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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앙 회복 및 부흥(復興)”(20)

김경일목사

남가주 청교도 이주 400주년 기념 책자 저자
남가주행복찬교회담임

 

3)청교도(淸敎徒)의 나라 미국이 어떻게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화 되었는가?

청교도사상(Puritanism)의 나라인 미국이 왜! 성경적 가치(價値)와 윤리(倫理)를 상실하고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화 되었는가? 

(1) 종교다원주의는 국교제(國敎制)의 최악(最惡)의 부산물((副產物)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아이러니(Irony)하게도 국교제로 말미암아 생긴 최악의 부산물(?)이다. 왜냐하면 제1장 청교도의 개혁운동과 기원 및 배경에서 전술했듯이 로마카톨릭교회의 잔재(殘滓)가 남아 있는 국교회(성공회)는 영국의 국왕이 수장(首長)이었기에 영국 사람들은 반드시 성공회 교인(敎人)이 되어야만 한다. 만약 성공회에 가입(加入)하지 않고 타 교회에 가입하면 종교적 핍박(逼迫)과 사회적으로 불공정(不公正)한 대우(待遇), 심지어 순교(殉敎)의 제물(祭物)이 되기도 했다. 특히 개혁적(改革 的) 신앙(信仰)의 자유를 원했던 청교도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 독점적(獨占的) 국교제가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新大陸)으로 오게 되는 결정적 원인(原因)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차별(差別)과 핍박(逼迫)이 동반된 종교 악법(惡法)이 되었다. 그러므로 미국에 이주(移住)한 청교도들이 이 국교제를 적극 반대(反對)했던 것이다. 

드디어 1786년 ‘종교자유법(Bill for Establi-shing Religious Freedom)’이 통과(通過)되고, 최초(最初)로 자유헌법(自由憲法)이 제정(制定)된 것이다. 즉, 국가(國家)는 특정 종교(特定宗敎)를 국교(國敎)로 정할 수 없고, 특정 종교를 선호(選好)하거나, 특정 종교를 박해할 수 없다고 하는 사항을 헌법에 명기(明記)한 것이다. 

종교자유법은 그 당시에는 너무도 좋고 합당한 법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은 다양한 교파(敎派, 성공회, 장로교, 회중교, 침례교 등) 교인들로서 다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인들이기 때문에 문제(問題)가 될 수 없었다. 그 당시 영국이 성공회를 국교로 두듯이 미국도 주에 따라 국교를 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즉, 13개 주로 이뤄진 미국 연방을 운영하는 데에 기독교가 중추적(中樞的)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영국처럼 국교를 따로 두면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 상충(相衝)했던 것이다. 실제로, 메릴랜드는 가톨릭(Roman Catholic Church), 펜실베이니아는 퀘이커(Quaker), 버지니아/뉴욕/조지아는 성공회(聖公會)가 공식 종교였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진리는 위대해서 홀로 내버려둬도 승리한다. 우리는 성공회도, 가톨릭도 침례회도 아니다. 모두 크리스천이다” 라는 말을 남기며, 공화주의(共和主義)자들과 함께 국교제 폐지(廢止)를 주장했고, 정교분리 원칙을 못 박았다. 

그렇다. 그 당시 이주한 청교도들 대부분 다 암묵적(暗默的)으로 “오직 하나님만 믿는다”는 기독교 신앙을 다 인정했기에, 굳이 국교를 따로 정할 필요가 없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제퍼슨은 악한 의도(意圖)를 갖고 이신론적 종교관을 관철시킨 것이다.

즉, 이신론(理神論)을 신봉(信奉)하는 제퍼슨이 “우리는 …모두 크리스천이다” 라고 주장하는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종교다원화의 위험(危險)을 간과(看過)한 채, 독립선언서(the Declaration of lndependence)와 미국 헌법에 기독교적(基督敎的) 조항(條項) 삽입(挿入) 없이 ‘종교의 자유법’이 명시(明示)된 것이다. 

1890년경부터 새로운 다양한 이주민들이 동 유럽 등으로부터 미국에 대규모로 들어와 대도시에 정착(定着)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에 즈음하여 미국 사회 각각의 영역에서 이주민(移住民) 집단들에 대한 반감(反感)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이민자들의 지위 (地位)는 상승(上昇)되었고, 그들이 함께 가져온 비(非)청교도적 성향(性向)이 확대(擴大)되었다. 

그러므로 신분(身分)이나 교육 등에서 단순히 종교적 다양성(多樣性)으로만 인식(認識)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당연(唐硯)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소위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초래(招來)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는 종교를 비롯한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미국인들에게 개인화(個人化)를 더 더욱 촉진했다. 

위와 같이 이민(移民)의 나라 미국이 되어, 타국인(他國人)들의 대량유입(大量 流入)과 그들이 믿는 다양한 종교에 대한 관용(寬容)과 활성화(活性化)로 말미암아 2020년 현재, 미국내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惹起)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정부의 간섭 없이 하나님을 자유롭게 잘 믿자” 라는 본래 취지(趣旨)의 종교의 자유법이 이신론자들과 무신론적 정치가들로 인해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Absolute sovereignty)과 청교도의 신앙과 사상을 반대하는 미국적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화라는 참담한 괴물(怪物)이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진정한 헌법적(憲法的)인 의미의 종교다원성이 용인(容認)되기 시작한 것이  미국에서부터라는 점에서 미국의 종교다원주의는 현대의 모든 종교다원주의의 본보기적 모델(model)로 여겨지기도 한다”(Berger P. L., “The Sacred Canopy: Elements of a Sociological Theory of Religion,” p.135). 

