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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땅 (10) - 기근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갈대아 우르, 하란을 뒤로하고 가나안에 당도한 아브람과 그의 식솔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 – 기근! 그동안 메소보다미아(Mesopotamia)에서 강을 끼고 살아왔던 아브람에게 기근이란 경험해 본 적도, 또 상상해 본 바도 없는 난관이었을 것이다. 근동지역에서 기근이란 농사를 지을 수자원이 부족해 빚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란의 경우 유브라데(Euphrates) 강의 상류인 발릭(Balik) 강을 끼고 있고, 특히 갈대아 우르는 유브라데 강과 힛데겔(Tigris)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필요한 물을 어느 때나 끌어 쓸 수 있는 땅이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메소보다미아 지역에서는 수자원 부족으로 인한 기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인구 순위가 곧 국력의 순위였던 당시 큰 나라는 자연히 많은 인구를 지탱할 수 있는 메소보다미아에 세워졌다.  

이렇게 강이 수자원이었던 메소보다미아와는 달리, 가나안은 비가 그 수자원인 땅이었다. 이 점은 지금도 그러하다. 지난 2018년,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갈릴리 호수의 수위가 그동안 계속 감수한 강수량으로 인해 지난 100년간 최하를 기록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지중해 물로 갈릴리 호수를 채우고자 해수 담수화 시설을 설치하도록 2억 7천만 달러($270,000,000) 규모의 예산을 결재한 바 있다. 

가나안의 기근 – 일차적으로 그것은 계속되는 강수량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자연재해였고, 마치 21세기의 이스라엘이 해수를 담수로 바꾸듯 대안이 필요했던 아브람은 급기야 가나안에서 가까운 큰 강 나일(Nile)을 찾아 애굽(Egypt)으로 내려가게 된다(창 12:10). 칠십오 년을 유브라데와 힛데겔 강을 끼고 살아온 그가 하루아침에 삶의 패턴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비를 받아 사는 땅에 비가 내리지 않고 있으니 그가 무얼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히 11:8) 길에 오르기는 했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가나안이 기근의 우려가 있는 땅인 줄 미리 알았다면 따라나섰을까? 그가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히11:8) 나아갔다는 말씀은 아브람이 그 땅의 이런 형편을 모르는 가운데 갔던 것임을 짚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사실을 기억하라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가나안에 도착하자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

 

이런 기근이 당시 그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인들에게는 강수량의 부족이라는 자연현상의 문제일 뿐이었겠지만 이민자 아브람에게는 그 고통을 가중시키는 사회적 문제가 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면은 창세기 12:6-9에서 아브람의 가나안 땅 안에서의 이동패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가나안에 당도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창 12:6)에 이르러 첫 제단을 쌓았던 아브람은 거기 머무르지 않고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창 12:8) 친 후 다시 제단을 쌓는다. 그런데 다시 여기 머무르지 않고 또 이동해 “점점 남방으로 옮겨”(창 12:9) 가고 만다. 이 이동패턴은 가나안의 북쪽에서 점점 남쪽으로 옮겨가는 것인데, 그 땅의 지역적 특징상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서 더 낮은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수량의 부족으로 기근이 든 땅에서 왜 아브람은 점점 더 환경적으로 열악한 곳으로 옮겨갔을까?

본문의 세 문구가 힌트를 준다: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창 12:6). 이는 아브람이 첫 제단을 쌓았던 세겜 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브람이 제단을 쌓았던 곳 중 가장 북쪽, 즉 강우량이 가장 높은 곳,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나마 살 만한 곳, 그 땅은 가나안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보고다. 다시 말해 아브람과 같은 이방인에게는 발 붙일 곳이 없었다는 뜻으로 읽히는 구절이다.

“벧엘 동쪽”(창 12:8). 그런 세겜에 발 붙이지 못하고 그가 옮겨 간 곳은 벧엘 지역이었다. 세겜보다 남쪽에 위치했기에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낮고, 특히 동쪽으로는 유다광야가 이미 시작되는 지역이다. 바로 그 “동쪽”, 광야에 가까운 곳에 그가 자리를 잡았다. 다시 말해 더 열악한 곳으로 옮겨 그중에서도 가장 못한 자리로 갔다고 읽혀진다.

“장막을 치니”(창12:8). 그가 그 지역 가나안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았다면 그 성에 들어가 그들이 건기를 대비해 마련한 수조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장막”을 쳐야 했다. 다시 말해 성 사람들은 그를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는 문맥이 읽혀지는 문구다. 철저히 이방인으로, 객으로 지냈음을 암시한다. 

가나안 사람들의 텃세가 심했던지, 아브람은 벧엘 동쪽의 장막 생활도 얼마 지속하지 못한 채 “점점 남방으로 옮겨”(창 12:9) 가고 말았다. 더 이상 텃세를 부릴 가나안 사람이 있지 않은 곳, 척박해 아무도 살고자 하지 않는 땅, 메말라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땅에 이르러서야 그는 장막 치기를 맘 놓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뭄으로 시달리는 땅에 이민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 아브람. 그 땅에서 그에게 물을 나눠 줄 사람은 없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 이 말씀을 따라 그가 와서 본 것은 바로 이렇게 자연과 인심에 기근이 든 땅이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어떻게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창 12:2) 게 하겠다는 약속을 유브라데도, 힛데겔도 없는 기근의 땅을 두고 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 큰 민족은커녕 한 가족의 생명조차 부지할 수 없는데 말이다.

새 땅에서의 새 삶이 옛 땅에서의 옛 삶만 못하다 판단되었을 때 아브람은 나일 강이 흐르는 애굽을 향해 그의 눈을 돌려 다시 한번 큰 강에 자신과 식솔들의 생계를 의탁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는 사래를 빼앗기고 바로로부터 질책을 당하는 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 대해 두 가지를 기록하게끔 하셨다: 그가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 12:4), 가나안에 이르러서 그 땅 사람들 사이에 객으로 사는 중에도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는 사실이다(창 12:7, 8). 이 두 사실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장차 아브람으로 아브라함 되게끔 그 선대하심을 멈추지 않으실 것이다.

spark4@gordonconwell.edu

06.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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