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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2월19일 1719호
  • Updated 2/19/2019 4:53:47 PM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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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1)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한 사람 (1)

서기386년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해다. 그 해에 기독교의 탁월한 리더 어거스틴이 흑암의 세력을 깨고 빛으로 방향을 수정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 해에 어거스틴은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 영적으로 깊은 번민 중에 있을 때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랫말을 통해서였다. 성령께서는 한 사람의 양을 부르시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신다. 

그 아이들의 동요는 들어봐, 읽어 봐라는 노랫말이었다. 그 가사에 마음이 움직이어 성경을 펼쳤더니 로마서 13장 13절이 비수가 되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큰 생채기를 내었다. 그는 지식이 대단한 수사학 교수요, 철학자이었다. 그런 지성인을 넘어뜨리기 위해 사용된 도구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동요 노랫말이었으니 말이다. 어거스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지혜에 대하여... 그리고 평생을 지식에 대한 겸손을 추구하고 현학적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처럼 강퍅하고 스스로 대단한 지성인으로 여기는 자를 넘어뜨린 매체가 어린아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일찍이 마니교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과 토론하여 밀리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다. 더더구나 그는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 출신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지금의 튜니지 출신이다. 현재는 살기 위해 낡은 배를 타고 목숨을 걸고 이태리로 넘어오는 사람들이다.

어거스틴이 살던 시대에도 베르베르족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어거스틴이 튜니지에서 라틴어를 공부하고 로마로 건너와서 수사학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뛰어난 천재이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밀라노에서 뛰어난 수사학의 교수를 요청하자 로마의 지사는 어거스틴을 천거하여 밀라노의 시 대변인이 되도록 했다. 요즈음으로 치면 시의 공보관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당시는 밀라노가 로마의 수도이었으니 그가 맡은 자리는 대단한 자리일 수 있다. 그리고 그를 가톨릭에서 4대 박사에 포함하고 있다(암브로시우스, 어거스틴, 제롬, 그레고리).

그는 386년에 회심을 경험한 후 밀라노 시의 대변인 직을 내려놓았다. 정치가들, 특히 변호사는 당시는 반드시 수사학을 깊이 공부해야 했는데 수사학이란 말싸움을 잘하기 위한 학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상대방을 법정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진실처럼 말해야 한다. 그 얼마나 거짓된 일인가!

어거스틴은 거듭남을 경험하고 미련 없이 대변인의 직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친구의 별장에서 몇 개월을 보내면서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어머니 모니카 여사와 아들도 함께 하였다. 때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서늘함이 포도를 영글게 하는 계절이었다. 저 건너로 코모(Como)의 호수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마도 이 기간에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부르셨을까? 왜 나같이 방탕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셨을까? 내가 진정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과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도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이 오기까지 하루에도 몇번씩 교회를 찾아가서 눈물로 기도하신 어머니와 성령으로 하나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을 것이다.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돌아옴은 기독교 역사에 놀라운 이정표가 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부르신 그 한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chiesadirom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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