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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프리즘 안에서도 예수님 드러나게 해야 한다!

TGC, 크리스 베일 교수의 신간서평 통해 SNS가 주는 허상에서 크리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답을 알고 있다. 휴대 전화를 들고 BAE(연인이나 절친)에서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인스타그램 알림을 살펴보면 밈(Meme, 인터넷에서 시작된 유행으로 커뮤니티 또는 SNS까지 퍼져나간 여러 2차 창작물이나 패러디물)이 하루를 더 좋게 만든다. 눈치 채기도 전에 벌써 한 시간이 지났고 이제 늦었다.

듀크대학교의 사회학교수 크리스 베일(Chris Bail)이 쓴 ‘소셜 미디어 프리즘 깨기: 사회의 플랫폼을 어떻게 해야 덜 양극화시킬까(Breaking the Social Media Prism: How to Make Our Platforms Less Polarizing)’는 이러한 소셜 미디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름길을 제공해준다. 이건 종교서적이 아니라 사회과학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또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소비하는 게 옳은지에 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게다가 저자가 제시한 최종 원칙 중 많은 부분이 기독교 윤리와 실질적으로 일치한다(Can Social Media Foster Persuasion (Not Polarization).

 

소셜 미디어는 극단주의를 조장하고 온건한 사람을 침묵시킨다. 좌파나 우파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또는 문화적 극단에서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증폭하고 강화하는 한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억누른다. 

 

소셜 미디어는 극단주의를 조장한다

 

베일은 ‘극단주의자’와 ‘온건주의자’를 객관적으로 정의한다. 사회학자는 미국 대중의 정치적, 문화적 관점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베일이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가 관찰하는 것은 숫자이다. 그가 극단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가장 보수적이거나 가장 진보적인 5-10%에 속한다. 

베일은 모든 트위터 사용자의 6%가 모든 트윗의 20%를, 그리고 국가 정치를 언급하는 모든 트윗의 70%를 생성하며, 이 6%가 주로 극단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건 그리 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책이 깨달음을 주는 중요한 지점은 인터넷에서 시끄럽고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많은 사람들에 관한 연구이다. 

첫 번째로, 그의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n)이 “부패한 정체성”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실제 생활에서 그들은 낙오자인 경우가 흔하다. 극단주의자들은 “종종 오프라인 생활(실제 생활)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또한 많은 경우에 소외를 경험한다.

두 번째로, 그들이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페르소나는 많은 경우에 오프라인 속 성격과는 많이 다르다. 온라인에서 그들은 훨씬 더 공격적이다.

세 번째로, 그들은 일반적으로 (5-10%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극단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다. 넓은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위치한 작은 극단주의자나 주변부로 간주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쾌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숫자를 과장할 뿐 아니라 다른 극단의 힘과 숫자도 같이 과장한다. 이 방법을 통해서 양 극단이라는 스펙트럼의 이미지를 제거하고, 대신 두 개의 군대가 싸우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중간에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소수의 겁쟁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극단주의자들은 자기네 진영에 속한 온건파에 대한 공격을 즐긴다. 온건파를 비원칙적인 타협자나 상대방의 은밀한 구성원으로 공격함으로써 그들은 문화를 양 극단 스펙트럼이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주류의 선과 악 사이의 다가오는 전투로 묘사한다. 그렇게 함으로 권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소셜 미디어는 극단주의자들이 현실과 전혀 다른 자아를 관리함으로, 심각하게 왜곡된 사회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베일은 소셜 미디어를 개인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왜곡하는 “프리즘”이라고 부른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온건한 사람들을 침묵시킨다

 

대다수가 가진 정치적, 문화적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온건파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극단주의를 조장하는 것 외에도 소셜 미디어는 이런 온건파를 침묵시킨다. 어떻게 하는 걸까? 

