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 딸아이가 오랜만에 손자를 데리고 집에 방문했습니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손자가 온다고 집안 청소뿐 아니라 가전제품도 바꾸고 한바탕 집안 구석구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소파 옆에 있던 꽃 병들도 다 치우고 계단은 입구를 다 막았습니다. 아이들이 오기 전부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손주가 3살 2개월 사내아이라 거침없이 뛰어다니니 사고가 날 만한 것은 미리 막아두고 치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두 주간 머무르고 가는데 마치 2년을 살고 갈듯이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한 날은 아이들을 데리고 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손자 우유가 필요해서입니다. 손자를 카트에 앉히고 밀고 가는데 보는 것마다 만지고 싶어하고 담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 인형 코너를 지나는데 인형에 눈이 멈춰 움직이질 않습니다. 그걸 사달라고 엄마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딸아이는 “그게 꼭 갖고 싶어?” 물어보더니 두 말 않고 카트에 담아줍니다. 조금 지나가니 장난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패키지로 된 장난감 박스가 보기 좋아 보입니다. 손자는 그것을 원한다고 손짓을 하고 엄마를 부릅니다. 연신 엄마를 부르자 딸아이가 와서 “이거 사고 싶어?”하고 묻자 아이가 “원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것도 카트에 주워 담습니다. 제 마음 속에 ‘저렇게 거절 않고 원하는 데로 주워 담다가는 여기 통과도 하기 전에 카트가 가득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유를 사러 왔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니 쇼핑을 이렇게 하면 버는 돈을 어떻게 모으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혼자 가지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조금 지나 우유코너가 나오니 손자는 익숙한 모양의 우유를 선뜻 고릅니다. 딸은 내게 카트를 건네 달라며 밀고는 손자를 데리고 빵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서서 찬찬이 구경을 합니다. 그러자 손자가 컵 케익을 보더니 “자기가 케익을 좋아하니 먹고 싶다”고 합니다. 딸아이가 골라보라고 하니 하얀 크림이 덮여 있는 작은 케익을 고릅니다. 그러자 딸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아들에게 “오늘 이거 모두를 살 수 없어, 그러니 너가 가장 사고 싶은 걸 고르는 거야, 자 인형을 할 거야 장난감을 할 거야?”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얼른 장난감 상자를 선택합니다. 그러자 딸아이는 얼른 인형을 꺼내 내려놓고는 조금 전 상자에 담은 컵 케익을 보여주면서 “이걸 먹을 거야 장난감을 가질 거야?”하고 물으니 손주는 “케익을 너무 좋아한다”며 컵 케익을 택합니다. 그러자 “그럼 이 장난감은 내려놓고”라고 말하자 얼른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컵 케익 하나 담은 작은 박스를 두 손으로 잡고 좋아라 합니다. 아이는 컵 케익을 얻은 것이 마냥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들고 나갑니다. 두고가는 장난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 하염없이 엉뚱한 생각으로 사서 걱정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옛날 아이들을 키울 때 생각이 납니다. 슈퍼마켓이나 시장을 가면 아이들이 이것저것 사달라 요구할 때 소리를 치며 “네가 그런 게 왜 필요해”, “엄마 돈 없어,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왜 네 엄마는 아빠한테 널 보낸 다니?” 서로 핑계 대며 빈 주머니를 탓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딸아이와 손자의 쇼핑 모습을 보며 단 한 번 갈등이나 다툼 없이 쇼핑을 마치는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한 ‘거래의 기술’을 보았습니다. 거절하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카트에 담고 마지막에 그중 하나를 고르게 하다니, 앞서 쥐었던 수 십불, 수 백불 장난감을 2불50전 하는 컵 케익 하나로 해결하다니 생각도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엡 5:15-16) 지혜로워야 하기도 하겠으나, 궁극적으로 복음을 위해서도 지혜롭게 살아야 할(마 10:16)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외인들, 세상에 속한 자들을 대할 때도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골 4:5-6)고 가르칩니다. 결국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위치에 있든,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자리에서 든, 세상의 외인을 대하는 자리에서 든 지혜로 대처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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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