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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 이야기(막10:35-37)

우리 집안의 자랑! 아니 고향 논산의 큰 자랑! 고대 법대 졸업 후 고시공부중인 셋째 형이 엄마와 함께 나를 데리고 국립의료원에 왔다. 모든 정밀검사를 마친 의사가 보호자만 들어오게 한 뒤 얘기한다. "혈압이 150이 넘는 것은 동양인으로서 희귀병입니다. 서울대학 병원과 연구사례로 수술을 할 수 있지만, 어차피 수술을 해도 6개월 밖에 못사니, 집에 데려가 마음 편하게 맛있는 거나 해주세요."

엄마와 형이 청천 벽력같은 검사결과에 눈이 퉁퉁 부어 원장실을 나온다. 불과 몇 개월 전 만해도 꿈에 그리던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여, 형을 이어 집안과 고향에 자랑이 되었고, 평생 과부로 고생만 하시던 엄마의 면류관이 된 나였는데.... 사관학교 신체검사장에 제복 맞추는 걸 본다고 왔다가 혈압이 높아 떨어진 나와 오늘 병원에도 함께 온 형은 평소 혈기는 온데간데없이 울기만 한다. 

이때 주님은 우리 두 형제가 야고보와 요한처럼,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잔을 마시며, 주님의 제자로 증인된 삶을 살 것을 이미 계획하신 것일까? 아니다! 오직 하나님과 자식밖에 모르던 어머니 뱃속부터 우리를 향한 계획을 하신 것 일게다.

7남매의 형제자매 중 나보다 10살 많은 셋째 형은 어려서부터 유명했다. 똑똑하고, 싸움도 잘하고, 욕심도 많고, 야망도 컸다. 판검사가 되어 출세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집안을 일으키는 게 형의 목표였고, 우리 가족은 그런 형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했다. 형을 보고 자란 나도 육사를 진학해 장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고, 그 꿈이 다 이루어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사망선고 날이 되었다.

이렇게 시체처럼 누워만 있다가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병실서랍에 넣어 둔 성경을 꺼내 읽는 중 고린도전서 1장 25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말씀을 읽는 중 가슴이 뜨거워지며 침대에서 내려와 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 죽으면, 천국에 갈 테니 엄마가 덜 가슴 아파하실 것 같았다. 

그렇게 동기들보다 늦게 감리교신학대학에 들어가 목사가 되고, LA 클레어몬트신학교에서 석사와 목회학박사 공부를 마치며 23년간 나성한인감리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했다. 그리고 14년 전 한국감리교의 어머니교회, 136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제일교회에 청빙되어 담임목회를 은혜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상하리만큼 형은 고시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성적이 아주 안 좋으면 빨리 포기하련만 대학 3학년에 동기들 중 제일 먼저 고시 1차에 붙은 형은 2차에서 번번이 근소한 차로 떨어지며 고시귀신에 붙잡혔다. 엄마와 가족들이 하던 형의 뒷바라지를 초등학교 교사인 형수가 이어 받았고, 그 사이 딸도 셋이나 두었다. 고시가 되지 않는 이상, 형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롯데에서 건설업을 시작하며 간부사원을 모집했고 형은 당당하게 자재과장으로 합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건설회사 자재과는 보이는 돈과 보이지 않는 돈이 제일 넘쳐나는 곳이었다. 양옥집과 피아노, 외제차와 기사를 둔 형은 그동안의 가장 노릇 못한 것을 한풀이 하듯 주말마다 놀러 다니기에 바빴고, 평생 술 담배도 안하며 목사님께 순종하는 헌금 많이 하는 충성된 장로가 되겠다던 엄마와의 약속도 잊어버렸다. 

형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형의 소문을 듣고 연락을 했다. 형은 그들과 어울리며 도박에 빠졌다. 고시실패로 구멍 난 형의 마음을 전국 대규모 도박장들이 채워가고 있었다. 참다못한 형수도 친정으로 가버렸다. 신학교를 다니며 형의 소식을 들은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형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할수록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들고 자존심 강한 형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이른 아침 연세대 앞 한 컴컴한 다방에서 형을 만났다.

나의 자랑 우리의 희망 형은 이제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는 폐인이 되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마주 앉은 형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형은 이 세상 누구보다 똑똑하고, 야망도 크고, 돈도 많이 가져봤지만 그 어떤 것도 형의 마음을 채울 수 없었잖아.... 나랑 같이 신학교에 다니자. 오직 하나님만 형을 채울 수 있어." 평소라면 불벼락 같은 대답을 들을 줄 알았는데, 형은 울면서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며 서울 집을 정리하고 마송에서 개척교회를 하는 내 하꼬방 사택으로 일하는 애와 세 딸을 데리고 왔다. 

그렇게 형은 나의 후배가 되어 신학교로 들어왔고, 형의 소식을 들은 형수도 바로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신앙생활을 하며, 매일 새벽 우리는 울면서 기도하고 예배했다. 나의 40일 금식기도가 끝날 쯤 형도 칠보산기도원으로 들어와 함께 40일을 금식하며, 예전 주님께 오른편과 왼편 최고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달라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고백했다. 우리 두 형제의 육체와 영혼을 다시 살리신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우리처럼 몸과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우리 형제를 사용하셨다. 

형은 서울 오곡교회를 재개척하여 평소 성격대로 목회하며 크게 부흥시키고, 야고보처럼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 품에 안기었다. 이 아이들이 다 깨진 가정에서 어떻게 자랄까? 생각되어 애잔하기만 하던 어린 세 딸은 부장판사 광림교회 권사부부로, 병원장 제천제일교회 권사부부로, 막내는 미국 버지니아UMC 목사부부로 자랑스러운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며,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맛있는 거나 해 먹이라던 청년이 다시 주신 생명으로 45년! 주님의 일을 마친 후 건강하게 정년은퇴를 맞는다. 2021년 4월 은퇴예식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이것은 마지막 교회로 섬긴 정동제일교회 성도들만을 위한 고백이 아니다.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난 45년 동안 한 하나님, 한 교회를 섬겼던 모든 성도님들께 드리는 고백이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목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2021년 5월 사랑하는 작은아버지 송기성 목사님 은퇴를 기념하며 조카 정임 올립니다.

songjoungim@gmail.com

05.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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