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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12)

위기의식 

 

전 세계가 위기의 늪에 잠겨있다. ‘코비드-19’가 시작된 지난 몇 개월 전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이 멈추어진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외부 출입과 여행이 극히 제한되고 있다. 집안에 갇혀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직장업무가 재택근무로 전환되었거나, 실업자의 숫자가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삶의 불편을 감수하고 조심스레 살아가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커져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와 사망자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코비드-19를 정복하려고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속한 시일에 성공할 것이란 확신을 하면서도 매우 늦어지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한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 누구도 분명한 모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자신의 의견이 ‘추측’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저 향후 사회는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상식선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3세기, 13세기, 그리고 20세기 초에도 전염병이 창궐한 바 있다. 각 시대마다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기에 우리에게 충분한 역사적 자료를 제공해주지만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다. 과거 사회와 자연 환경이 현재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위기의식이다. 현실을 속히 받아들이고 미래를 대비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위기 자체가 자연스레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위기를 만나 각성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때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동감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모이는 교회 

 

사회적 변화에 편승하여 교회의 모습도 변화되었다. 성도들이 자유롭게 교회에 모일 수 없게 되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초대교회 이후 줄곧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극심한 핍박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함께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신앙의 자유를 빼앗긴 경우이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하여 교회 모임이 유지되어왔다. 만일 이런 도구조차 없었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주일예배를 포함하여 각종 예배와 소그룹 모임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모임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발전될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점차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이미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면 서서히 확대될 것이다.  

이전과 같이 자유롭게 모여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는 인터넷 예배 또는 제한적으로 실시되는 예배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가 할 일이 있다. 교인이 흩어지지 않도록 모으는 일에 집중하는 일에 매진하면서도, 성도를 관리하는 차원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지금 교회를 위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신앙적 위기라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교회라 함은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로 인식되어왔다. “난 교회에 다닌다”라는 표현은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지는 “나는 신앙이 있다”라는 말로 대치된 것이다. 교회가 중심이 된 신앙생활이 지닌 긍정적인 면을 고려해 보자면 별 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예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받아들임으로, 성경적 교회관이 상실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였다. 교회 공동체에 속하고 미사에 참석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회론을 정립하였다. 자연히 교회는 더욱 조직화되었고 절대적인 교회 제도를 취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성도들의 삶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서유럽 전역에 모든 마을 중심에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섬기는 중요한 기관이 되었다. 

현대교회 성도들 중에는 과거 중세 시대와 유사한 교회 중심의 삶으로 만족해하는 경우가 있다. 나아가서 현대교회 역시 중세교회가 범한 중대한 과오, 즉 각 성도들의 신앙 상태와 경건한 삶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던 현실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주일성수를 생명처럼 여기고 있지만 실상 신앙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구 또는 무엇을 탓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단순히 교회 중심의 신앙의 맹점이 무엇인지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

 

주일이 되면 성도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교회에 출석하였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런 모습이 사라졌다. TV, 컴퓨터, 또는 휴대폰 앞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Zoom으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도 비쳐지기에 나름 신경을 쓰겠지만, 인터넷으로 송출되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경우는 매우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초기에는 예배를 드린 것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인데, 혹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마음을 드리는 예배”에서 그냥 “열심히 바라보는 예배”로 변화될 수 있기에 우려가 된다. 

현재는 인터넷 예배에 참석 여부를 알 수 없다. 예배를 중심하여 이루어졌던 신앙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주일예배에 빠지면 교회에서 즉각 연락이 와서, 미안해서라도 예배에 참석한다는 한 성도의 진솔한 나눔이 기억난다. 중세교회와 유사한 교회 중심의 신앙을 지닌 성도들처럼 매일의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훈련이 되지 않았다면, 현재 상황은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 이후로 교회가 심한 핍박과 고난의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성도들이 분명한 신앙 공동체 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또는 히브리서에 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배교의 위협을 포함한 신앙의 위기 속에서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복음이 중심된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 사이에 서로 격려하며 신앙을 다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 역사의 걸음마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어야 한다. 현재 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재차 확인해야 할 소중한 사실이다. 이것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했던 교회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들은 교회란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 이상의 모습,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중심된 신앙을 지닌 성도들이란 사실을 확신하였다. 

참된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곧 교회이다.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성화되며 그를 머리로 삼아 연합한 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지상 교회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있다. 교인이 되는 것은 매우 쉽다. 교회에 어느 정도 출석하면, 정식 교인이 된다. 세례를 받으면 공동의회에서 발언하고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교회의 직분을 받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그러기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여 교회의 멤버가 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진정한 신앙을 지닌 성도가 되는 것의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이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세교회처럼 교회 중심의 생활을 구현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 그가 흘리신 피로서 구원 받은 성도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 하신다. 그러므로 각 성도들이 알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했던 개혁된 교회의 모습은 한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함께 고백하고 동일한 소망을 지닌 활력이 넘치는 신앙 공동체였다. 

 

개혁된 교회 

 

교회의 개혁은 외부적으로 제도적이거나 물리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각 성도들이 개인의 신앙을 확인하고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코비드-19는 우리에게 잘못된 신앙의 옷을 벗어던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교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가나안 성도’ 즉 교회에 나가지 않는 성도가 많아질 것을 예상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가나안 성도’는 코비드-19보다 한참 오래전부터 생겨난 현상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신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유지되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라도 ‘가나안 성도’의 모습은 절대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접하는 교회도 겸손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과 지도자들이라면, 과연 현재 본인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 공동체’인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혹시 성경의 진리보다 교회의 전통이 더욱 중요시 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적 생각이 큰 힘을 발휘하고, 성령의 교통하게 하심보다 정치적 인간관계로 얽혀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각 성도들의 성결과 신앙적 성숙보다 교회가 더욱 커지고 힘은 갖는 것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개혁 방법과 과정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자들이 진땀을 흘리고 때로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패한 인간의 모습이 교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하나님께서 코비드-19라는 도구를 통해 교회를 개혁하고 계신다. 각 성도의 신앙이 중시되고, 가정을 신앙 교육과 실천의 장으로 변화시키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시작하신 이 개혁에 순종하며 동참해야 한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하나님의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covenantcho@yahoo.com

06.0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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