첫 번째로, 온건파는 더 큰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훨씬 더 많은 대면 커뮤니티를 가진, 강력한 오프라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극단주의자들은 온라인에서만 지위와 소속감을 얻을 수 있지만 온건주의자들은 굳이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말을 해서 자신의 경력이나 관계를 위태롭게 할지도 모를 행위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극단주의자의 취약한 정체성은 인터넷에서 오히려 많은 부분 은폐되지만, 온건주의자의 정체성은 정반대로 위협받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소셜 미디어는 왜곡된 프리즘이기 때문에 온건파는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베일은 오히려 “잘못된 양극화”(“자신과 다른 정당의 이념적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경향”)가 크게 증가했지만 정치적 견해의 분포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통계적으로 정치적 온건파(또는 “자유주의”와 “보수적” 견해를 혼합한 사람들)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세 번째로, 앞에서 살펴보았듯 온건파는 종종 엄청난 비판의 공격을 받는다.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을 지지하는 정치적 현실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극단주의자는 그들을 공격해야 한다. 중도파는 자신의 견해가 ‘악의적 글 읽기 기술’(가능한 한 최악의 방식으로 글을 해석하는 것)에 의해서 또는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전혀 소유하지도 않는 사회적 위치나 정체성을 부여받음으로써 공격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정말로 백인 우월주의자 또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네요.” 또는 “지금 당신의 처지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등등이다. 

베일이 제시하는 것은 대안이다. 정체성이 아닌 아이디어가 실제로 토론될 수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잠정적인 아이디어다. 그의 아이디어에는 많은 장점이 있으며 우리는 베일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야 한다. 기본 취지는 다음과 같다. 

“좋아요”를 없애고 대신 해당 포스트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소구하는(appealing) 가치를 계산하는, 그래서 그 가치가 큰 포스트에는 더 큰 보상이 따라가는 식의 미터기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 진영의 사람이 해당 포스팅에 동의하는 수준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플랫폼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양측이 모두 다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게시물에 대해 보상과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그의 제안 중 일부는 크리스천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왜곡에 영향 받지 않으면서 종교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가능할 거 같다. 

베일은 소셜 미디어에서 발견하는 양극화라기보다는 설득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믿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1. 길게 그리고 집중해서 들어라

 

야고보서 1장 19절을 보자.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즉각적으로 토론에 참여하지 말라. 팔로우하고 잠시 들으라.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가장 잘 구성된 것을 보려고 최선을 다하고 그들이 말하는 내용에서 가치 있는 것을 찾도록 하라.

 

2. 그들이 쓰는 단어와 권위를 활용하라

 

사도행전 17장 23절과 28절을 참조하라. 사도행전 17장에서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에게 연설하는 바울이 인용하는 사상가는 다름 아니라 그들이 따르는 에피메니데스와 아라투스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복음서 저자 또한 헬라철학용어인 로고스를 사용한다.

 

3. 비판할 때에도 그들이 가진 세계관에서 동의할 부분은 동의하라 

 

사도행전 17장 29절과 고린도전서1장 22-24절을 참고하라. “당신이 설득하려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상대도 공감하는”(110쪽) 논쟁을 진행하라. “나는 옳고 너는 다 틀렸어”라고 말하기보다, “당신은 이것을 믿습니까? 좋아요. 근데 이런 것도 믿는다고요? 말이 되는 거 같네요”라고 말하라. 

바울이 사도행전 17장 29절에서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하라. “너희 철학자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가 만든 우상의 경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가 유대인과 그리스인 모두에게 복음을 어떻게 제시했는지도 살펴보라. 그들의 문화적 목표를 확인하고, 또 그들이 추구하는 우상숭배방식에 도전하고 그리고 나서야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내면이 가진 가장 깊은 문화적 열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방향을 바꿨다. 

 

소셜 미디어는 극단주의 조장하고 온건파는 침묵케 해

담대히 믿음 증거하며 겸손히 비평 듣는 공개담론까지 참여해야

 

4. 자기 자신에게 비판적이어야 한다

 

마태복음 3장 2절에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말한다. 당신이나 당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집단의 모든 주장과 행동을 다 옹호하지 말라.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

 

5. 사상과 정체성 사이의 고리를 느슨하게 유지하라

 

디모데후서 2장 24-26절을 참조하라. 당신과 다른 생각이 당신이란 존재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상을 정체성에 포함시키지 말라. 우리는 지금 소셜 미디어 프리즘으로 정체성을 위조함으로써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2)라는 성경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결론으로, 크리스천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이 보여주는 특별한 사랑을 통해서 이 세상은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오셨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요17;1; 요일). 그러나 소셜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예수님을 드러내는 특별한 사랑을 보여줌으로 세상과 전혀 다른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우리 크리스천이 지금 처한 처지가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도 일부 크리스천이라도 인터넷에서 그들의 사랑 때문에 유명해질 수는 없을까?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담대하게 증거 하는 동시에 신중하고 겸손하게 비평가의 말을 듣는 공개 담론이 가능한 새로운 공간까지 재건하는 데에 과연 참여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다. 그럼 거기에 당신도 포함될까?

09.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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