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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Vision Trip

내게 베트남은 어떤 나라였는가? 무서우면서도 애잔한 나라가 아닌가?

언뜻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화 “람보(Rambo)2”가 생각났다. 내 머리 속에는 주인공인 실베스터 스텔론이 정글 속에서 초인적으로 싸운 장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나온 베트콩들은 독하고 공포스러운 대상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나의 중, 고교 시절에 일어났다. 그 때 난 파병된 국군장병들을 위해 위문편지를 썼었다. 당시 용맹스런 우리 군인들의 승전보를 들으며 얼마나 애국심을 고취했었던가? 

1975년 사이공이 북 베트콩에 함락된 후 언4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언제부터인가 난 이 땅을 직접 밟아보고 싶었다. 전쟁후의 베트남은 어떻게 변했을까? 차일피일 방문 기회를 미루다 이번에 작심하고 나섰다. 마침 호치민 시에서 우리 단체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평양을 건너 어렵게 가는 마당에 베트남을 다양하게 보고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식일정 외에 개인 일정을 추가 하였다. 물론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해서도 미리 리서치를 하였다.

 

1. 첫 인상과 느낌

 

5월 20일 오후 2시 비행기는 수도인 하노이 공항에 안착했다. 서울에서 출발한지 4시간 만이었다. 여기는 지난 2월 28일 2차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었다. 초행길이라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다. 공항 관리자는 얼굴한번 흘겨보고 아무 말 없이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짐을 찾은 후 처음 한 일은 환전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의 화폐는 단위가 높았다. 1$=23,400 Dong이다. 300USD을 환전하니 7,020,000VND 되었다. 갑자기 백만장자(百萬長者, millionaire)가 된 기분이었다. 화폐 단위가 너무 커 감이 잡히지 않았다. 드디어 대합실을 나왔다. 막상 밖으로 나오니 대지의 여열이 확 밀어 닥쳐다. 

여기가 베트남인가? 난 마중나온 하노이 지부장 이 선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시내를 가로질러 갔다. 도로 주변의 신축되고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차량사이로 많은 오토바이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 부장댁에 도착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아무리 멋진 곳이라도 지인인 없다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질 것인가? 이 사모는 손님이랍시고 내가 묵을 방에 에어컨과 선풍기까지 켜놓았다. 땀으로 흠뻑 젓은 내게는 그것들이 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눅눅하고 더운 아열대 기후 속에서 잘 적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느꼈다.

 

2. 호치민 기념관

 

호치민은 베트남의 국부이다. 그의 시신이 중국의 모택동처럼 방부처리 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고 재를 3등분하여 도자기 상자에 담아 북부, 중부, 남부에 뿌려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러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마도 후대들은 그를 놓고 싶지 아니해서 일 것이다. 나는 불과 5m 거리에서 누워있는 그를 보았다. 왜 베트남 사람들은 호치민을 이토록 못 잊어할까? 

그는 일편단심 외세로부터 베트남을 독립시키기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 생사를 넘나든 죽을 고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막힌 담을 헐고 나아갔다. 또한 그는 베트남 인민들을 사랑했으며 검소했다. 일식 3찬을 고집했으며 전용 외제 승용차 있었지만 잘 타지 아니했다. 그는 베트남 통일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런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그 나이 79세가 되던 1969년 9월 2일이었다. 비록 그는 갔지만 그의 애국정신과 삶의 방식은 여전히 베트남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3. 하롱베이의 신비함

 

할롱만은 베트남 북부, 꽝닌 성 통킹만 북서부에 있는 만의 명칭이며, 크고 작은 3,000개의 기암괴석과 섬들이 존재한다. 1994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바다위에 작은 돌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어떤 돌산에는 거대한 석류 동굴이 있었다. 돌산을 끼고 돌아가면 큰 호수 같은 바다가 있다. 이곳은 이마가 달을 듯 말 듯한 동굴을 지나야 갈 수 있다. 사방이 돌산들로 막혀있어 파도도 없다. 그 바다호수는 아마도 야구장 10정도 되리라 생각한다. 물이 고여 있기에 파란 이끼들이 많았다. 

