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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람

마태복음 16장 13-28절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빅토빌에서 19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그동안 수많은 교회가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현상을 보며 매번하는 질문입니다. 그냥 주일날 사람들이 모여서 한 시간 정도 예배드리고 교제의 시간만 갖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예수님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사람이 되게 하려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사교단체가 아니고 친목단체도 아니며 어떤 정치적 혹은 정치적인 소신을 말하는 곳도 아니며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며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의 사람들이 영광 돌리는 사람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 당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왔지만 성경은 두 그룹, 허다한 무리와 제자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이끌고 예수님은 여러 가지 사역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소문이 온 지역에 퍼지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우상숭배가 가장 심했던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셔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을 때 그 질문은 이미 답이 들어 있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묻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들은 대로 헤롯 왕이 말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그가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고 얘기한 것처럼 하기도 하고 구약에 수많은 이적을 베풀었던 예언된 엘리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여러 가지 어려운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시고 이스라엘의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선지자 예레미야라고도 하기도 하고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도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 나서기 좋아하고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되다. 너의 혈육적 지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이다. 내가 이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고 천국 열쇠를 주어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상당히 유명합니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베드로의 천성이나 베드로의 내면의 세계에서 나온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알게 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것이 자기 것인 양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이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에게 핍박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거라는 말씀을 하시게 될 때 여기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내용을 한마디로 한 단어로 말한다면 바로 복음을 말하게 될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책망을 합니다. 그리할 수 없다고.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까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린 그와 같은 증거를 성경에서 많이 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베드로는 가지고 있던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립니다. 예수님이 그냥 잡혀가시면 되는데 말고의 귀를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거라고 하셨는데도 인정하지 않다가 닭 울기 전에 여종이 당신도 갈릴리사람이지 않느냐 당신이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것을 보았다는 말에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모습을 봅니다. 

내 속에서부터 진정 우러난 고백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을 내 것인 양 착각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꾼 노릇을 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마태복음 7장 11절에서부터 27절 말씀에서 보여줍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내쫓았다고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행한 자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만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에게는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베드로를 칭찬하시던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너 왜 이러냐고 하시며 설득하는 모습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십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착각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베드로라 하는 이름은 예수님이 주신 이름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보면 처음 그를 만나셨을 때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이제부터는 내 이름을 게바라 하리라. 바로 게바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착각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이름의 뜻이 반석이니까 내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세우리라 하는 해석에 대해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는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운다고 하여 교황권에 대한 것을 성경적 배경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신 그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읽은 것처럼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 그것도 복음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그 사람의 고백 위에다 세운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성경 말씀을 조금씩 수정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고 하면 아, 그것은 성경에 있는 얘기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고, 다른 교회는 이렇게들 다하고 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거만 가지고 어떻게 교회가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 문을 낮추고 세상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복음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편협하다고 합니다. 외골수라고 합니다. 달콤한 얘기 세상사는 방법 같은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등 하나님보다 위에 서서 가르치려고들 합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복음을 위해 사는 인생, 교회를 다니면서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인정받는 모습보다도 더 중요한 건 무엇이냐면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가 아닌가 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그 복음을 위해서 살기 위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 그거 갖고 뭘 하느냐 이런 식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취급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는 것, 우리를 위해서 채찍을 맞으신 것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에 감사해서 은혜를 감사해서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반석이 자기 자신인줄 알았던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장을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이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는 계속 진행 중으로 지어져 간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예수님의 사람 삼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 진정 주님 앞에서 해 나가야 하는 내용이 무엇이냐면 무엇인가를 어떻게 해보고 뭐 하는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자신을 주장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조차도 나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뜻대로 행하는 구약의 선지자들 통해서 예언된 대로 그대로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와 달리 다른 복음서인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는 언급되어있는데 마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그것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8장 38절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부끄러워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 말씀을 나누기를 부끄러워한다면, 내가 왕권을 가지고 올 때 나도 너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람은 복음에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올바른 신앙 고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심을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부터 온전히 고백하는 복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사람으로서의 고백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 복음 때문에 사는 사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셨는데 그걸로 끝이다, 그러면 복음하고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왕권을 가지고 다시 오신다. 우리가 한 단어로 얘기하면 뭐죠? 재림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면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나의 삶이 복음과 상관없다면 어쩌면 나는 예수님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사람으로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말하고 복음대로 행동하고 복음을 전해서 아직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예수의 사람대로 증가하는데 우리들의 삶을 온전히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03.2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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