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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처치 그 후, 하나님 공동체의 시작

한 개인이 올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크고 작은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며, 평생에 걸쳐 이루어야 하는 길고 머나먼 여정이다. 그러나 이 고단한 길이 진짜 어려운 이유는 ‘더불어’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낯선 사람, 비열한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나를 배신하고 해치려는 원수들이 항상 주위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는 더불어 산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 나의 가족으로, 나의 동료로, 나의 이웃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우리의 성장은 고달프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상적으로 묘사된 신앙의 삶과 공동체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성경 속 초대교회를 동경하며, 말씀에 근거한 새 판을 짜면 건강한 공동체를 이뤄 행복하고 낭만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망상일지도 모른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삶이 쉽다거나, 자연스럽게 서로 희생하는 삶으로 전환된다고 암시하는 장면은 없다. 초대교회의 신앙의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타락했고 여러 갈등을 안고 있었으며 지금의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계시록 2, 3장). 성경 속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받던 이스라엘 백성의 고집과 무지와 불순종의 연속을 보라. 우리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조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과 기능의 분담, 리더가 임명되고 필요한 물품들과 안전한 장소를 갖추어야 한다. 기록을 하고 예산을 세우고 지출에 대해 정확한 계산을 하는 일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관계적인 도움도 필요하다.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고백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세상 문화를 받아들이는 정도와 시각이 다르며 갈등과 싸움을 유발한다.

팀 켈러는 아마 공동체에 닥칠 번거로운 세부 사항을 받아들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가 쓴 센터처치는 그의 30년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신학적 비전과 열매 맺는 사역의 실제에 대해 공유한다. 이 책은 800페이지라는 충분한 지면을 할애해 교회라는 공동체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연결해야 하는지를 끈기 있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복음을 전하기 어려워진 포스트모던 사회 문화 속에서 ‘문화적 상황화가 필수가 되었음’을 조심스럽지만 일관되게 주장하며, 한 사람이 교회생활뿐 아니라 교회 그 자체로서 가정과 일터에서의 일상생활에서의 펼치는 총체적 헌신의 거룩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우리를 설득한다. 

센터처치가 명작인 이유는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치열한 고민 속으로 초대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의 맥락과 도시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던지는 그의 자신감 있는 어조의 문장들은 우리를 크게 도전한다.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열매 맺는 복음의 삶을 위해서는 이전 교회 역사 속에 없던 ‘넓은 이해의 폭이 필요하다’는 외침, 각 도시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외침, 문화를 대하는 교회마다의 입장에 대해 넓게 이해하고 서로 다른 유형의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외침, 한 사람이 문화 가운데 선교사로 세워질 때 ‘관계의 진실성’을 장착하고 명확한 반문화적 가치로 정결한 삶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외침, 말씀과 행동이 함께 가는 실천 노하우와 방법론을 연구하라는 외침, 나는 그의 모든 제안이 큰 외침으로 들린다. 팀 켈러의 외침들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룸에 있어 구체적인 영역들을 꼼꼼하게 다룸에서 그 진정성이 드러난다. 중요한 많은 내용 중에 작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점들을 찾아 이어보고자 한다. 

 

1. 한 사람이 생명력 있는 교회 되게

 

우리는 ‘한 사람’에서 시작해야 한다. 팀 켈러는 제도적 교회의 역할에 대해 마침내 한계점을 인정하고, ‘한 사람’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로서 “단지 구분되고 분리된 개인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 개개인의 한 사람이 세상 문화 한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전히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일하며, 창조적 형태로 모인다”는 것이다(502-503). 여기서 제도적 교회는 한 사람을 그 사람이 속한 세상에서 ‘유기적’ 교회 공동체의 리더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갖춰 목양적 지원의 주체가 된다. 팀 켈러는 이 일을 이루어 갈 때 겪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우려했지만, 우리에게 오만하지도, 비난하지도, 좌절하지도, 순진하게 생각하지도 말라고 강조하면서 그의 주장을 조금도 꺾지 않는다.

이 한 사람은 단지 교회의 파견인 개념이 아니고, 교회 안의 개인 신자의 개념도 아니다. 교회의 예배와 훈련 가운데 형성된 믿음과 영성을 가지고 의도하지 않아도 어디에 있건 자신의 정체성을 유기적으로 드러내는 한 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한 사람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유기적 교회로서의 새로운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뤄가며 복음을 맥락화하여 전하는 선교사로 세워지는 것이다. 복음의 생태계는 그렇게 한 사람으로 인해 도시 속에 연결된다. 