여행 온 사람들은 저마다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돌아오는 배 갑판위에서 사람들은 의자에 앉거나 간이침대에 누워 저녁노을을 보았다. 물새들이 떼 지어 돌아다니고 저녁노을이 붉게 들어가고 있었다. 서늘한 맞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여기는 베트남 제1의 관광명소이다.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날려버린 신비로운 곳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선배 목사님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하롱베이를 다녀오라”고 했던 권면이 생각났다. 이제야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

 

4. 다낭 일대에서의 여정

 

다낭은 베트남의 중부도시로서 최고의 휴양지였다. 바다와 강을 낀 천연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룸메이트인 A 선교사의 권유로 해변가에 갔다. 5시 정도 아직

미명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 바다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이른 아침과 오후 늦게 주로 일을 한다. 낮에는 태양빛이 따가워 11-1시 까지는 오침을 한다는 것이다. 다 사는

법이 있다. 입향순속(入鄕循俗)이란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入鄕) 그 풍속을 따른다(循俗)는 이 성어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란 서양 격언과 의미가 같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40분 정도 가면 호이안 시가 나온다. 그곳은 아직 개발되지 않는 베트남의 전통마을이다. 토속음식과 차 각종 수공제품들이 도로변에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강가에는 새우잡이를 위한 작은 코코넛 배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배는 원래 새우잡이가 목적이었다. 허나 관광객이 몰려옴으로 이제는 “새우보다 사람을 잡으려 다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새우잡이 해봐야 얼마나 수익이 있겠는가? 밤에는 작은 마을이 불야성을 이루며 온통 야시장으로 변했다. 그야말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살거리(Shopping)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5. 호치민 시의 여정

 

5월 27일 정오에 이곳에 왔다. 느낌이 북부나 중부보다 훨씬 후덥지근하다. 북부 하노이가 정치도시라면 중부 다낭은 휴양도시 그리고 남부 호치민은 상업도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북부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구식과 신식 건물들이 섞여 있었다. 젊은 청년들의 오토바이 부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어떻게 날마다 저 많은 매연을 마시며 살 수 있단 말인가?

호치민 시에서 약 3시간 버스로 달리니 그 유명한 땅굴이 나왔다. 베트남은 근 20년간 프랑스,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저들 나름의 전술전략을 택했다. 그것은 땅굴을 도처에 파 숨고 기습작전을 벌인 것이었다. 밀림 속의 땅굴은 체구가 큰 서구인이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곳은 엄청난 폭탄을 투하해도 별로 효력이 없는 곳이었다. 

메콩강(Mekong)은 하노이에서 역시 3시간 거리에 있었다. 이 강은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며 10번째로 유수량이 많은 강이다. 길이는 약 4,350km이다. 중국 칭하이 성에서 발원하여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이 강의 끝인 베트남에서는 삼각지를 이루고 있다. 물색은 중국의 황하 강처럼 누렇기 그지없었다. 메콩강 주변에는 수상가옥들이 있었다. 인류의 4대 문명이 강을 끼고 발원하지 않았는가? 이 강은 동남아 7천만의 젓줄인 것이다.

 

맺음 말

 

2주간의 짧지 않는 여정이 끝났다. 가는 곳마다 넘치는 물과 초목과 오토바이를 탄 청년들이 눈에 들어 왔다. 베트남이 어디로 갈 것인가? 외형적으로 사회주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개혁개방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상제례를 중시하며 사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젊은이들에게는 전쟁으로 인한 과거 역사에 별로 메이지 않는 것 같았다. 과거는 과거로 끝났다고 여기는 것이다. 

저들은 매우 진취적이다. 그것은 강한 승부기질이 속도감 있게 연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만일 아직도 이 나라가 우리 한반도처럼 남북으로 나뉘어 이념과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국토와 민족이 하나 되어 비상하는 모습에 부러운 마음도 든다. 

우리 대한민국은 언제나 하나가 될까? 원컨대 이제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경제나 군비확장이 아니다. 복음이다. 난 선교 베트남을 생각하면서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았다. 비록 지금 1% 크리스천이지만 머지않아 10%로 부흥하지 않을 까 싶다. 그러면 선교동반자로서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히말라야 산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축복의 기도

 

6월 2일 밤 11시30분 호치민 국제공항을 이룩했다. 시야에 아름다운 불빛을 켠 호치민 시가 들어왔다. 이렇게 평화롭고 역동적인 곳이 불과 반세기 전에 전쟁으로 핏빛이었다는 것에 실감이 가지 않았다. 일시에 보름간의 피로가 몰려왔다. 조용히 눈을 감고 탄원을 하였다. “주님! 이 땅을 기름부어 주옵소서. 상처난 영혼들 만져주옵소서. 거리를 활보하는 저 많은 오토바이 청년들에게 십자가의 산 소망을 주옵소서. 그리고 세상의 모든 찌꺼기를 한 몸에 싣고 대양으로 빠져나가는 메콩강의 물줄기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 넣으소서. 이 땅의 영혼들을 섬기고자 와 있는 선생들에게 힘을 주시고 저들을 통해 베트남인들을 주의 군데로 일으켜 주옵소서. 아멘.

 

jrsong007@hanmail.net

 

06.0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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