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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개혁주의신학의 역사 (1)

서론.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의 개념규정

 

개혁주의(Reformed)란 무엇인가?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 말을 즉각적으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생각할 것이다.

유대교에서 개혁파(Reformed in Judaism)는 정통파 유대교(Orthodox Judaism)와 구별된, 정통적 유대주의 교리, 율법, 그리고 생활 규범들을 바꾸어 현대적인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상황에 맞게 수정한 교파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신학의 범위 내에서 개혁주의를 규정하는데, 이것도 그 의미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고, 매우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개혁(Reformed) 신학이라고 하면 그 기원을 칼빈의 신학과 칼빈의 사상에 근거한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개혁주의라고 하면 화란과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개혁신학이 있고, 영국으로부터 온 개혁신학의 전통, 또한 스코틀랜드에서 온 개혁신학이 있다.

이 글은 미국에서 스스로 개혁주의라고 칭하는 모든 신학자와 신학을 다루지 아니한다. 칼빈주의라고 말하지만 칼빈주의에 대한 개념규정이 매우 다양하고, 그 해석도 큰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정통주의자들도 그들의 신학을 개혁신학이라고 칭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개혁주의의 범위는 “칼빈주의 정통적인 개혁신학”이다. 필자가 말하는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는 적어도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믿는 신학자와 교회들을 의미하는 개혁신학이다.

 

1. 미국 초기의 개혁주의는 청교도에서 시작된다

 

미국 초기에 영국 국교인(Church of England)들이 버지니아는 정착했고, 뉴욕과 뉴저지에는 화란 개혁파(Dutch Reformed) 교인들이 정착했고, 나중에 뉴저지에서는 스코틀랜드장로교 교인들이 정착했다. 물론 영국의 청교도들은 뉴잉글랜드에 정착했다. 이들의 대부분분 초기 정착인들은 칼빈주의,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가진 자들이었다.

초기 하버드대학의 신학교육의 교과서는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의 “신학의 정수”(The Marrow of Theology)이었다. 물론 그들은 라틴어본을 읽었다.

에임스가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공부하면서 교수인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이며,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에임스는 또한 논리학에서 프랑스 칼빈주의 위그노(Calvinist Huguenot) 인문학자 및 논리학자인 페트루스 라무스(Petrus Ramus)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에임스의 제자는 요한 코테이우스(Johannes Cocceius)이며 그는 언약신학에 대단히 중요한 글을 남겼다.

나중에 조나단 에드워드는 예일에서 공부하면서 윌리엄 에임스의 “신학의 정수>” 라틴어 책을 거의 암기했다고 한다.

초기 미국에 정착인 사람들은 대부분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에 투절한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칼빈주의 사상으로 개인의 삶,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를 세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자들이다. 미국의 초기에는 역사상 가장 분명한 개혁주의 신학과 삶을 실천한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그들은 그 신학에 기초하여 교회와 사회를 건설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언약(covenan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언약적인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언약적인 축복을 받을 것이며(covenant blessings), 만약 불순종하면 언약적인 저주(covenant curse)를 받을 것이라는 개념에 근거로 언약을 강조했다. 

존 윈드롭(John Winthrop)의 선상설교(sermon on board)에서 “왜 우리가 영국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 새로운 세계에 왔는가?” 대답은 “A city on a Hill, 언덕위에 세워진 마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것은 마태복음 5:14,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개념을 인용한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는 더 이상 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모델 교회와 국가(사회)를 건설하여 모국 영국교회와 영국인들이 “이 교회와 이 사회를 보라, 얼마나 성경적으로 복된 교회인가, 여러분들도 이렇게 교회와 국가를 세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비전을 가지고 신세계로 왔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이 미국에 온 첫째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회와 국가를 세우기 위함”이다.  청교도는 “사회적 언약”(societal covenant)을 매우 강조했다. 저들은 사회적 혹은 공동체적인 거룩함(Corporate Holiness )를 강조했다. 그러므로 처음 매사추세츠 주 정부(the Great and General Court of Massachusetts)는 교회의 회원권(세례교인) 가진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시민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했다. 거듭난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정부의 관리가 되었고, 그들이 사회언약에 근거해서 사명을 가지고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관리가 국가(사회)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공동체를 세우는 것의 주체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선출된 관리들은 시민들이 하나님을 잘 경외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시민들은 선출된 관리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정부의 관리들이 타락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왜냐하면 저들에게는 권력과 힘이 주어져있기 때문에 더욱 타락하고 부패한 품성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사회 지도자들의 타락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존 카튼은 “국가의 권력자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권력의 한계를 알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 공동체가 안전하다”고 말했다. 

1639년에 만들어진 매사추세츠 법(The Massachusetts Body of Liberties)은 매사추세츠의 법으로 General Court에서 받아들여졌는데 이 법에는 시민의 권리는 최대로 보장하고, 정부의 권력의 힘은 최소한 시켰다. 이것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그리고 투표를 통해 정부의 권력자들을 선출했으며, 언제나 하나님께서 규정한 사회에 대한 언약을 어길 경우에는 파면할 수 있는 권한이 투표권자들인 시민들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이 언약을 실제적으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오직 중생한 성도들에게 주었다.

이것은 영국에서의 경험 때문이며, 영국에서 개인이 신앙생활을 바로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바른 교회가 되어야 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세워져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저들이 영국에서 아무리 좋은 교회를 세워도 왕이 바뀌어 캐톨릭교도 왕이 등극하면 (메리 여왕처럼), 하루아침에 교회가 문을 닫게 되고, 많은 성도들이 희생을 당했다. 그러므로 저들은 성경에 입각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회를 세우는 것이 청교도들의 꿈과 비전이었다.

초기 뉴잉글랜드 지도자들은 신명기를 많이 인용했다. 저들은 구약의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정착한 사건을 영국교회를 떠나 신대륙에 정착하는 것과 비교한 경우들이 많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압 평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하여 가나안 땅에서 언약의 백성답게 살 것을 서약했고,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언약에 합당한 사회를 건설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회에 복을 주실 것을 믿었다(covenant blessings). 그러나 그들이 이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언약의 파괴자로서 언약의 저주(covenant curse)를 받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언약, covenant 개념은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개인, 교회,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철학이며, 신념이며, 저들의 문화가 되었다. 이러한 언약 사상은 정통적인 칼빈주의 및 개혁신학에 근거한다.

초기(17세기) 뉴잉글랜드 정착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토마스 후크(Thomas Hooker of Connecticut)와 존 코튼(John Cotton of Boston)이다. 이들은 모두 1633년에 같은 배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토마스 후크의 “A True Sight of Sin”과 존 코튼의 “Purchasing Christ”는 신대륙의 초기 식민지의 청교도 삶의 방식(Puritan Way)에 큰 영향을 끼쳤다. 둘 다 모두 훌륭한 신학자, 설교가, 지도자들이지만 그러나 이 두 신학자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은혜언약(the covenant of grace)을 설명하면서, 존 코튼은 택한 자들의 심령 속에서 성령의 직접 사역을 강조했고, 토마스 후크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 속에 있는 거룩한 삶을 강조했다. 이 두 사람의 신학사상은 앞으로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KHL0206@gmail.com

01.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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