이 얼마나 참담(慘澹)한 평가(評價)인가! 순교적(殉敎的) 자세로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그 신앙을 지키려고 이주한 청교도의 나라 미국이 종교다원화를 주도(主導)하는 국가로 변질(變質)된 것이다.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정반합(正反合, thesis,antithesis,synthesis)원리(原理)처럼 정(thesis)이 그것과 상반(相反)되는 반(antithesis)과의 갈등을 통해 정과 반이 청교도 본래 취지와 맞는 합(synthesis)으로 조정(調停) 되어야만 했다. 

즉, 청교도들은 정(正, 국교제)에 대한 반(反, 종교자유법)으로 나온 것이기에 합(合, 대전제로서 미합중국은 기독교국가)으로서의 명문화(明文化)가 절대로 필요했다. 대한민국(大韓民國) 헌법(憲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시된 것과 같이 미국 역시 광의(廣義) 개념으로서 모모한 종교의 자유가 아닌 정확히 “오직 하나님만 신앙하는 종교(교파) 선택(選擇)의 자유”와 “미합중국은 청교도의 정신으로 설립(設立)된 기독교 국가다”를 헌법 제1조에 명문화(明文化) 했어야만 했다. 

청교도 정신 사라진 종교자유법 제정으로 종교다원주의 빌미 제공 

제퍼슨의 이신론적 사상으로 정교분리원칙에 의해 참 기독교 버려

 

(2)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화는 이신론자 토마스 제퍼스의 철저한 의도(意圖?)였다.

결국 청교도들은 오직 국교제에 대한 상한 감정(感情)과 피해의식 때문에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로서 참 근시안적 시각과 그것을 역(逆) 이용한 정치가요 대표적 이신론자였던 제3대 미합중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주도하에 하나님만 섬기는 청교도의 나라가 아닌 모든 타종교 심지어 이단(異端)까지도 인정(認定), 수용(受容)하는 종교다원주의’ 국가로 만든 것이다. 

1820년에 출판한 “The Life and Morals of Jesus of Nazareth, 나자렛의 예수의 삶과 도덕” 즉, 토마스 제퍼슨 성경(聖經)이 바로 그 결정적 증거(證據)가 된다. 그는 예수의 신성(神性)이 나타나는 부분들을 모조리 잘라내고 육하원칙과 시간적 연대상에 맞게 이야기를 재배열한 후 순수히 인간(人間)이자 도덕론자로서의 예수의 인생을 묘사(描寫)한다. 여기서 천사, 다윗 왕으로부터 내려오는 왕 계보, 예언, 기적이라든지, 동정녀 탄생, 삼위일체를 암시하는 구절, 예수의 부활과 같은 이성과 논리적이지 않은 초자연적(超自然的) 현상들을 모조리 삭제(削除)했다. 

특히 ‘제퍼슨 성경’은 ‘예수가 십자가 못 박혀 죽고 그 장소에 정원과 무덤이 생겼으며 예수는 그 무덤에 묻혀 잠들었다’로 끝난다. 즉 제퍼슨은 예수님의 부활(復活), 승천(昇天), 재림(再臨)도 부인(否認)한 신성모독(神聖冒瀆)의 이신론 종교인이다.

그는 요한계시록 22장 19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뺀’ 사악(邪惡)한 범죄자(犯罪者)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기초(起草)한 미국 헌법에서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창조주(創造主) 하나님,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나님, 인격적(人格的)인 하나님이 아니었다. 미국 건국(建國)의 아버지들 중에 제퍼슨처럼 이신론자들이 많았다. 이신론(理 神論, Deism)은 17세기 계몽주의(啓蒙主義) 시대에 만개된 신학사상으로 초월적(超越的)인 신의 존재를 인정(認定)하되 그 분은 이 세상을 창조(創造)한 뒤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세상에는 더 이상 개입(介入)하지 않는 분으로 믿었다.

흔히 자연신교, 이성종교라고 알려진 이신론자들은 성경의 기적(奇蹟)이나 예언(豫言)은 믿지도 않고 삼위일체도 부정한다. 계시와 기적을 부정하니까 종교라고도 할 수 없다. 

제퍼슨은 이런 말도 했다. “성령으로 잉태한 동정녀(童貞 女)로부터 예수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아테나(Athena)가 제우스(Zeus)로부터 태어났다는 우화(寓話)와 같은 수준으로 여겨질 날이 언젠가 오게 될 것이다.” 즉, 동정녀 탄생은 우화에 불과(不過)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인 현재, 그 불순(不純)하고 사악한 의도(?)가 있던 그 ‘종교의 자유법’이 부메랑(boomerang)이 되어 청교도의 나라 미국에서 “오직 그리스도”(Christ Alone)가 아닌 역(逆)으로 하나님을 제거(除去), 추방(追放)하는 반기독교, 반성경적 정책(政策)을 세우는 확실한 법적 근거(根據)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교분리(政敎分離), 즉 종교(宗敎)의 자유법(自由法)으로 말미암아 미국 내에서 영혼구원(靈魂救援)과 전도(傳道), 선교(宣敎) 활동에 족쇄(足鎖)를 채우는 무자비한 공권력(公權力)의 수단(手段)이 된 것이다. 

kimjoyh@hotmail.com

09.2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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