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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20)

교회사가 가르친다!(7)-대중문화의 횡포

대중문화

 

대중문화란 산업화를 통해 생활수준이 향상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본논리 속에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상품문화이다. 과거 대부분의 사회에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함께 공존했다. 예를 들자면,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연주회 등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자들의 전유물이며, 민요와 민속놀이 등은 주로 서민들이 애호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사회 계급이 분명한 시대와 지역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대중문화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을 지니게 되었다. 21세기 사회에 생겨난 많은 변화 중 하나이다. 현재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pop 열풍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한류를 주도하는 연예인들은 전 세계에 많은 팬을 소유한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이 소속된 대형기획사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중문화는 이런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만 접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Neflex를 통해 어느 곳에서나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유행을 주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수시로 접할 수 있다. 유명가수의 새 노래가 Youtube에 발표되면 곧 조회 수가 수억에 달하기도 한다. 예술, TV, 라디오, 신문, 영화, 광고, 출판, 스포츠, 게임 등 대중과 친숙한 문화의 종류가 다양하다. 

거듭난 성도들도 대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홍수와 같이 쏟아지는 대중문화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적극적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으려 해도 대중문화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굴레 안에서 신앙을 가진 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변화된 자로 살아가야 한다.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하여 초대교회에 나타난 수도사들처럼 광야와 들을 찾아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1). 거듭난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기본 태도를 요약한 말씀이다. 그 핵심은 구별된 삶이다. 바로 지금이 이 명령을 실천해야 할 때이다. 성과 폭력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소비자들의 본능적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대중문화의 위험성 때문이다. 시장성을 높이기 위해 대중문화가 더욱 선정적이고 잔인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모든 대중문화가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거나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담겨진 예술과 사고방식도 존재한다. 그러나 세속적 대중문화와 비교할 때 그 영향력을 현저히 약한 것이 현실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동화되지 말라는 명령이다.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 본받게 된다는 것이다.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구별된 자로 살아갈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하신 이유도 이와 같다. 아무쪼록 대중문화를 통해 받는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추세이다. 

 

문화와 기독교 

 

간혹 근거 없이 세상의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하여 무조건 세상의 것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흑백논리를 주장하는 자를 만나게 된다. 이는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일반에 대한 무지가 낳은 산물이다. 문화는 대중의 생활양식이며 활동의 총제이다. 하나님께서도 대중문화를 피해서 무조건 귀 막고 눈 감고 살라고 주문하지 않으신다.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고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즉, 성도는 반드시 대중문화 가운데 수용할 것과 거부할 것에 대한 판단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이토록 거세게 밀어닥치는 세속적 대중문화의 힘을 저항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에 답이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1).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관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동시에 문화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문화는 결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집단의 소유가 아니다. 문화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17,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문화가 인간 본성의 순화과정이며 더욱 개화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문주의적 이상이 담겨진 진보적 사고에 입각하여 예술, 음악, 문학 등의 교육을 통해 더욱 인간답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문화를 개인이 아닌 특정집단이 소유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 이들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인간이 문화변혁의 주체가 되어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세속적 대중문화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얻기 위해 반드시 숙지해야 할 것이 있다. 문화와 종교가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문화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인간 활동의 결과물로 역사의 한 부분에 드러날 뿐이다. 인간에게는 문화보다 종교가 훨씬 본질적이다. 종교가 문화에 예속될 수 없으며 도리어 종교를 토대로 문화가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견해이다. 

원시 종교는 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종교의식이 중심된 문화를 중시했다. 그들에게 문화는 인간의 산물이었다. 이와 달리 기독교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종교이다. 사회가 처한 상황이 바뀌고 따라서 문화와 풍습이 변하여도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중시하고 순종하는 삶을 요구한다. 문화의 영향력에 끌려가는 것은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화에 대한 성도의 대응방법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성경과 문화  

 

