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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생일

곧 생일이 돌아오는 딸이 함께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여름 내내 집에서 일하면서 주어진 휴가도 안 쓴 채 가을학기를 맞은 참이어서 나에게도 반가운 제안이었다. 가까운 산타바바라로 가서 하루 자고오기로 했다. 코비드19 때문에 어디 간다는 것도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어서 오랜만의 짧은 여행이었다.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싸서 마치 소풍가는 마음으로 LA도심을 빠져 나갔다. 산타바바라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걸어간 바다는 바람은 시원했지만 산불로 인해서 하늘이 맑지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사람들로 북적대었을 시내도 코비드19으로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비즈니스를 닫은 곳들이 눈에 띄었다. 찻길을 막고 길에 테이블을 차려 놓은 야외식당에는 그래도 쓸쓸하지 않을 만큼의 사람들이 군데군데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오랜만에 웨이터의 서비스를 받으며 생일축하 저녁을 먹었다.

아무래도 바닷가여서 그랬는지 밤이 되니 좀 추운 것 같아서 히터를 키고 자는 바람에 공기가 답답해서 잠을 설쳤다. 아침에 부둣가 생선을 파는 집에 전화를 해보니 마침 성게가 들어왔다고 해서 부지런히 걸어가서 성게와 홍합을 사왔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근처의 작은 farmers market으로 향했다. 우연히 걷게 된 farmers market 동네에 위치한 바다 위쪽의 산책로가 너무 좋았다. 하나님께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청나게 큰 저택들이 자리 잡은 동네였는데 길 가에 피어있는 다양한 색의 들꽃들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오랜 만에 일상을 벗어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자기 생일인데 엄마를 생각해서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한 딸이 고마웠다. 생각해보니 성게를 좋아하는 것도 엄마이고 farmers market을 좋아하는 것도 엄마인데 딸 생일 축하한다고 하고는 철 없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딸이 함께 해준 것 같았다.

딸은 나이가 들면서 엄마에게 친구가 된다고 한다. 우리 딸도 그런 것 같다. 때로는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마음을 서운하게 하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늘 엄마를 챙긴다. 학교 일로 답답하거나 짜증이 날 때도 내가 속마음을 털어 놓는 사람은 딸이다. 어떨 때는 나를 위로해주지만 때로는 내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래서 딸이 고맙다. 여덟 살 때 아빠를 잃은 아픔이 딸에게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돌봄의 바탕을 갖게 한 것 같아서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다. 어려운 시간이 성숙의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이후 집을 떠나 늦게 다시 전공을 바꾸는 바람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공부를 마친 딸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감사하게도 집에서 10분 거리에서 일을 하게 되어서 같이 지내게 된 것이 5년째다. 나는 다시 딸 도우미 역할을 자원해서 바쁘게 출근하는 딸을 위해서 간단한 아침과 점심 식사를 싸주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요즈음 같이 집에서 일을 해야 하고 사회적 교류가 없는 때에 딸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딸아이는 성격이 활달하고 명랑해서 친구들은 많은데 아직도 맞는 짝을 못 찾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매년 딸 생일이 돌아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엄마 마음은 함께 가정을 이룰 좋은 사람을 좀 만났으면 하는데 그 바램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우리 딸을 잘 아시고 사랑하시므로 가장 적합한 때에 가장 적합한 만남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정답을 알면서도 엄마 마음은 쉽게 초조해진다. 어쩌면 동료교수가 말한 대로 엄마와 딸이 상호의존적인 관계여서 딸이 더 사람 만나는 일에 무심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딸이 엄마에게 아무리 좋은 친구라 할지라도 어디엔가 숨어 있는 청년이 나타나서 내년 생일에는 딸이 엄마가 아닌 남자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lpyun@apu.edu

09.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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