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엄마 손

변명혜 박사 (ITS 교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손은 가늘고 흰 예쁜 손이 아니다. 손 등에는 울퉁불퉁한 굵은 혈관이 드러나고 손마디도 굵은 손이다. 손도 유전인자가 작용하는지 나이가 든 내 손을 보며 옛날 우리 엄마 손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도 내 손이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내 엄지 손가락은 짧고 굵어 흔히 말하는 ‘손재주 많은 손’이다. 좋게 말하면 재주가 많은 손이지만, 보기에는 조금 기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손을 가꾸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예전에 매니큐어 일을 하던 제자가 있었다. 손이 미울수록 매니큐어를 해야 시선이 손톱으로 가서 손 자체를 덜 본다며 열심히 매니큐어를 들고 와서 칠해주었다. 하지만 매니큐어를 바른 손이 어색하기도 하고 손톱이 숨을 못 쉬는 것 같아 제자의 정성을 거절했다. 내게 손은 가꿀 대상이 아니라  일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친구 목사님을 몇 번 만났다. 이십여 년 전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분이라 이제는 서로의 얼굴에 깊어진 주름도 낯설지 않은 사이다. 자상한 성격의 목사님은 운전하는 내 손을 유심히 보셨는지 “손이 막일한 사람 같네. 손 좀 가꾸지.” 하고 안쓰럽다는 듯 한마디를 한다. 문득 오래전 누군가도 내 손이 고생한 손 같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손을 좀 가꾸라는 친구 목사님의 말에 엄마의 손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은 ‘약 손’이었다. 배가 살살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엄마 손이 약 손”이라며 배를 만져 주시면 어느새 아픔이 가라앉곤 했다. 아픈 자녀를 향한 안쓰러운 사랑이 손끝을 통해 전해져 치료의 힘이 되었던 것이다. 엄마 손은 또 한없이 든든한 손이었다. 길가의 큰 개가 무섭거나 마음이 두려울 때, 엄마 손을 꼭 잡으면 모든 걱정이 다 사라졌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손이었다. 그리고 그 손은 한없이 희생적인 손이었다. 집안에 여유가 있을 때는 도와주는 언니나 할머니가 계셨지만, 집안이 어려워진 후로 엄마 혼자 빨래, 음식 준비, 청소를 도맡으셨다. 일곱이나 되는 자녀들을 위해 늘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정성껏 싸시고, 이불 호청을 빨아 다듬이질하고 꿰매시던 모습이 선하다. 초겨울이면 반 트럭은 될 만큼 많은 배추로 대식구가 겨우내내 먹을 김장을 하시던 풍경도 떠오른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내신 엄마의 손이 어찌 고울 수가 있었을까.

어느 분이 나이 든 엄마가 반찬을 만들어서 가져가라고 내미는 손이 거칠고 지저분해 보여 거절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엄마에게는 다른 핑계를 댔겠지만, 그 말은 내게 충격이었다. 엄마의 손이 깨끗해 보이지 않아서 그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기 싫다니 그 손이 왜 거칠어졌는지는 생각을 안 해보았을까?

딸에게 친구 목사님이 내 손을 보고 가꾸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니 딸은 대학 시절에 엄마 손에 대해서 에세이를 썼던 걸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딸 역시 엄마 손이 거친 것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내 손이 곱지 않다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나는 예쁜 손이 아니라,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약손, 든든한 손, 희생하는 손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손,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손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도 친구 목사님의 말이 자꾸 생각나서 요즘은 핸드로션을 잘 챙겨 바르고 있다. 

linda.pyun@itsla.edu

05.03.2025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