이 한 사람은 어디에 서 있더라도 하나님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 한번 ‘한 사람’이 처한 문화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난 현장에서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을 위해 교회는 최선을 다해 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이에 각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붙어있는 작은 가지와 같이 문화의 바람을 맞아야 한다. 새로운 순이 나오기를 소망하면서 기다리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작디작은 감격스러운 한 사람을 사랑하자.

 

2. 균형의 이해: 들음에서 시작하기

 

‘센터처치’라는 제목은 극단으로 향하는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다양한 태도들’을 한데 모아 중심에 붉은 원으로 센터를 그려 넣은 도식에서 따온 제목이다. 쉽게 말하면 중심을 잃지 말고 균형을 잡으라는 뜻이다. 교회가 문화를 배척하고 문화를 변화시키려 하면 안 된다는 입장, 문화에 열려 있는 입장, 문화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 문화를 변혁하자는 입장 등 다양한 신념들에게 정중앙에 있는 센터를 가리킨다. 여기서 균형이라는 것은 단순히 좋은 모델들의 장점을 결합하고, 약점들을 피하며 극단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극단에 있는 입장들을 중앙으로 끌어오는 것을 의미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 균형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쓸 것을 제안한다. 팀 켈러의 주장들을 종합해 새롭게 재정의해 보자면,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나와 완전히 다른 관점을 완전히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태도’를 말한다. 동시에 ‘내가 그토록 소중히 지키는 관점의 약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회개로 나아가는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들고 원치 않는 에너지를 써야 하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최근 청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시청했다. 정치, 성평등, 경제 수준, 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사상을 가진 열두 명의 시민이 자신의 사상을 숨긴 채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이야기다. 자유롭게 논의해서 리더를 뽑고 적정한 세금을 걷으며, 일정 기간 수익 활동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 식자재를 결정하고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훔쳐보려던 의도로 보았지만, 하나님의 공동체가 놓치고 있는 예상치 못한 중요한 메시지들을 봤다. (1) 양극단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도 함께 사랑하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 (2) 인격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오만과 극단적 고집을 피할 수 있다는 것, (3) 서로 눈을 보고 이야기하며 자주 모이는 것이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 (4) 사랑과 긍휼에는 사상적 다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 등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관점을 변호하다가 그 관점의 사람들을 크게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또 다른 예로, 요즘 출판업계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엮은 대화집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시장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서부터 고집스럽게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인터뷰까지, 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작가들이 오늘날 이렇게 각광을 받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연기 미학을 깊이 연구하는 배우들의 인터뷰집에서 한 배우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다가 상대방에게 말했다. 요즘은 서로의 연기와 작품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데 “내 작품을 보았을 뿐 아니라 뒷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사람은 듣는 태도에 마음이 열린다.

‘잘 들으라는 것’은 ‘그 사람의 사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소중히 쌓아 올린 가치관을 몇 개 무너뜨리라는 것도 아니다. 이해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라는 뜻이다. 들음으로써 내 생각 안에 거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죄의 문제를 보라는 말이다. 들음으로써 상대방의 약함과 강함을 이해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는 뜻이다. 들음으로써 나만의 복음의 맥락화를 더 견고하게 하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듣고 배움으로 좋은 복음의 습관을 형성하기를 바래 본다. 균형을 이해하는 일은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3.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디폴트로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기본값으로 놓아야 한다. 한 사람이 유기적 교회가 되고, 교회가 균형 잡힌 문화관으로 폭 넓게 들으며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다. 복음전략이 기도가 되게 하고 문화 속에서 순결한 신부로 버티는 모든 순간이 찬양이 되게 하라는 말이다. 기독교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보이는 성장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욕의 일이 쉽게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개인 내면의 영성 형성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팀 켈러는 <센터처치>를 이어가며 틈틈이 한 사람의 내면적 진정성을 논하고 있다. 짧다고 간단한 언급이라고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보다 앞서는 것은, 만약 그것이 성경을 가르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헌신과 봉사라도, 우상이 된다. 

센터처치는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기도  같은 책들과 같이 읽어야 하며, 기도와 순종으로 진리를 찾아내야 하는 보물 지도와도 같다.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생생히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일상생활에서 그의 사랑과 긍휼과 정의를 실천하고,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우상과 죄를 볼 수 있고 다룰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길이 때로는 이해 가지 않아도 친밀감과 믿음으로 따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의 삶이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공동체를 꿈꾸며 서 있다. 녹록지 않은 그 성장의 장으로 그렇게 또 나를 밀어 넣는다. 그러함에도 더불어, 함께 갈 이유, 그것은 복음의 본질 때문이다. Soli Deo gloria.

by 서나영, TGC

 

06.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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