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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저주’에‘부패’인재까지 겹쳤다!

컨버세이션, 정치학자 스콧 모건스턴, 존 폴가 교수 통해 베네수엘라 구제 방안 제시

남미에서 가장 잘살던 베네수엘라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연일 외신을 통해 접하는 베네수엘라 상황은 이제 국가부도마저 예견될 정도고,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가인데도 국민의 90% 정도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미 정치학자들의 해석을 통해 오일 머니로 벌어들인 부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부패의 유혹에 빠져 소위 ‘자원의 저주’에 걸린 베네수엘라 상황을 짚어본다(Why Venezuela’s oil money could keep undermining its economy and democracy). 

국민 통합으로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자원의 

저주’ 벗어날 제도적 장치 만들 리더십 요구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위기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실각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정치학자의 입장(필자 스콧 모건스턴은 피츠버그대학 정치학 교수이며, 존 폴가-헤시모비치는 해군사관학교 정치학 부교수)에서 보면 그가 그런 처지에 봉착했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학자들은 베네수엘라를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 본다. 자원이 풍부한 국가일수록 정치적으로 불안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영국의 경제지리학자 리처드 M. 오티가 처음 사용했다. 이 저주에 걸리면 석유 같은 자원 수출로 얻은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고 일부 계층에 집중되면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국민 삶의 질이 떨어진다.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국가이면서도 국민의 약 90%가 빈곤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베네수엘라는 바로 그런 저주의 전형적인 예로 통한다.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석유라는 귀중한 자원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활용하지 못했다. 따라서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나라 중 미국·캐나다·노르웨이 등 일부만 용케도 ‘자원의 저주’를 면할 수 있었다. 석유를 대량 생산해서 수출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확고한 제도와 다각화된 경제를 구축한 덕분이다.

중남미의 여러 나라가 ‘자원의 저주’에 걸렸다.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방탕한 지도자들이 자원 수출로 벌어들인 부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부패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익 독재 정권이 들어서서 국민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중남미 외 다른 지역에서도 도둑정치인과 독재자들이 금·구리·석유 같은 천연자원에서 발생한 부와 외국에서 제공 받은 원조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다.

미국의 테리 칼, 사드 더닝 같은 정치학자는 베네수엘라의 경우 1950년-1980년대 초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민주주의를 지탱했다고 지적했다. 그들에 따르면 당시 베네수엘라 정부는 낮은 세금으로 엘리트층의 지지를 받고 관대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빈민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오일 머니가 독재 정권이든 민주 정권이든 권력을 잡은 정부를 떠받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오일 머니가 줄어들면서 정치가 양극화된다. 낮아진 석유 소득을 두고 부유층과 빈곤층이 서로 다투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국가가 한 가지 수출 상품과 극히 제한된 시장에 의존할 경우 취약성은 더 커진다.

2017년 베네수엘라의 수출 소득에서 원유 판매가 98%를 차지했다. 또 베네수엘라가 수출한 원유 중 거의 절반을 미국이 사들였다. 풍부한 오일 머니 덕분에 관대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한 베네수엘라는 수십 년 동안 호황을 누렸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가 급격히 둔화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향후의 석유 소득을 담보로 얻은 거액의 차관을 상환해야 하는 시점과 경기 후퇴가 맞물렸다.

1974-79년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이 1989년 재집권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유가가 떨어지면서 통화 가치가 하락했고, 빈곤률이 높아졌으며, 외채와 공공 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페레스 대통령은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긴축정책을 도입하면서 자본시장의 규제를 완화하고 휘발유 등 생산품의 가격 통제를 풀었다.

이런 조치는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그러면서 ‘카라카소(Caracazo)’라고 불린 민중 봉기가 일어나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정치적 위기로 이어졌다. 페레스 대통령은 1992년 두 차례의 쿠데타 기도에서 살아남았지만 결국 그 다음해 공금 횡령 등의 부패 혐의로 탄핵된 뒤 사임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지배계층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분열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1992년 페레스 대통령의 축출을 노린 첫 쿠데타 기도는 우고 차베스가 주도했다. 당시 육군 중령이었던 그는 자신이 “이번에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다음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경고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6년 뒤인 1998년 차베스는 대통령에 출마해 압승을 거뒀다. 차베스 대통령은 운이 좋았다. 유가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서 집권 동안 최고조에 이르렀다. 2009년 세계 경제의 대침체에 따른 하락세가 단기간 발생했지만 전반적으로 고유가에 따른 석유 소득의 증가로 그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울러 국영 석유·천연가스 회사 PDVSA(현재 미국의 제재 대상이다)의 구조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소득을 올려 권력을 강화하고 석유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국고에 쌓을 수 있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그 자금으로 수십 가지 사회안전망 프로그램(빈민층 의료혜택과 무상 교육 등)을 도입하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 공사를 시작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휘발유에 보조금을 대면서 대중의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 그가 2002년 측근들을 PDVSA의 요직에 임명하자 군부에서 불만을 가진 인사들과 급진화 된 베네수엘라 상공회 지도자들이 쿠데타를 기도했다. 그러나 결국 그를 축출하는 데 실패했다.

한편 베네수엘라 정부는 석유 산업에 신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실하고 방만한 경영으로 일관했다. 석유 소득이 줄어들 것에 대비해 다른 수출 품목을 개발하는 노력도 게을리 했으며 석유 수출의 최대 고객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데서 탈피하지도 못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석유 수입량이 크게 줄었지만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미국의 석유 수입원 3위를 유지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암 투병 중 2013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마두로가 그의 권좌를 물려받았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이 크게 줄어든 시점이었다. 바로 1년 뒤 국제 유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두로 대통령의 인기도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그는 국제 선거감시단이 참관하지 않은 논란 많은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 투표를 보이콧하자는 운동이 벌어졌고, 야당 후보 탄압과 개표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선거였다.

마두로 대통령이 유가 하락 시기에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야 하는 것도 불운이지만 그의 석유 산업 관리 능력도 차베스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는 군 장성 출신인 마누엘 케베도를 석유장관에 앉히는 등 군부의 측근들을 석유 산업 경영진에 발탁했다. 마두로의 부상 이래 PDVSA 임원 다수가 숙청됐다. 하급 직원들은 현재 받는 임금으로는 통근 비용을 댈 수 없어서 집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 부패도 기승을 부린다.

이처럼 사회적·경제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서민 중 다수도 마두로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다. 혼란이 커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했다. 과이도 의장이 마두로 대통령의 축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험난한 역사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현재 위기에 처한 지도자를 쫓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듯하다. 

미래의 지도자는 국민 통합으로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자원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베네수엘라는 석유로 얻는 부를 통해 사회적·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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