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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렝이질‘ 신앙

은희곤 목사

뉴욕 참사랑교회

 

“흙바닥 위에 세운 기둥은 상식적으로 깨지고, 썩고,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당연히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옛 시절 집을 지을 때는 기둥 밑에 주춧돌을 받쳐놓고 집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는 다양한 돌들의 모양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기 마련입니다. 톱과 대패를 이용해서 만든 나무기둥의 단면은 평평해집니다. 그러면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기 위해서 단단한 돌을 어렵게 평평하게 깎는 것보다, 옛 장인들은 더 깎기 쉬운 나무기둥의 단면을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과 꼭 맞도록 깎아내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주춧돌의 표면과 나무기둥이 꼭 맞도록, 기둥의 단면을 깎아내는 것을 '그렝이질'이라고 합니다. 그렝이질이 잘된 기둥은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단단하고 꼿꼿하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났을 때 주춧돌이 매끈한 돌이라면 기둥이 밀려갈 수 있지만, 한옥의 경우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서 있어서 쉽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울퉁불퉁한 면이 기둥을 안전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강한 제주의 돌담들이 밀리지 않는 이유는 다르게 생긴 돌들끼리 아귀를 맞추기 때문에 서로를 자연스레 잡아주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퍼온 글).

‘그랭이질 기법’,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을 돌이켜 봅니다. 우리의 주춧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들은 그 위에 내 인생을 놓고, 깎고 가다듬어 딱 끼워 맞춰야 합니다. 나 자신을 주춧돌인 성경 위에 얹혀놓고 비쭉비쭉 튀어나온 부분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과감히 잘라내고 움푹움푹 들어간 부분들은 주저함 없이 말씀으로 채워 넣어 나 자신을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리우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랭이질 기법으로 지은 한옥이 주춧돌과 나무기둥들이 서로를 자연스레 끌어당겨 잡아주는 힘이 있어 지진과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나 바람이 강한 지역에서도 든든하게 견디듯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춧돌 위에 나 자신의 인생을 맞춰나가, 버릴 거 버리고 채울 거 채워 그 위에 인생을 세워나간다면 사단과 마귀의 시험과 세상이 주는 유혹이나 어떤 환란이 닥칠지라도 무너지지 않고 넉넉히 당당하게 뚫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마7:24-25). ‘그랭이질 신앙’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지식이나 경험이라는 흙바닥 위에 자기 인생의 기둥을 세웁니다. 비가 오면, 인생의 환란이 닥치면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마7:26-27). ‘허무한 인생’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춧돌이 예수가, 말씀이 아니라 자기가 됩니다. 자기가 기준이 되어 이건 믿을 수 있고 저건 믿을 수 없고의 ‘부분적 순종의 신앙’, 봉사와 헌신에 있어서도 수고하는 시간, 사용되어지는 물질, 섬기는 달란트 등등에 있어서 이건 너무 많아 이 정도면 모든 게 다 적당해 라고 스스로 그 한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신앙생활하려는 ‘편의주의적 신앙’, 세상의 문화와 풍조가 이런데 단순히 내가 믿는다고 해서 이런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어, 그러니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고 아마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거야 라는 ‘혼합주의적 신앙‘ 등등이 모두 다 ”위조된 신앙“입니다. 자기는 신앙이라고 하지만 절대로 신앙일 수 없는, ’신앙인 거처럼 보이는 신앙‘일 따름입니다. 이것을 가르켜 성경은 “스스로 믿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어리석기에 방자하여, 교만하여 이런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잠14:16....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바울도 세상에서 가장 큰자였던 사울이었을 때 이랬습니다(행26:9,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이제 우리 신앙을 ’리셋‘해야 합니다. ’부분적 순종‘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으로, ’편의주의적 신앙‘이 아니라 ’절대적 순종‘으로, ’혼합주의 신앙‘이 아니라 ’선명한 신앙‘으로, “스스로 믿는 방자한 신앙”에서 ”성서적 신앙“으로 나 자신을 리셋해야 합니다. 바로 주춧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나를 끼워 맞추는 일명 ”그랭이질 신앙“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는 교회 안에서도 이 ‘그렝이질’ 신앙이 필요합니다. 뿌리가 예수그리스도만 분명하다면 서로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주 안에서 함께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야 합니다. ‘바람이 강한 제주의 돌담(교회)들이 밀리지 않는 이유는 다르게 생긴 돌(성도)들끼리 아귀를 맞추기 때문에 서로를 자연스레 잡아주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올 가을에 우리 신앙을 한번 그랭이질 신앙으로 리셋시켜서 그때 임하시는 보다 풍성한 은혜가 충만한 계절이 되어 봄은 어떨는지요? 

 

09/2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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