성경은 우리가 숙지해야 할 문화에 분명한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중심된 문화명령이 창세기 1장 26-28절에 기록되어 있다. 문화는 인간이 구상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문화를 조성하라고 피조물인 인간에게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창조 이후 계속하여 직접 세상의 일을 다스리시는 섭리사역을 쉬지 않으셨다. 문화는 세상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이 소중한 일을 인간에게 맡기시면서 자신의 뜻을 따라 세상을 돌볼 것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 큰 문제가 생겼다. 인간의 전적타락이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인간이 문화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과 목적을 선택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문화에는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문화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대하셨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이 되었다. 이로 인해 대중문화를 포함한 모든 세속문화는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놓인 인간의 자율적 행동으로 생겨난 산물이 되었다. 악한 영은 지속적으로 세속문화를 하나님을 거부하고 도전하는 도구로 사용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타락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향하도록 하였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이런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구속을 계획하시고 그대로 실행하셨다. 십자가 복음의 초점은 영혼구원에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하여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새로운 관계에서 문화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회복되는 것이 포함된다. 영생의 약속을 받은 뒤, 타락한 문화의 회복을 위한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뤄지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선교와 전도는 문화적 접촉을 중시한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으로 요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는 문화 역시 회복되어야 할 대상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복음이 확장되는 현장마다 문화의 갈등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복음은 부패된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국교회와 문화 

 

초기 한국 선교사들은 복음전파를 통한 영혼구원을 중시하였다. 그들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의 산물인 고전적 엄숙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자들이었다. 자연스레 경건한 신앙을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그들의 사역을 통해 서양문화가 소개되었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능을 소개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의료시설과 고아원시설을 갖추어놓고 궁핍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또한 고아원 사역, 서양음악 교육, 그리고 한글 발굴 등 다방면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접촉점이 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이 지녔던 문화를 한국 땅에 이식시키려는 목적 때문은 아니었다. 복음을 받아들이던 조선인들의 보다 높은 질의 삶을 살기를 바라던 선한 의도로 인해 가능하였다. 

아무쪼록 선교사들은 자연스레 서양문화를 소개하는 다리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혀 생소하였던 십자가 복음과 친숙해질 수 있던 것처럼, 성도들은 선교사로부터 소개받은 서구문화를 넓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도덕주의에 익숙한 선교사들은 도박, 아편, 음주, 흡연, 축첩 등이 기독교 윤리정신에 어긋남을 지적하고 이를 금지시켰다. 그 당시 기독교 신앙은 보편적 문화를 역행하는 결단을 요구하였다. 미숙한 한국교회가 무비판적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와 공산주의 치하를 지나면서 서서히 개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의식을 지닌 자들 중에 기독교 신앙을 지닌 자들이 많았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국가적 어려움에 동참하며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도록 격려하였다. 그 당시 교회가 사회를 향해 끼친 영향력은 정치적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이뤄졌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교회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문화적 흥미를 제공하는 장소였다.  교회에 가면 재미있는 서양 노래를 배우고 천로역정 등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름성경학교 기간에 무료로 활동영화를 시청할 수 있었으며, 간혹 칼라영화를 상영하면 남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예배당이 가득 찼다. 상품으로 받은 미제 연필은 친구들에게 큰 자랑거리였다. 공짜 선물을 받으려고 일 년에 한두 번만 교회에 출석하는 아이들도 허다했다. 

 

기독교 문화 

 

대한민국은 1970년대 이후 성공적인 경제개발로 인해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문화와 한국교회의 관계 사이에 자명한 현상이 드러났다. 교회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축소되면서, 사회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교회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대중문화가 극도로 발전된 상황 속에서, 교회에 대한 문화적 기대감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세상 문화는 교회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대중문화는 엄청난 힘을 지닌 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는 한국교회가 초창기부터 비판 없이 서구문화를 수용하는데 급급하였다는 것이다. 서양문화 자체가 부정적 기능을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줄곧 신앙과 문화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였다. 성도들은 매일 경험하는 문화를 어떠한 기준과 자세로 대할 것인지 제대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자신의 신앙에 따라 알아서 처리하는 수준에 머물러왔다.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세속문화가 다양해지고 거센 힘을 지니게 되면서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고 있다. 

우리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수 없다면 세속적 대중문화의 횡포가 주는 영적 피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나님이 주신 문화명령을 재확인해야 한다.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보다 적극적으로 기독교문화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일반문화와 기독교문화에 대한 실천적 지식을 넓혀가도록 해야 한다. 각 성도들이 역시 문화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필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또한 교회 안과 밖에서 기독교문화에 종사하는 자들을 격려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만한 문화물 제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현대교회가 다음 세대에게 건전한 문화풍토를 남겨야 하는 숙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기독교문화 창달을 현대교회의 신앙적 사역의 범주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covenantcho@yahoo.com

09.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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