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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한 삶

한평우 목사 (유럽목회자세미나연구원 원장)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며칠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로마는 지금 주빌리오(회년)의 행사 기간으로, 가톨릭의 수장을 만나보기 위해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방문하는 중이다. 그런데 정작 존경하는 교황을 먼발치에서 희미하게 보거나 그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으니 기대하고 찾아온 신자들에게 안타까움이 크겠다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은데, 731년 그레고리 3세, 교황 이후로 최초의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었고, 최초의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이요,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최초의 남반구 국가 출신 교황, 최초의 이중국적자 교황이라고 한다. 최초의 성 프랜시스의 이름을 사용한 교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토리노 근처 출신으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피하여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고, 그곳에서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으로 태어났기에 실상은 이탈리아인의 혈통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가 교황으로 선출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유는 예로부터 교황은 대부분 이탈리아 출신이라야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일찍이 성 프란치스코를 존경하여 그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성 프란시스코가 세상을 떠난 지 8백 년이 지난 이후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했던 교황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지금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이름이다. 그래서 자녀가 태어날 때, 남아나 여아이건, 그 이름을 자녀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를 원한다고 통계는 밝히고 있다. 그런데 왜 역대 교황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성 프란치스코가 수도회의 인준을 받으려고 아시시로부터 로마까지 180Km를 평소에 즐겨 입던 누더기를 걸치고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찾아갔다. 당시의 교황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이노첸트 3세로 유럽의 황제들도 그 앞에 복종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교황이었다.

그런 교황에게 수도회의 인준을 받으려고 누더기 차림새의 성 프란시스와 그의 제자들이 찾아갔을 때, 교황은 기가 막혀, 다가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것들! 당장 내 앞에서 쫓아내라고 손을 들었는데, 올린 손이 마비되어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기적을 통하여 이들이 범상치 않다고 여겨 수도회의 인준을  허락했다고 한다. 그 수도회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번창함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역대 교황들은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며 존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렇게 살아가기란 너무 힘들다고 여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중국의 순자는 이런 말을 했다. 미인을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고, 선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희소가치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존경하는 성 프랜시스처럼 살아가려고 온 힘을 다했을 것이다. 신문에 보니, 그는 매월 $4,700-$5,900을 받아야 했는데 교황으로 즉위한 때부터 무보수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고로 그가 남긴 돈은 $100이었다고 하고--

그는 추기경으로 서임 된 후에도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빈민 활동을 지속하였고, 항상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 교황으로 즉위한 후에도 화려한 교황 전용 숙소를 거절하고 교황청 사제들의 기숙사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싱글 침대를 사용했다고 한다.

TV에서 비춰주었는데, 프로방스의 병원에서 화가 고흐가 사용했던 침대와 너무나 흡사했다. 또한 교황의 상징인 황금 십자가 대신 낡은 십자가를 목에 걸었고, 화려한 빨간 구두 대신 평범한 검은 색 구두를 신었다. 또한 묘지에는 장식 없이 검소하게 하고 자신의 이름, 프란치스코라는 이름 만 남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묘지도 바티칸이 아닌 마리아 델 마죠레(마리아 성당)에 묻히도록 요청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화려한 바티칸 내에 묘지를 만들기를 그토록 소망하였는데 말이다.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힘든 길을 간다. 그런 길이 진정 주님을 쫓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chiesadiroma@daum.net

05.0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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