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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2월19일 1719호
  • Updated 2/19/2019 4:53:47 PM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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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뉴스

구라파 난민 위기: “모스크도 지어줍니까?” 구라파 난민문제는 구라파의 위기라고 서방언론들은 보도한다. 터키 해변가에 시체로 떠 있는 시리아 꼬마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온 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문명세계에 이러한 처참한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현대 국제사회는 문명과 야만이 함께하고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다. IS의 잔인성으로 시리아와 이라크가 가장 많은 난민을 낳고 있다. 금년초 일본 NHK는 아랍은 붕괴하고 있다고 특집 보도하였다. 그것은 거의 현실화하고 있다. 무슬림 난민문제는 정치 경제를 떠나서 종교적으로 구라파에 위기이다. 이미 이슬람포비아(이슬람 공포증)로 진통을 겪고 있는 프랑스는 에브도 사건으로 이민을 받을 수도 없다. 반면 인권운동을 선도한 국가로 안 받을 수도 없는 처지이다. 마틴 루터의 고향 엘풀트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의 한 여성이 노골적으로 환영하는 시 직원에게 “모스크도 지어줍니까”라고 물었다. 일찍 구라파의 한 이슬람 전문가는 구라파가 “유라비아”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우려하였다.

왜 독일은 난민을 환영하는가? 동구, 특히 헝가리는 아예 철조망을 쳐서 난민유입을 막고, 심지어 헝가리의 한 여기자는 철조망을 넘으려는 시리아 난민을 발로 차서 호된 비난을 받았다. 헝가리 수상은 노골적으로 우리는 무슬림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동구권은 난민에 아예 빗장을 치고 있다. 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특히 독일은 난민을 환영하는 소문이 아프간까지 들려 아프간의 청년들이 독일가려고 안달하려고 뉴욕타임지가 보도한다. 왜 독일은 난민을 환영하는가? 오늘 아침(14일 아침: 미얀마 시간) CNN 객원해설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독일은 2차 대전 홀로코스트에 대한 속죄로 난민을 환영한다고 칭찬하였다. “회개하는 독일”을 강조하였다. 회개를 모르는 일본과는 정 반대이다. 그러나 반면 독일의 인구감소는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민을 받음으로 67억불의 추가 예산에도 불구하고 환영하는 이유는, 2060년이 되면 근로자 두 사람이 한 명이 노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된다. 이민자로 공장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스 경제위기에 인색한 메르켈이 난민환영으로 국제적으로 칭찬을 받고 있다. 반면 난민을 거부하는 구라파 나라들은 독일 때문에 난민을 유입시키고 있다고 거세게 비난한다. 독일 내에서도 반대 데모가 심각하다.

무슬림 난민에 냉담한 이랍국가들 서구 구호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은 아랍국가들이 무슬림 난민에 냉담하다고 맹비난하는데, 도리어 큰 “소리”로 대꾸를 하며, 심지어 미국이 이라크,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러시아 이란이 아사드를 지원한 것을 비난한다. 아랍국가들도 시리아 난민을 지원하였다고 큰소리친다. 그런데 액수로 따지면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미국이 11억불을, 사우디는 18백40만불을, 쿠웨이트는 3억만불 가량 지원하였다. 시리아 난민들은 노골적으로 구라파에 회망이 있지, 걸프국가들은 별 볼일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심지어 한 시리아 난민은 걸프국가들이 테러리스트는 지원해도 난민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움마(전세계적 이슬람공동체)를 강조하는 이슬람 역시 이념적 딜레마에 처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서방의 잘못이 아니라 수니파, 시아파의 대리전에 백성들만 죽어간다. 근 4년의 내전에 이미 20만 명 이상 죽었고 9백만 이상 백성들이 나라를 떠났다. 나라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IS의 폭력, 살인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는데 두고 볼일 일이다. 터키, 요르단, 레바논 등에 시리아 난민수용소는 거의 반 감옥이라고 난민들이 불평한다. 이 소문을 듣고 목숨을 걸고 구라파로 간다. 오늘 한 시리아의 한 청년은 8킬로의 바다를 헤엄쳐 그리스의 한 섬에 도착하였다고 CNN이 보도하였다.

난민은 선교의 기회이다 20세기 후반은 헌팅톤이 말한 문명충돌(실은 종교충돌)에 돌입하였다. 21세기 첫 해 911테러는 이슬람 테러와의 전쟁의 서막을 고한 것이다. 종말적 종교탄압이 갈수록 증가, 많은 선교사들이 부득이 선교지를 떠났다. 선교의 문이 닫혔지만 지금 선교의 문이 크게 열리고 있다. 난민은 선교의 큰 기회이다. 이유는? 역사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동남아 소승불교국가들이 공산화하면서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하였다. 동남아 대부분 국가들은 60년대 선교사들의 재산이 국유화되고 서양 선교사들은 추방당하고 현지교회 지도자들은 구속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라오스 공산화가 되면서 많은 난민들이 나라를 떠났다. 태국의 난민 캠프는 불교도들이 손을 놓은 사이에. 기독교 NGO들과 선교단체의 운동장이 되었다. 서방나라들이 난민을 받아들였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 지금은 자기들 나라 복음화와 선교에 열심하는 자들이 많다. 미국으로 간 자국민들이 돈과 복음을 들고 자기 나라를 찾고 있다. 이제 공은 서구의 기독교회와 선교단체에게 넘어간 셈이다. 이미 난민들에게 봉사하는 서양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선교는 물론 간단하지 않다. 아랍어가 되는 구라파의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멀지만 지원할 때가 왔다. “이슬람 선교”를 외친 한국교회, 국내도 구라파도 좋은 선교지가 되고 있다. 역사는 심판의역사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역사이다. 그동안 꿈과 환상을 통하여 많은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큰 역사의 전환점에 있다. 서구 교회에 도전이자 동시에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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