납하기 힘들었지만 교회는 영적가족이기에 항상 ’주변을 바라보며’ 품고 돌봐줌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가족공동체인 교회는 이제 ’밖을 향하여’ 세상을 섬기는 사명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고, 그 일을 감당할 때 진정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것임을 천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얀시는 교회는 남의 약점을  먼저 보기보다는 자기 ‘안을 먼저 성찰’하며 은혜로 채워가려할 때 성숙한 교인의 모습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주님이 디자인하신 위대한 교회!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진정한 고백이 살아있는 교회요, 오직 주님만이 주인되어 말씀이 이끌어가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이며, 그래서 세상을 함께 변화시켜가는 위대한 교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그려놓으신 교회의 모습을 찾아 귀한 사명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lilyumc@hotmail.com

 

11.0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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