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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회 신앙도서독후감 공모전 장려상

「탕부 하나님」을 읽고 "탕부 하나님! 탕부 하나님?"

 


한미란 집사(가스펠교회)

책을 손에 쥐게 된 것은 이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탕부 하나님! 탕부 하나님?

 

아버지의 재산을 방탕하게 써버린 탕자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탕부로 표현한 단어가 내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니 우리 육신의 아버지라 할지라도 ‘탕부’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적당한 것인가’ 마음속 의문도 속일수는 없었다. 평소 팀켈러의 책을 좋아했고 그 영성을 존경했다. 팀 켈러는 무슨 의도로 우리 좋으신아버지 하나님을 감히 ‘탕부’라 부르고 있는가.

 

이 책의 원제는 The Prodigal GOD이다. Prodigal의 사전적 의미는 ‘낭비적인 소비’를 뜻한다. ‘사치스럽게 소비한다, 무모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프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쓴다’는 의미의 이 단어는 사실은 아버지의 둘째 아들 앞에 붙여야하는 형용사일진대, 아버지 앞에 붙이는 이 말도 안 되는 수식어가 궁금해 나는 단번에 책을 읽어내려 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사랑을 탕진하셨다. 아낌없이 남김없이 무모하게, 그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되지 않은 아들에게 따지지 않으시고 무조건 그 사랑을 주셨다. 은혜도 모르는 아들은 그 사랑을 받고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 사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조카가 한 명 있다. 어려서부터 소아암으로 인해 어린 것이 병원신세를 많이도 졌다. 온 가족이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아니, 가족 뿐 아니라 기도부탁을 할 수 있는곳은 모두 동원하여 함께 기도하며 간절히 간구했다. 나을만해서 기뻐할라 치면 병원에서 들려온 암울한 소식으로 인해 우리는 또 다른 기도제목이 생겼다. 교회 식구들과 함께 웃고, 울며 그 가녀린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이모인 내 마음이 이럴진대,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언니는 그야말로 가냘픈 병든 아기 새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끝없이 내어주기만 하는 어미 새의 사랑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아버지의 삶을 낭비하는 바보 같은 아버지! 두 아들은 각기 서로 다른 무지개를 찾아 상반된 두 길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규범을 누구보다 잘 지키며 올바른 도덕성과 자신의 의가 행복이라며 동생도 볼 여유 없이 아니, 동생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달려간 형에 반해, 아우는 내 개인의 자유와 완전한 독립이 행복의 척도였다. 서로 다른 두 길을 갔지만, 두 형제의 마음은 똑같았다. 두 형제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고, 아버지의 권위가 싫었고 그 속박이 불편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우의 품행을 비난했으나, 이 책을 읽으며 큰 아들의 비뚤어진 마음을 보았으며, 그 큰아들 또한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두 아들 모두를 사랑했지만, 그 두 아들 중 그 누구도 아버지를 사랑한 자식은 없었다. 아버지는 살과 피를 내어주며 자식을 위해 그 사랑을 낭비하건만, 그 두형제의 목표는 아버지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그 사랑을 의무로 변색시켰다. 그렇게 두 아들 모두 틀렸지만, 그렇게 두 아들 모두를 품으신 아버지.

 

아우가 돌아와 베풀어진 기쁜 잔치 자리에 초대하는 아버지의 부드러운 음성에 큰 아들은 화를 냈다. 큰 아들의 분노와 원망을 읽으며 나는 화가 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독선적인 분노로부터 돌이키길 원하시는 사랑의 당부가 들렸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다독임은 주도적인 은혜로 포기도 없으셨고, 끈기 있게 나를 기다리셨다. 나는 내 종교적인 행위가 자식의 행복과 비례할거라 착각했었다. 남들이 좋다고 혀를 내두르는 학교가 내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리라 오해했었다. 이 책을 통해 차분히 나를 설득하시는 아버지는 나에게 또 시간과 사랑을 낭비하고 계셨다. 결국, 나의 사랑하는 아들은 내가 바라던 학교가 아니라, 아들이 꿈 꾼 대학이 아니라 아들을 창조하시고, 아들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계획하신 대학에 들어갔고, 기쁘고 행복하게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즐기고 있다.

 

아버지의 집에 아버지와 같이 살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큰 아들, 더 나은 삶이 있을거라 기대하며 먼 나라로 떠나지만 실망하여 패배자의 삶을 살았던 작은 아들, 이들에게 안전과 만족을 주는 집은 어디일까? 퍼주고, 베풀고, 안아주고 기다려주는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것이 참된 안식처가 아닐까? ‘탕부 하나님’ 책장을 덮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첫째 아들보다 못하고, 둘째 아들보다 못난 나를 끊임없이 잔치의 자리로 부르시는 속없으신아버지, 내 조카의 육신의 암보다 더 심한 암에 걸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아버지, 말로만 믿는다 하면서 그 한마디 말이 내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못난 자식을 위해서 끝까지 그 사랑을 낭비하시는 아버지. 내 자식의 일에는 그리도 끔찍하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은 헤아릴 여유조차 없는 무심한 나를 ‘괜찮다 얘야’ 그저 덮으시는 아버지 이제는 막다른 골목 앞에서 더 이상 행복을 찾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해답 없는 문제지를 가지고 나 혼자 쩔쩔매지 않으리라 결심해본다. 완악해서 아버지의 잔치를 외면했던 큰아들처럼도, 내 맘대로 살고 싶어 돌아가셔야만 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 마음대로 그 사랑을 이용했던 작은아들처럼도 사는 삶이 아니라, ‘나’라면 뭐든지 내어주실 수 있는 아버지의 그 고귀한 사랑의 진가를 알아 내 마음속 깊이 그 사랑을 담고 이제는 내가 아버지 마음 닿은 곳에 아낌없이 내 사랑을 허비하는 딸로 살아가리라 소망해본다. 이제는 아버지가 부르시는 그 기쁨의 잔치 자리인 교회를 섬기며 수많은 큰아들과 작은 아들을 이해해 보리라 꿈꿔본다. 나를 위해 낭비하신 그 사랑이 나도 모르게 내 삶과 내 마음을 적시어 고귀한 향기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바로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되기를 기도한다. 귀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에 대해 묵상할 수 있었던 시간들에 감사 한다.

03.0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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