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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생활 문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 동안 전승되어온 생활 철학과 문화가 있다. 

중국인에 대한 이해도 없는 선교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기 쉽다.

 

한중관계는 1992년 8월24일 수교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를 기점으로 대중관계는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후 중국에서 한인 기업들이 하나, 둘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소상공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선교사역은 어떠한가? 중국선교 역시 사회분위기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근자에 중국정부의 종교정책으로 인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되었다. 이제는 남아 있는 사람들도 숨죽이며 활동을 절제하고 있다. 한마디로 물 좋은 때는 지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사반세기(四半世紀)의 경과를 냉철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한국 기업과 선교사역이 밀려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비단 사드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우리는 너무 중국과 중국인을 모르고 접근했다. 목표지향적인 성급한 시도들이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는 우리가 좀 더 진중(珍重)하고 배우는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G2국가로서 잠재력이 무한하며 세계인구의 1/5에 해당되는 중국인을 도외시하고 Business 와 세계선교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어떤 내면적 문화를 지니고 있을까?

 

1. 만만디(慢慢地)문화

한국인의 습성을 대표하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한다면 중국인은 ‘천천히’라는 뜻의 ‘만만디(漫漫地)’이다. 그 느림은 황소걸음처럼 큰일을 이루어가는 긍정적인 의미와 때로는 변화하는 시대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느긋함이나 굼뜸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평가받기도 한다. ‘만만디’라는 생활문화는 중국이라는 환경과 살아온 역사 속에서 생내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중국인들은 드넓은 평원에서 단순하게 살았다. 구태여 경쟁하며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대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인간의 열심은 별 효용이 없었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또 다른 형태의 '구조적 느림'이 존재했다. 이래도저래도 똑같이 나누어 먹었으니까?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 문화가 휘몰아치면서 느림의 가치와 의미도 변하고 있다. 

아무튼 이 ‘만만디’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는 행위의 속도가 아니가 아니라 중국인 특유의 정서적인 여유로움과 신중함이다. 이것은 결코 게으르거나 욕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책량이며 일종의 기회를 기다리는 뚝심 같은 것이다. 그 속에는 실리를 담보하기 위한 ‘신중함’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문화

중국인은 여유만만하고 스케일이 큰 특징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의심하고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중국인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들도 모르는 3가지 “중국 인구, 중국어 문자 수, 중국인의 마음”이 있다 한다. 저들은 사람을 보아가며 평가하고 천천히 마음 문을 연다. 서구문화가 직선이라면 중국문화는 곡선이다. Yes, No가 분명한 서구인들은  중국인들의 마음속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저들은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지난 25년 동안 한인 단기선교 팀들이 4영리로 저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보고인즉, ‘하루 동안 30명을 만났고 그 중 25명이 결신했다”고 기뻐했다. 이는 중국인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외국인이 침을 튀기며 열정적으로 말을 하는데 어찌 “No”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저들은 “하오(好:좋다)”라고 답했다. 그 뜻은 꼭 “Yes“를 말함이 아니다. 상대방 체면을 생각해서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앞뒤 좌우문맥과 얼굴빛 속에서 상황판단을 해야 했다. 

 

3. 체면과 관계(關係)를 중시하는 문화

중국에서 흔히 우수개 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쉬운 일도 없고 어려운 일도 없다. 되는 일도 안 되는 길을 찾아가면 안 되고, 안 되는 일도 되는 길을 찾아가면 된다. 중국 사람들은 미엔쯔(面子:체면)과 꽌시(關係:관계)를 중시한다. 

특히 꽌시는 우리의 ‘빽’(background)과 비슷한 뜻으로서 하루아침에 쌓아질 수 없다. 저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관계라고 본다. 그것을 까오 꽌시(搞關係) 또는 라 꽌시(拉關係)라고 하는데 이는 “관계를 얽는다”고 보면 무방하다. 이렇게 하여 꽌시왕(關係網: 관계망)을 마치 거미줄처럼 형성해 두고 있다. 이렇게 관계를 중시하다보니 사람을 평가할 때 상대방의 능력보다는 꽌시가 우선하는 경우가 있다. 즉, “그가 누구인가보다 누구와 연관된 사람인가”가 더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4. 재화에 집착력이 강한  문화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 8초에 후진타오 국가주석에 의해서 베이징올림픽 개회선언이 있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 역시 오후 8시에 열렸다. 왜 중국인들은 이처럼 8자를 좋아할까? 8은(八:bā)로 발음한다. ‘八’의 중국어발음이 ‘发财', 즉‘돈을 번다, 재산을 모은다’의 ‘发’(fā)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재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민족은 없다. 그러나 돈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착은 그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중국 사람들은 유대인 못지않게 재물에 집착이 강하고 상술에 뛰어난다. 계산이 빠르며 실이익을 따진다. 따라서 새해인사로 우리처럼 “복 많이 받으라”는 두루뭉술한 말 대신 "꽁시 파 차이(恭喜發財:돈 많이 버세요)"라는 직접화법을 좋아한다.

 

5. 은혜는 갚되 원한은 복수하는 문화

"부(父)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형제의 원수는 병기를 거둬들이지 않고 항상 휴대하고, 친구의 원수는 같은 나라에서 살 수 없다(父之讐, 弗與共戴天. 兄弟之讐, 不反兵. 交遊之讐, 不同國)." 이는 예기(禮記)에 나온 말이다. 중국처럼 복수가 일상화한 나라도 없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 ‘도광양회’(韜光養晦), ‘굴묘편시’(掘墓鞭尸), ‘이혈세혈’(以血洗血)의 고사 성어는 복수를 지선(至善)으로 미혹한다. 

우리는 중국의 사극이나 영화 등을 보면 부모님의 원한을 자녀들이, 사부님의 원한을 그 제자들이 대를 걸쳐 복수하는 장면을 보아왔다. 현대 중국인들도 이러한 정신문화가 계승되고 있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상대가 힘이 셀 때에는 타협을 하고 기회를 엿보지만 만만한 상대에게는 가차 없이 실력 행사를 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공(攻)을 세우기 위해 무리한 도전보다는 복수가 두려워 과(過)를 범하지 않으려는 생활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맺음 말

중국은 반만년의 유구한 찬란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저들의 심중에는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유가의 상징은 네모로서 격식과 인의예지, 인간으로서 길을 규격화하며 형식을 중요시 한다. 거기에는 인간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반해 도가는 원으로서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변화와 회귀, 삶과 죽음을 한 축으로서 자연스럽게 본다. 일종의 운명에 대한 순응이라고 할까. 

이로서 중국인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러므로 저들을 대상으로 선교나 사업을 하려면 서두르지 말고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곳은 우리 땅, 우리 백성, 우리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서구세력을 비롯하여 많은 외세들이 중국에서 손 털고 나온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생명의 씨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발아할 토양도 결코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jrsong007@hanmail.net

 

09/2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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