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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광야같은 이민의 땅, 예배는 광야의 길

–예배중심의 회복, 불변의 좌표, 삶의 생기와 소망–
전남수 목사

광야를 걷는 이민자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의학이 눈부시게 진보해도, 인간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무력함을 대변하는 진실이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안개와 같고, 풀의 꽃과 같다고 표현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벧전 1:24). 

인생은 찰나와 같다고 표현한다. 아주 짧은 시간의 단위, 눈 깜짝할 사이와 같은 순간을 가리키는 세상적인 표현이다. 참된 영원을 알지 못하는 세상도 다 아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삶, 인생이 영원하지 않고, 한순간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짧고 연약한 인생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인생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결정짓는 본질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짧기에 더 귀하고, 유한하기에 더 진지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을 주택 모기지에 비유하기도 한다. 30년짜리 주택 모기지를 다 갚기도 전에 인생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웃픈 현실이지만, 그 속에 담긴 통찰은 분명하다.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영원히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날 허망한 종말 앞에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예배는 불변의 좌표

 

성경의 전도자는 인생에 대해 지혜로운 말을 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인생의 헛됨을 아는 데서, 철든 삶이 시작된다. 세상도 아는 헛된 인생에 대해 크리스챤으로서 가져야 될 삶의 좌표는 어떤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예배 중심의 삶에 있다. 이민자의 인생, 사막 광야와 같은 이민의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며 시급한 문제가 ‘예배를 중심한 삶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를 인생의 중심 좌표로 두고 나머지는 카운트해보라는 것이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을 깨닫고,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다. 예배는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내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묻고 답을 얻는 자리이다. 

한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밭을 곧게 가는 법을 가르친다. 아들은 열심히 밭을 갈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그 결과, 밭은 비뚤어지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조용히 말한다. “앞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그 방향으로 곧게 가거라.” 인생도 그렇다. 앞을 보지 않고 자꾸 뒤를 돌아보면 길은 삐뚤어진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우리는 예배를 통해 바라보게 된다. 불변의 좌표가 예배이다.

 

모세의 부르심, 예배의 본질을 말하다

모세는 인생의 절반을 지난 80세의 나이에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인간적으로 보면 인생의 실패자이며, 도망자요, 무명에 불과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달랐다. 하나님은 그 광야 한복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셨고, 그 자리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이는 단지 이일감을 위해 종을 호출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름을 부르시는 인격적인 초대였다.

모세는 그 부르심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한다. 미디안 광야, 사막광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자의 기본 자세이다. 하나님은 이어 말씀하신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 자존심, 그리고 인간적인 의를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맨발로 서는 것, 그것이 곧 예배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며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다. 예배는 이 약속을 붙드는 자리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정체성을 되찾고, 사명의 불을 다시 점화하는 자리이다. 갈바를 알지 못할 광야 같은 인생 속에서, 모세는 이렇게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얻게 된다.

 

이민자의 삶, 예배는 나침반

 

이민자의 삶도 광야와 같다. 낯선 언어, 문화적 장벽,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자녀 세대와의 소통 문제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힘겹다. 이 광야 같은 현실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처럼, 예배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인도해 가신다.

예배는 영혼의 나침반이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예배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광야에는 지도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지도가 되고 나아갈 방향이 된다. 어디서 이 방향을 얻고 찾을 것인가? 하나님앞에 드려지는 예배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은 예배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살리신다. 다시 그들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함으로, 공동체 이스라엘 광야 교회를 살려내는 것이다. 모세는 온갖 난관을 뒤로하고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다. 예배의 자리로 인도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이유는 단지 정치적 독립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왔다(출 5:1). 예배는 이스라엘 해방의 목적이며, 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예배는 신앙의 심장

 

이민교회의 존재이유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뭇 백성들을 예배의 온전한 자리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예배는 신앙의 심장과 같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분열되기 쉬운 공동체가 하나 되는 자리, 서로 다른 배경과 언어를 가진 이들이 같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리, 그것이 예배이다.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듣고 찬양하며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 속에서 비전이 회복된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악인의 번영을 보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다”(시 73:17)고 고백한다. 예배 속에서 눈이 열리고, 영혼이 깨어난다. 현실의 혼란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민 목회의 현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언어의 장벽, 경제적 부담, 세대 간 단절들이 크다. 그러나 예배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비전을 붙들 수 있다. 예배는 사명을 회복하는 자리이다.

 

예배가 살면 다 살아난다

 

“예배가 살아야 개인, 가정, 교회, 나라와 민족이 산다.” 이것은 단순한 표어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외치는 진리이다. 아벨의 제사를 기뻐 받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요 4:23). 예수님은 성전을 정결케 하시며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셨고, 바울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한다(롬 12:1).

그렇다면 우리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다. 예배는 건물이 아니라 삶이다. 이민자의 삶 속에서 예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본질이며, 존재의 이유이다. 오늘날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가짜 예배의 만연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5장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책망하신다. 감동 없는 형식과 순서에 매여 생기와 소망을 볼 수 없는 예배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진짜 예배는 성령의 감격이 있다. 눈물이 있고, 회개가 있으며, 헌신이 있으며, 뜨거운 사랑이 있다. 그 속에서 성도는 살아나고, 교회는 깨어나며, 다음 세대는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예배는 길이다

 

짧은 인생, 고단한 이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예배를 통해 인생은 다시 시작된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가정이 살며, 가정이 살아야 다음 세대가 살아난다. 그러므로 이민교회는 모든 중심에 예배를 두어야 한다. 예배는 광야를 걷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불기둥이며, 구름기둥이다. 

예배는 길이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만드시는 분이시다. 사막광야같은 이민땅에 하나님이 만드신 복된 길이 무엇인가? 예배이다. 예배로 나아올 때, 삶의 생기와 소망이 회복되며, 복된 인생길을 걸어가게 된다.  

 

davidnjeon@yahoo.com 

04.1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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